충남 당진군수의 판공비 해부

간담회·물품구입 등으로 ‘펑펑’ 써버려지난해 말 전국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한 자치단체장의 ‘판공비 공개요구’는 자신들이 낸 세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를 감시하려는 국민들의 주권찾기운동의 일환이었다.도내에서도 시민단체들이 도지사를 비롯 4개 시·군의 판공비를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무슨 흑막이 있어서인지 아직까지 명쾌하게 공개를 하지 않고 있다.자치단체장의 판공비 공개는 국민적 권리를 확인하는 첫걸음이며 국민들에게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공공기관의 의무다.본지는 충남 당진군에서 올해 상반기 분의 군수 판공비 내역을 공개했는데 지역신문사인 당진시대가 판공비를 분석한 것을 간추려 소개한다.<편집자주>판공비는 공금으로써 뜻한 업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상이 되는 조직이나 단체에 금전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사용되는 서비스 비용이다. 이것은 개인비용인 급여와는 엄연히 구분되는 것으로 ‘공적인 업무’에 쓰이는 돈이다. 몇년 전부터 ‘업무추진비’로 불리는 이 비용은 사용내역이 공개되어야 할 공공정보의 하나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 9월1일 서울고등법원의 판례에 의해서도 확인된다. 서울고법 특별4부(부장판사 김목민)는 “판공비 관련 정보를 공개하라”는 1심 판결에 불복해 인천지역 6개 구청장이 제출한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구청장들이 특수활동비와 업무추진비 등 판공비에 대해 사생활 및 영업비밀 침해 등을 이유로 공개를 거부하는 것은 주민들의 알권리를 제한하는 행위”라고 밝혔다. 2000년 당진군의 예산안에 따르면 1년간 군수 명의의 업무추진비로 세워진 예산이 1억32만원이다. 기관운영 업무추진비가 3천3백60만원, 시책추진 업무추진비가 5천4백90만원, 기타 업무추진비가 1천1백82만원이다. 합하면 1억32만원이다. 그런데 군 예산부서에 따르면 기타 업무추진비는 특수활동, 대민활동 등을 위한 군수의 직급보조비로써 매월 일정금액이 지급되는 급여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판공비로 보기는 어렵다는 해석이다. 그래서인지 공개된 판공비 내역에는 기타업무추진비 명목으로 지출된 사항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판공비 공개대상에서 제외된 기타업무추진비는 개인 보수인가? 군수는 현재 월급 1백62만1천9백원에 급식비와 교통비, 국민연금 부담금(연간 2백59만원) 등 일체를 급여외로 매달 보상받고 있다. 군의 말대로 기타업무추진비 1천1백80만원이 급여라면 군수의 연봉은 이를 모두 합산한 3천6백여만원이 된다. 월소득 3백만원. 적지 않은 액수다. 하지만 군수는 기타업무추진비 명목의 돈을 직접 수령해 가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산집행방식은 분명히 공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예산은 특수활동, 대민활동을 위한 직급보조비로서 공공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판공비에 포함시키는 게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의 예산을 공개대상에서 제외한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인 용도로 쓰여온 예산이기 때문이다. 그 용도는 무엇일까? 공개된 자료만으로는 확인할 수가 없다. 당진군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8월4일까지 당진군수는 판공비로 3천3백31만8천원을 썼다. 매달 사용한 평균 판공비는 4백75만9천원 꼴이다. 사용내역은 세목별로 ‘기관운영’과 ‘시책추진’으로 나누어져 있었으나 판공비가 어떤 형태로 지출되었는지 구분을 명확히 하기 위해 내용별로 ①간담회 ②물품구입 ③격려금으로 다시 분류해 보았다. 그 결과 당진군수는 상반기 동안 ①간담회 비용으로 1천1백만4천원을 썼으며 ②물품구입에 1천6백19만원 ③격려금에 5백71만6천원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비율로는 물품구입비가 49%, 간담회비가 33%, 격려금이 17% 순으로 물품구입이 압도적으로 많아 이에 대한 궁금증이 남지 않을 수 없었다.군수의 판공비는 거의 대부분 식비와 물품구입 용도로 쓰인 것으로 나타났다. 간담회비 전부와 극히 일부를 제외한 격려금이 식비형태로 지출되었으며, 나머지는 선물을 구입하는 데 쓰였다. 판공비 사용내역을 단순화해 식비로 지출한 경우와 물건(또는 현금)으로 지출한 경우로 나누어 보았을 때 식비로 지출한 경우가 41%, 물건(또는 현금)으로 지출한 경우가 59%였다. 더군다나 군수의 물품구입비 중 40% 이상이 경조사물품을 사는 데 사용돼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군수는 해당 선거구민에게 1만5천원 이상의 축·부의금을 전달할 수 없도록 한 현행선거법을 피해 결혼축의금 대신 남자에게는 주발셋트를, 여자에게는 앨범을 선물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군수의 판공비중 단위구입비용이 1백만원을 넘는 고액의 지출은 대부분 물품 중에서도 경조사물품을 구입하는 데 쓰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1월에 고양시에서 구입한 근조셋트 1백개가 1백49만6천원, 2월에 아산시에서 구입한 공기세트 2백개가 2백20만원, 4월에 서울에서 구입한 향초세트 1백개가 1백49만원, 5월에 김포시에서 구입한 앨범 1백부가 1백30만원을 차지하는 등 6백50만원 가량이 경조사물품 구입에 쓰인 것이다. 군수는 개당 1만5천원 미만으로 단가를 맞추기 위해 이처럼 다른 대도시의 도매업체로부터 물품을 조달해 온 것으로 분석됐다. 게다가 군수는 일부 조의금을 직접 공식 업무추진비에서 지출하기도 했다. 3월에 이어 5월10일과 22일에 군수는 의료공단 지사장 모친상과 서산지청장 부친상에 각각 5만원과 10만원을 조의금으로 지출했다. 받은 사람이 선거구민이 아니기 때문에 선거법상에야 하자가 없겠지만 이같은 조의금 지출은 수백개에 이르는 경조사물품을 기관운영업무추진비에서 지출한 사실과 더불어 ‘사업비 유용’이라는 혐의를 받기에 충분한 것이다. 올 4월 인천지법 제3형사부(재판장 강현 부장판사)는 시책업무추진비를 전용해 경조사 비용으로 쓴 전직 구청장에게 횡령죄를 적용해 유죄판결을 내린 바 있다. 재판부는 당시 “행정자치부의 예산사용 지침을 벗어나 다른 목적으로 사용했다면 횡령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은 민선 이후에 자치단체장들이 판공비에서 관행적으로 경조사비를 지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려져 관심을 끌었다. 이에 대해 군청 관계자는 “관행적으로 업무추진비에서 경조사비가 지출되어 왔을 뿐 아니라 97년 감사원 감사 때에도 경조사비 지출은 문제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한 문제의식은 가질 수 없었다”고 말했다. 군수판공비로 사용된 식비는 대개 1인당 1만3천원선. 상반기 중 식비로 사용된 총액을 1인당 식비로 나누어볼 때 군수는 대략 9백50명과 함께 식사를 했다. 군수는 지난 7개월 동안 매달 1백35명과, 토요일과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6~7명과 밥을 먹으며 간담회를 연 셈이다. 군수판공비 내역은 누구누구와 무슨 일로 만나 밥을 먹었는지 알 수 없는 게 특징이다. 특히 상반기 중 총 41회에 이르는 간담회 가운데에는 개념 자체가 불분명한 군정협조자와의 간담이 22회나 있었고, 여기에 쓰인 식비가 총 간담회 식비의 49%를 차지한다. 그러나 어떤 군정협조자와 몇사람이 무슨 업무추진에 관해 간담을 한 것인지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물품구입의 경우도 사용처가 대부분 기재되지 않았다. 군수는 상반기 중에 격려금품으로도 6백여만원을 지출했다. 그 가운데 많은 것이 퇴직공무원 기념품과 직원과의 간담, 직원격려 등이다. 4월중에는 업무추진에 대한 격려로 다섯 부서에 대해 20만원씩 1백만원을 격려금으로 지출했다. 판공비는 전적으로 군수의 재량에 의해 집행되는 예산으로 사업 외에 재량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이 1억원이나 되었다. 그중 미공개된 기타 업무추진비는 성격을 분명히 해 공개하거나 군수에게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 군수는 7월까지 책정된 판공비의 37% 가량을 집행했는데 적지않은 부분이 사용처 불명의 경조사 물품과 특산물 구입에 쓰였고 실체를 알 수 없는 단체나 개인과의 간담회비로 쓰였다. 공적자금을 유용한 경조사비는 반드시 재고할 사항이다. 판공비는 다수의 권리를 위임받은 자가 품위있게 업무를 집행하도록 재량권을 준 장치다. 결코 사금고가 아니므로 적절하게 책정되고 성실하게 집행되고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서울시는 판공비를 합리적으로 운영하면 20%를 절약할 수 있다고 보고 시장 뿐 아니라 각 실국의 업무추진비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는 조례안을 9월에 확정했다. 판공비 공개는 이제 우리나라 모든 기관, 모든 단체장으로 확대돼야 한다. 제239호(2000년 1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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