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철 / 탐라역사 전설연구회

한 마디로 언어도단이다!
대지는 인류의 어머니라고 했다. 인간은 근원적으로 어머니를 그리워하듯 고향땅을 그리워하며 산다.
즉, 사람과 고향 땅은 핏줄만큼이나 강력한 운명적 관계라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법이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그 고향땅의 미래에 대해 아무런 역학적 관계가 없다는 판결을 내리다니 실로 기가 막힐 따름이다.

그 판결이 있은 직후 나는 법원정문에서 해군기지 건설에 저항하는 강정마을 주민들과 처음으로 조우했다.
그들은 한없이 초췌해 보였고 지칠대로 지쳐보였고 치미는 분노를 간신히 억누르고 있는 듯 보였다.
불현듯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의 한 장면이 그들에게 오버랩되었다.
한반도 정부가 파도가 드센 망망대해이고 해군이 고래라면 강정주민들은 일엽편주에 의지한 채 사력을 다하는 약하디 약한 노인이었다.
그리고 일엽편주를 전복시키려는 듯 불어대는 광풍이었다.
광풍(狂風).
그렇다. 그것은 미친 듯이 불어대는 아니면 맞는 사람으로 하여금 미쳐버릴 듯이 부는 바람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농단하고 있는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의 법은 그렇게 강정주민들을 대했다.
나는 잠시 불켜졌다 꺼져드는 그 풍경 속에서 인간과 짐승의 차이점중 가장 큰 위대한 차이를 발견했다.
짐승은 버거운 상대 앞에서는 꼬리를 사리지만 인간은 결코 이겨내지 못 할 상대일지라도 자신의 신념을 위해 맞설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이다.
강정주민들은 그러한 사람들 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인간의 특징중 가장 위대한 특징을 어김없이 구현하고 있는 가장 인간다운 인간들임에 틀림이 없다라는 확신. 그 확신에 나는 전율하고 말았다.

나는 오랫동안 이 땅의 전설, 특히 역사적 전설에 천착해왔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그 강정 마을 주민들의 모습에서 바로 그 역사적 전설속의 주인공들을 연상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야말로 이 땅의 또 하나의 역사적 전설의 주인공인 셈이다. 역사적 전설이란 꿈꾸며 좌절하고, 좌절하며 꿈꾸는 민중의 삶의 기록, 곧 힘없는 피지배층이 강한 지배층의 핍박에 저항한 민중사의 단면이기 때문이다.
일설에 따르면 ‘탐라’라는 지명이 ‘제주’라는 지명으로 바뀐 이유는 탐라는 왕후지지(王侯之地) 즉 제왕과 제후의 땅이라는 의미로 속국에게는 너무 과분하다고하여 본국의 구제를 받아야 할 고을이라는 의미인 제주(濟州)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제주’라는 말 이면에는 탐라인은 통치 받아야만 되는 열등한 종족이란 의미가 들어있는지도 모른다.

혹자는 국가방위사업 운운해댄다. 그렇다면 한반도가 과연 이땅의 방위를 위해 혼신을 다해 줄까? 아니, 한반도는 필요와 경우에 따라서 수수방관할 개연성이 짙다. 이는 역사가 입중하고 있다. 몽고의 침략에 맞서 끝까지 싸운 삼별초항쟁에서 최근에 이르기까지 과연 한반도의 세력들은 우리 탐라를 위해서 무엇을 해주었는가 ?

또 다른 혹자들은 맹방인 미국이 있어 한반도의 안녕이 지켜지기에 군사기지 수용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도 한다.
미국은 그들의 입에 맞는 일들을 세계의 도처에서 벌이며 피의 잔치를 서슴없이 저지른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그 땅의 민중들에 의한 끈질긴 저항과 피의 보복에 의해 더 많은 자국인들이 희생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베트남전이 그랬고, 911저항이 그 본보기이며, 미국의 젊은이들과 세계의 많은 젊은이들을 서로 평화와 사랑의 만남이 아닌, 죽고 죽이는 철저한 반 생명의 현장으로 내 몰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미국은 그 침략의 총부리를 다시 우리민족의 거룩한 성지, 한반도에서도 평화의 땅인 탐라에 그 마각을 드러내려고 하고 있다. 이들은 엄연히 외부의 세력이다.

더 엄격하게 규정짓자면 외세는 ‘탐라의 역사, 이상, 환경, 자연등에 역행하는 자’ 라 할 수 있다.
밖에 있으면서 안에 있는 듯이 언행하는 자도 있고, 안에 있으면서도 밖에 있는 듯이 언행하는 자도 있다. 마치 자신이 이 우리의 땅, 우리의 선혈들이 피로 일구어낸 우리의 몸을 마치 자신의 것인양 농단하려고 하고 있다.
외세는 말한다, 해군기지만이 제주인의 살 길이라고. 이는 망발이다. 물론 이런 언사는 탐라인이 아닌 제주인은 한반도의 구제대상으로서 한반도 식탁아래 떨어진 빵부스러기나 감지덕지 주워먹으라는 모멸적인 발언과 진배없는 것이다.

우리 탐라인이 그들의 집을 지켜주며, 그들이 던져주는 먹이나 받아먹는 개, 돼지인가?

우리의 선조들은 어떻게 이 땅을 일구어왔는가?
철저하게 소외된 핍박의 땅인 이 탐라를 우리의 선조들은 핍박과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죽을 각오하에 일본으로 밀항하여, 거기에서도 멸시와 수모를 겪으며 돈을 벌었고, 웬수같은 고향땅과 핏줄들에게 개보다 못한 일을 해서 번 돈과 감귤 묘목을 보냈다.
바로 이것이 이 땅 탐라의 경제적 기반이 되어준 감귤산업의 맹아였고, 이 땅의 삶의 기반이 되어주었다. 한반도나 외세가 아닌 우리의 선조들이 피로 일구어낸 평화의 땅이다.

탐라의 후예는 그 성씨 여하를 불문하고 다 삼을나의 후손이다. 이는 이 땅의 주민은 오직 하나라는 말이다. 고로, 강정 마을은 그 마을 주민의 고향인 동시에 탐라 후예 모두의 고향이다. 그리고 강정 마을 주민은 지난날의 탐라인이 그랬듯 오늘도 여전히 탐라인 모두의 ‘삼춘’이며 ‘조케’이고, ‘괸당’이다. ‘괸당’의 ‘괸’은 ‘괴다(사랑하다)’의 관형사형이므로 본래의 뜻은 ‘부계 혈족’이 아니라 ‘겨레’로 ‘사랑하는 무리’다. 
탐라인 모두는 삼을라께서 이천여 년 전 하나가 되어 흥기(興起)하신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하여, 지난 날 외세의 핍박과 멸시에 시달리며 오매불망 꿈꾸어 온 ‘이어도’를 기필코 이 땅에 구현시켜야 한다.
이어도는 사랑과 평화를 추구해 온 이 땅의 이상(理想)이다.

끝으로 나는 피눈물과 피땀 어린 그들의 투쟁에 경의와 사의를 표하는 뜻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의 혈서(血書)를 그들에게 바치고 싶다.
 “해군기지 결사반대 ! No Navy B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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