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에서 만난 사람들 35] 백혜진 시민기자

▲ 2011년 신묘년. 새해를 맞는 순간.

새해 벽두에 많은 올레꾼들이 모였다. 올레길은 같은 코스여도 계절마다 느낌이 다르지만 연말에 찾아드는 올레꾼들은 또 다른 목적이 있다. 그것은 아름다운 제주에서 새해의 일출을 보는 일이다. 그래서 숙소들은 매해마다 함께하는 해맞이 이벤트를 하기도 한다.

뜻하지 않은 눈 폭탄 세례를 받은 제주도의 연말은 눈으론 즐거웠으나 가족들과의 신나는 여행길을 조바심 나게도 했다. 제주도는 바람까지 불면 체감 온도가 많이 떨어져 바람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많이 힘들어 한다.

그러나 긍정의 힘은 대단했다. 눈보라 속을 뚫고 걸으며 오히려 쾌감이었다는 올레꾼 김미혜님(서울)은 혼자만 다니던 올레길에 남편과 친구부부까지 동행했다.  혹여 날씨로 인해 초행의 올레길에 실망이나 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지만 너무도 감동의 시간이었다고 좋아하는 모습에 덩달아 행복했다. 남편은 "이래서 당신이 제주의 올레를 그렇게 자주 왔구나. 이젠 내가 와야 겠는걸"하며 올레의 감동을 표현했다.

▲ 일출을 기다리는 올레꾼들.

거칠게 달려드는 파도도 신나는 구경거리요, 감탄의 소리위로 하얀 눈이 나려주니 추위는 느낄 틈이 없었으리라. 수도 없이 방문했던 제주도를 걸으면서 느끼니 차를 타고 씽씽 지나가는 렌트카들을 보니 오히려 안쓰럽다는 친구의 남편은 올레와 한라산에 흠뻑 반해 보물을 캔 듯 일정 내내 싱글거렸다. 

폭설로 인해 불편한 부분도 많았지만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풍성한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길을 걷다 주운 비료 푸대를 썰매 삼아 추억의 눈썰매를 즐기고, 힘들게 올랐지만 울음에 가까운 감탄의 함성을 자아냈던 한라산의 눈꽃. 꿈 속을 걷듯, 환영을 본 듯 믿어지지 않는 산에서의 감동 등 언제고 지난 시간 추억하며 미소지을 수 있는 귀한 경험이었다.

▲ 새해 일출을 보는 올레꾼들.

 

아쉬운 일도 많았을지라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건강한 모습으로 큰 웃음을 웃으며 최고의 덕담을 주고 받는 자리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모습을 보았다. 그 웃음이 올 한해 정신건강에 좋은 보약이 될 것이다.  한 해가 끝이 나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보신각 종소리에 맞춰 카운트가 시작되고 희망을 가득 담은 표정으로 새해를 맞이 했다.

구제역과 폭설로 인해 해맞이 행사들이 대거 취소가 되어 잔뜩 기대에 부푼 마음에 실망을 더해 주기도 했지만 어디에선들 소망을 빌지는 못할까. 차는 못 움직이나 올레길을 걷던 든든한 두 다리가 있지 않은가. 계획은 취소됐으나 새해를 받아들이는 마음들은 이른 새벽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하늘의 선물같은 하얀 눈을 밟으며 모여든 서귀포 황우지해안의 우두바위. 바다로 길게 나와 있는 편평한 바위의 끝자락에서서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해를 보고자 한다.  얄궂은 먹구름이 방해를 해도 해는 뜨기에 두 손은 모아지고 마음은 경건하게 구름뒤의 붉은 기상에 집중한다. 그들의 소망은 하늘 끝까지 닿을 것이고 드넓은 바다에 모든 시름과 절망은 흩어졌으리라. 

비밀스럽게 자신의 소망을 빌고 돌아오는 올레꾼들의 얼굴에선 해의 기운이 넘쳐 보인다.  옹기종기 모여든 좁은 공간에서 서로 모르는 사이이지만 희망찬 인사와 함께 떡국을 나누어 먹었다. 사소하지만 고맙게 여겨 주셔서 너무도 감사한 아침 식사였다.

▲ 떠오르는 해.

이렇게 올레꾼들은 올레길에서 신묘년을 시작했다. 옛이야기나 동요, 민화, 동시 등에서 토끼는 조그마하고 귀여운 생김새, 놀란 듯한 표정에서 약하고 선한 동물, 그리고 재빠른 움직임에서 영특한 동물로 묘사하고 있다.

또한 옛사람들은 밤하늘의 달을 바라보며 계수나무 아래에서 불로장생의 약방아를 찧고 있는 토끼의 모습을 그리며, 토끼처럼 천년만년 평화롭게 풍요로운 세계에서 아무 근심 걱정없이 살고 싶은 이상세계를 꿈꾸어 왔다. 토끼는 장수의 상징이며, 토끼는 달의 정령이다.

올레길에서 얻은 신비스런 보약과 함께 신묘년에는 토끼처럼 장수할 수 있도록 더욱 건강하고 평화로운 한 해가 되시라 모든 올레꾼들게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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