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시장-강정마을회 10일 두 번째 대화의 시간 마련

강정천 정비 등 민원 요구 … 미진한 해군기지 문제 비판도

▲ 고창후 서귀포시장이 10일 강정마을을 방문해 주민과의 대화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강정마을 주민들은 해군기지 갈등해소가 나아진 점이 없다는 점과 다양한 생활 속 불편을 토로했다. 사진은 10일 열린 행사 현장.

2010년 7월. ‘정치인’으로서 첫 발걸음을 내딛은 고창후 시장과 한동안 서귀포시정의 책임자를 외면했던 강정주민들이 형성한 묘한 분위기였다. 거대한 폭발에 먼저 나타나는 여진처럼, 쌓여있던 불만을 하나 둘씩 터트리며 해소감과 불안한 희망을 가졌던 시간이었다.

2011년 1월. 두 번째 만나는 자리는 쌀쌀해진 계절과 삼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 참석자만이 달라지지 않았다. “비장한 각오로 왔다”며 애써 어색하게 웃는 고 시장과 차분하지만 먹먹한 눈빛을 가지고 앉아있는 강정주민들 사이에 흐르는 분위기 속에서 ‘알고 있지만 말하지 않는’ 냉기를 느낄 수 있었다.

고창후 서귀포시장이 1월11일, 2011년에 처음이자 취임 이후 두 번째로 강정마을을 방문해 주민과의 만남을 가졌다. 고 시장과 함께 대천동장 등 관계 공무원 10여명이 동행했고, 지역 대표인 김경진 도의원도 “주민으로서 왔수다”라고 강조하며 ‘선배’들과 인사를 나눴다.

마을회관에서 오후 7시에 열리기로 한 행사는 40분이 지나서야 다소 강당이 채워질 수 있었다. 고창후 시장은 시작하는 말에서 “두 번째 공식적인 자리가 마련됐다. 강정마을에 늘 평화가 깃들길 기원한다”고 운을 뗐다.

고 시장은 “작년에 우근민 지사도 저도 취임한 이후, 해군기지 문제에 대해 노력을 했지만 맘대로 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해를 넘기면서 해결되지 못하는 점에 대해서 송구스러운 말씀을 먼저 드린다. 장기간 지속되는 점은 죄송스럽다”고 밝혔다.

▲ 고창후 시장은 이 자리에서 "주민갈등 해소를 위해서 지금까지 제대로 된 것은 없는 것 같아 송구스럽다"고 밝혔다.

이어 “해군기지가 가장 급하지만, 다른 문제도 많지 않겠느냐. 해군기지를 접어두고 다른 문제를 논하는 것이 가당치않지만 어차피 계속 삶을 영위해야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어려움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 대해 말씀해주시면 할 수 있는 한 해결하도록 하겠다. 또한 (해군기지) 질문이 있으시면 성심껏 대답해 도에 전달하겠다. 질책이라도 겸허한 마음으로 달게 받아들이겠다”며 한껏 자세를 낮췄다.

이어진 강동균 마을회장도 “3년 8개월간 반대투쟁만 하다보니 옆을 돌아볼 수 없었다. 하수도 하나 고장이 나도 고칠 수가 있었냐. 마을 안에 있는 숙원사업을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 투쟁은 계속 되지만, 해군기지는 해군기지대로 시장에게 전하고, 생활과 농사에 대한 불편한 점도 말하자”고 말했다.

강 회장은 “해군기지가 해결되야 한다는 마음을 먹었지만 문제가 내일모레 해결될 문제가 아니지 않느냐. 투쟁은 투쟁이지만 주위의 숙원 사업이나 불편사항을 시장에게 건의하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 그리고 속 시원하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말해서 정부와 도에 전달할 수 있도록 하자”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후 주민들은 해군기지 추진에 대한 불만도 풀어냈지만, 4년을 채워가는 고난 속에서 생긴 ‘실생활’의 어려움도 만만치 않게 쏟아냈다. ‘해군기지’라는 대의 명제 속에 애써 꺼내지 못한 힘듦은 어렵게 트인 말이 2시간이나 이어질 만큼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

가장 많이 지적된 사항은 마을에 필요한 사업이 ‘해군기지’라는 이름이 붙여지며 줄줄이 추진되지 못한 점이다.

마을회 윤호경 사무국장은 “마을 안길, 농로 포장 등도 모두 해군기지 이름으로 돼있다. 해군기지 아니면 강정에 줄 예산은 제주도에 없냐”고 지적했고, 주민 홍동표 씨도 “해군기지 관련 예산으로 인해 강정마을 사업을 하지 말아 달라. 태양열 전기사업으로 저희마을에 와서 설계까지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해군기지 관련 사업이었다”며 해군기지 추진 사업과는 별개로 마을에 필요한 사업이 추진돼야 함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고 시장은 “해군기지와 관계없는 숙원사업도 있는데 그것도 해군기지 이름이 붙여져서 삭감된 것이다. 국비가 들어온 바람에 예산 부서에서 부주의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관계 부서에 지시하겠다”고 말했다.

▲ 강동균 마을회장은 앞으로 해군기지 투쟁과 별개로 마을에 필요한 사업이 시와 함께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주민 의사도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된 사업에 대해서도 목소리가 높았다.

윤호경 씨는 “강정천 주변에 지난 태풍 나리 피해가 큰 곳이 있다. 하지만 제대로 보수하지 않고 쉼터나 만들고 공원을 만드는 입막음 수준에 그치고 있다. 또한 비가 많이 오면 다리가 물로 넘치는데 폭을 높이기만 했지 넓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큰강정물 인근 게이트볼 구장은 주민들 달래기 위해 만든 용도가 아니냐. 생태하천이 흐르는 곳에 게이트볼 구장은 짓는 것은 맞지 않다. 공사를 취소하거나 다른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강동균 마을회장도 강정천 정비와 관련해서 “행정에서 사전에서 주민들과 의논이 돼야 하는데 먼저 용역을 해놓고 주민들에게 설명회를 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주민들의 놀고 쉴 수 있는 공간도 좋지만 먼저 숲은 조성해 환경을 실질적으로 살릴 수 있는 복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 회장은 더불어 “마을회도 모른채 사업이 진행되는 것은 문제다. 크던 작던, 앞으로 마을 사업은 마을회를 통해서 진행되도록 해달라”고 강조했다.

고 시장은 “강정천 복구 문제를 지적해주신 점에 대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 주민의견을 반영해 숲을 조성하는 복구방향으로 진행하겠다”고 답변했고 “게이트볼 구장 사업은 도에서 발주했지만 환경적으로 불합리하다는 주민 지적이 다수라면 옮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준공하지 않는 상태니 공사강행을 하지 않도록 도에 요청하겠다. 앞으로도 마을회에서 의견을 달라”고 밝혔다.

이 밖에 개인소유 토지가 허락없이 도로로 전용되는 경우, 강정천 정비는 악근천처럼 생태계를 망가트려서는 안 된다는 우려, 은어가 올라갈 수 없는 강정천 댐 개선, 버스승차대가 없어 주민과 올레꾼이 불편을 겪는 사례, 해군기지 뿐만 아니라 물산업단지 등 다양한 지역이슈에 무관심한 주민자치위원회, 빗물을 감당 못하는 배수로, 공판장 대신 마을 안에서 생선을 판매해 악취가 심한 점 등도 개선사항으로 쏟아냈다.

해군기지 문제에 대해서는 지난해 자리만큼 격렬하게 지적하지 않았지만 떨어진 신뢰를 역력히 보여주는 질문이 이어졌다. ‘오늘 자리가 단지 달래기 위해서 참석한 것이 아니냐’, ‘도정이나 도의회가 실질적으로 갈등 해결을 진전시킨 것은 없다’는 비판과 함께 ‘금전적인 보상으로 해결을 모색하려는 것이냐’는 냉소적인 질문까지 이어졌다.

▲ 마을회관에 참석한 마을주민.

이에 고 시장은 “여러분과 대화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서 이 자리에 왔지 다른 목적으로 이 자리에 온 것은 아니”라며 “강정마을 주민들이 돈 문제로 싸우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저는 의심한 적은 없다. 그것은 강정마을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더불어 “주민갈등 해소를 위해서 그동안 한 것이 무엇이냐는 지적에 대해, 나름대로 한다고는 했지만 현재까지 제대로 된 것은 없는 것 같아 송구스럽다. 우 지사가 정부 측에 요청은 했지만 정부가 무성의하게 여겼다는 점에 공감한다”고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절대보전지역 소송과 관련해서도 “자신이 변호사 시절, 강동균 회장에서 원고적격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하나 둘씩 이어진 질문으로 시작된 만남은 2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끝이 났다. 고 시장은 맺음말에서 “제가 강정에 올 때마다 반은 욕먹을 각오, 반은 겸허한 마음으로 온다. 어제 잠들기 전에도 무슨 말을 할지, 어떻게 볼지 고민하며 잠을 뒤척였다”며 “결코 (여러분을) 달래기 위한 의미가 아니다. 시장으로 있는 동안에 여러분들과 순수하게 대화하기 위해 오는 것이다. 오늘 자리는 강정주민들의 목소리를 많이 들어 달라는 뜻에서 받아들일 것이며 앞으로 주민들 가까이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강정마을회의) 1인 시위 보며 가슴 아프다. 저도 마음 편하게 시장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달라”고 털어놓았다.

박수 소리 대신 무거운 침묵으로 시작한 자리였지만 고 시장의 맺음말에는 박수가 이어졌다. 한 주민이 “그래도 고 시장이니까 이렇게 이야기도 하는 거주게”라고 흘리듯 소감을 말했다.

행사 이후 만난 자리에서 강동균 마을회장은 “근 4년 동안 마을에 필요한 숙원사업이 내팽개쳐져왔다. 보완해야 할 점이 있다면 시정과 하나 둘 씩 해결해가며 피폐해진 생활을 개선해가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해군기지 문제는 계속 도정과 도의회를 상대로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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