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에서 만난 사람들 36] 백혜진 시민기자

▲ 올레를 걸으며 새해 다짐을 하는 풋풋한 신입사원들

법석거리며 묵은해를 보내고 어느덧 새해를 맞아 열흘 남짓 보냈다.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1월은 못 다한 일들에 대한 재점검과 새로운 결심으로 한 해를 다시 구상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다 한 달 정도 지나면 졸업식과 입학을 시작으로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올 것이고 새 책과 새 공책을 조심스럽게 아끼듯 걷으며 모든 것을 열심히 하리라는 다짐을 할 것이다.

항상 그랬다. 초등학교 매 학년 신학기 마다 그 후로 대학까지, 아니다 처음 딛는 사회생활의 시작도 그랬던 것 같다. 결심은 매번 있으되 목표는 결심처럼 항상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항상 지나면 부족한 듯 하고 후회스런 일은 남았다.

지금은 어른이 되어 자라나는 애들에게 그리고 사회 초년생에게 내 자신의 시행착오를 인생의 후배들이 답습하지 않았음 하는 마음에 다구치 듯 가르치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정작 본인은 과거의 습성을 여전히 이어가면서 말이다. 어쩌면 후회와 반성 그리고 결심하는 반복을 계속 할 지도 모를 일이다.

삼한 사온이 없어진 제주의 겨울 날씨. 오늘은 따뜻한 날을 맞았다. 좁은 섬이라 해도 산남, 산북, 동서로 기온이 달라 서쪽으로는 눈발이 날렸다지만 은빛 반짝이는 바다를 벗 삼아 걷는 6코스 해안 길은 몇일 동안  움추렸던 사람들에게는 축복과도 같았다.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입사한 신입사원의 연수 과정으로 올레걷기 시간이 있었다. 최근 기업 연수도 그렇고 학교 수학여행 일정에도 올레걷기 프로그램이 인기이다. 차로만 스치듯 지나며 결국은 차안에서 졸다가 필수과목처럼 관광지에 우르르 내려 슬쩍 눈 도장찍고 마는 관광이 본인 자신의 체험으로 느끼는 여행으로 변한 것은 참으로 좋은 일 인것 같다.  오늘의 신입사원들의 길동무 자격으로 이른 아침 쇠소깍을 향했다.

앳된 모습들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갓 떠오른 해가 하늘을 물들이고 바다는 찬사를 보내는 듯 반짝이는 인사에 하루 시작이 상큼해 진다. 얼추 20대 중 후반의 연령으로 보이는 남,여 사원들이 애처럼 느껴지는 걸 보니 나도 많이 세월을 보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철없던 직장 새내기 시절이 생각나며 좋은 직장 들어갔다며 자랑스러워 하시던 부모님의 얼굴도 생각나고 견딜 수 없음에 박차고 사표를 쉽게 던졌던 철없던 나의 오만함도 생각이 났다. 그저 혼자 웃음이 나올 뿐이다.

군기 잡힌 군인처럼 한 마디 한 마디 말을 잘 듣는다. 보통 때 길동무했던 다른 팀과는 비교가 되는 진지함이 묻어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좋은 회사에 입사하신 걸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모두들 일제히 박수치며 "고맙습니다!"라며 외친다.

내심 오늘 하루가 즐거울 것이라 주문을 건다. 제주올레에 대한 소개와 더불어 인생의 선배로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올레는 치유를 해 줍니다. 평화의 올레에서 행복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회사에서 이런 일정을 만들어 주신 걸 감사히 여기시길 바랍니다.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을 가르치기 보다는 여러분이 힘들어 졌을때 자신을 잘 다독이는 방법을 제시하기 위해 올레걷기를 택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오늘 걷는 이 길이 인생의 맛보기 길이지만 항시 쉴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여러분의 쉼터가 될 겁니다. 올레! 하고 외쳐 보겠습니다." 하며 연수장 처럼 기강을 잡고 시작됐다.

'날씨가 좋은 것은 여러분들이 착하기 때문에 복을 받는 것이다, 넓은 바다를 가슴 가득 담아라, 좋으면 '좋다' 라고 표현를 해라, 좋은 마음은 좋은 기분을 만들어 주고 좋은 일에 가까이 가도록 한다, 즉 긍정적인 사고가 자신의 목표에 이르게 하는 기본이다.'

잔소리를 하는 엄마처럼 말이 끊임없이 나왔다. 한 마디라도 놓칠세라 쳐지지 않고 따라오는 착한 사람들을 어느덧 다다른 보목리 문필봉이 보이는 곳에 일제히 세웠다.  "마치 붓끝을 모은 것 같은 모양이라 해서 붙인 섶섬의 봉우리를 보며 이곳에서는 유독 문인과 교사가 유난히 많이 배출된 것은 문필봉 덕이라고 여긴다. 무엇이든 꾸준히 염원하면 이루어 지지 않겠는가. 이루어 지길 바라는 일을 매일 '될 것이다. 할 수 있다' 되새기다 보면 행동 역시 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좋은 생각을 갖고 자신에게 다짐하는 시간을 30초 가집시다."

철없는 애들 같은 얼굴은 일제히 진지해 지고 두 손을 모으는 사람도 있었다. 보는 이도 경건해 지는 30초였다.  그들의 등 뒤로 필자 역시 마음으로 빌었다. '이들의 이 순간 30초의 마음이 매일 이어지고 이들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해 주십시오.'

종교를 떠나 기도는 자기 자신에게 다짐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매일 기도해 보자. 새해를 맞아 거창한 계획보다 간단하더라도 반복적으로 꾸준히 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내 자신의 변화 먼저 시도해 보고 싶다. 여러분의 새해는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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