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에서 만난 사람 37> 백혜진 시민기자

"오서방~! 이메일 주소가 어떻게 되는가? 나 요즘 컴퓨터를 배우는데 메일 보내는 거 배웠거든?"
연세가 일흔을 훨씬 넘으신 친정엄마와 질문을 듣는 사위의 표정을 번갈아 보며 3초 늦은 웃음을 웃었다.  너무도 당연한 표정으로 말씀을 하시는 장모와 상상 못한 질문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위는 순간  선뜻 대답이 입안에서 오물거린다.
며칠뒤 사위의 메일함에는 떡 하니 장모의 편지가 와 있었다.

편지의 내용을 떠나 돋보기를 쓰고 컴퓨터 자판을 한 개 한 개 누르며 마음을 담고 계셨을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니 '세상 다 살았다'하던 한탄과는 너무도 먼 열정을 담은 장인 정신의 그림이 그려졌다.  영어 알파벳도 가물거리는 연세에 노안으로 모든 것이 불안정한 그림같은 글씨를 눈이 충혈 되도록 보고 또 보며 오타가 나서 웃음거리라도 될까 몇 번이고 읽고 고치고 했을 신성한 작업 시간을 나는 안다.
그러나  나는 엄마의 새로운 도전에 엄청난 환희를 갖고 응원을 했다. 

지긋 지긋하도록 한평생을 쳇바퀴 돌 듯 살았고 이젠 눈감고도 척척 모든 세상살이가 쉬울 것 같은 우리네 부모님이, 그 동안 해 보지 않은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아직도 건강하다는 결론이기 때문이다.
 언제 적 들어봤던 책보인가.  곱게 차려 입었지만 전에 없이 어울리지 않는 넓은 가방은 큰 글씨의 교육용 큰 책이 들어 있었다. "나는 거기 들어간 지 얼마 안됐는데, 몇 달째 하시는 분들도 많드라. 그런데 나는 그 분들보다 조금 진도가 빠른거 같애"  엄마가 소녀 같다. 
"정말이우꽈?  역시 우리 엄마는 멋져, 저도 엄마한테 배워사 되쿠다. 하영 배웡 나도 잘 고르쳐 줍써예~~"
어릴 때부터 지금가지 계속 부모에게 배우고 있지만 또 배울게 생겼다. 부모님이 도전하는 새로운 신기술(?).  어릴 적 용기를 주셨던 격려와 칭찬이 이제 격식을 갖춰 부모님에게로 되돌아 가고 있다.  '참으로 대단하시고 항상 꿋꿋이 귀감이 돼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며.

문득 지난해의 일이 생각이 나게 된  것은 오늘 카페회원의 어느 글을 읽게 돼서이다.

                            괴물과 맞서기
그래요... 저 컴퓨터 잘 모릅니다 ㅠ
하지만 *중각 가족들을 위해서 이왕 할꺼면 제대로 해보자고 마음먹은 후 부터
아이디어 만큼 실전이 따라주지 않는 이유로 이것저것 세 살 짜리 아이처럼
모든게 궁금한게 많았지요.

컴퓨터라는 괴물은 제가 알았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운 놈 이었습니다.
글의 행간도 모르는 제가 사진넣기 음악넣기?그리고 노래용량 줄이기 파일확장자 맞추기? 탭 찾기...
사진은 간신히 셔터만 누를 줄 알고 음악은 손 끝 터치하나로 듣기만 했고
바지는 세탁소에서 줄여는 봤지만 ...

확장자는 또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랍니까 !!!!
인강듣는 아들녀석을 살살 꼬셔서 이것저것 물어봅니다.
척척 묻는대로 대답도 잘하고 아는것도 많습디다?<오~이 녀석 제법인걸~>
그럼 뭐합니까 ㅠ? ?말은 하나도 못 알아 먹는 외계어에 다가
실습은 빛의 속도로...
그 때까지 살면서 몰랐습니다.
화내면 다시는 설명 듣기 힘들고 나만 손해라는 것을요.

또 다시 비굴모드로 들어가 다시 한번만 설명해 주면 제대로 해 보겠다 굳은 의지를 표현하니
한 번 더 가르쳐 주겠답니다 아들놈이.
노트를 가져와서 번호를 매기고 ?알아먹지도 못하는 외계어를 나만이 아는 각주를 달아가며 적습니다.
이것도 중요하고 저것도 중요하고 순서가 바뀌면 안 되니 별표,, 휴~
가르쳐 주는 선생님께 너무나 노력하는 학생으로 보이면서 열심히 필기하고 실습하였습니다.

그 새 훌쩍 한 시간반이나 지난 것을 저는 잊고 있었지 뭡니까 ?
이것만 알고 나면? 나도 내가 아는 것으로 구박해 보리라 맘을 단단히 먹습니다.
식사 후 괴물(컴퓨터) 앞에 앉아서 아까 열심히 적은 노트를 펴놓고 지금까지 배운거?저보고 한 번 해보랍니다.

<그~래 이 기회에 보여주는거야..써 있는대로 번호순으로 실습해서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거야>
아아아아아아 ~악........
사십여분 갔다왔는데 노트엔 온통 빨간 별들만이 ?총총~ 분명 내가 쓴 글인데?통..무슨말인지....
아들녀석 어이없는 표정으로 쳐다봅니다.
지금껏 생활하면서?자기한테 다 아는 것처럼 구박 많이 했다고 불만을 토로합니다.
그래요 회개합니다... 아들녀석 수학 가르쳐줄때 한번 설명했는데 모른다고 쥐어박던 예전의 나를요.
사필귀정....인과응보....자업자득...온갖 것들이 머리속에서 롤러코스터를 탑니다.

참습니다. 참아야만 합니다. 전 지금 하나도 모르고 또 괴물을 물리치려면 알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은 순수한 학생이기에...
그래서
비굴하게 한마디 합니다.
"저..기...오늘만.. 이거... 대신 해주면 안돼?"

그 날밤
저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세상에는 아직도 내가 배워야 할 것도 이겨내야 할 것도 많다는 것을요.
그리고
잠자는 아들 녀석의 손을 살~포시 잡고 꿈나라로 조용히 걸어갔답니다.

이상은 어느 엄마가 아들에게 요즘 인터넷에 글쓰기, 편집, 음악, 사진 등 여러 기능을 배우는 단계에서 겪은 이야기입니다. 참 재미있지요. 엄마에게 숱하게 구박받았던 과거도 내어 놓으며 엄마의 비위를 견드려 보지만, 여기의 엄마는 꾹 참고 자기의 기술로 만들게 되었답니다. 과정 중에서 자존심과 오만함 다 버리고, 그리고 끈기를 갖고 견디니 어느새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꺼리를 보여주는 인테넷 카페의 운영자로서 톡톡이 역할을 해 내게 되었답니다. 
 "아! 그거는 난 못해 못하는 거야, 난 안해!"라는 말이 주특기였던 주인공은 어느새 다른 주부들 보다 더 많은 능력을 갖은 '어떤 것도 할 수 있는 분'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괴물은 무엇입니까?  도전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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