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살자격과 살권리

인간은 누구에게나 살 권리가 있다. 부모로부터 태어나면서 그렇게 믿었고 자라나면서 또 그렇게 배웠다. 그러나 오늘 우리 농촌의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지난 11월 21일 전국의 농민단체들이 총 궐기하였다. 서울의 한복판 여의도에서부터 한국의 끝 제주시 탑동광장에 이르기까지 ‘농업을 살리고 농가부채를 탕감하라’는 농민들의 아우성이 울려퍼졌다. 정부만 믿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는 살아갈 권리마저 잃을 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의 표출이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농사는 지어야 하겠는데 도무지 일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그야말로 ‘살고 싶고 살아야 한다’는 외침이었다.성실하게 일하는 농부에게 정당한 생존의 권리가 주어지고 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마땅한 일자리가 보장되는 세상, 그것이 살 권리가 인정되는 사회이다. 아무리 죽어라고 일을 해도 빚을 갚을 수 없고 농약 값 비료 값 제하고 자기 일당도 남지 않는 사회, 그것은 살 권리가 박탈된 사회이다. 이런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자격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학교 공부로는 부족해서 과외까지 하고 대학 졸업장만으로는 안되어 영어며 컴퓨터를 기를쓰고 배우는 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아마 프랑스의 컨설팅 회사가 했다는 제주도의 국제자유도시 기본계획은 초·중·고교의 외국어 교육과정 강화만으로는 부족해서 '영어'를 제2의 도민 공용어로 공식화할 것을 권고했는지도 모른다.프랑스 작가 비비안 포레스테(Viviane Forrester)는 ‘경제적 공포’에서 ‘살아갈 권리를 갖기 위해서는 살아남을 자격이 필요한가’를 묻는다. 그녀의 질문은 ‘새로운 경제 메카니즘에 유용한 요소임을 입증하지 못한 사람들의 삶도 과연 유용할까?’라는 처절한 반문으로 이어진다. 배운 게 농사뿐인 데 어느 세월에 다시 영어를 배우고 컴퓨터를 배워 자격을 갖춘단 말인가. 농사도 못짓고 그것도 못하면 살 권리가 없단 말인가. 우리도 이제는 이러한 질문을 가지고 우리의 앞날을 심각하고 진정하게 고민해야 한다. 케이블 카도 놓아야 하고 환경도 보전해야 하고 도로도 닦아야 하고 등등 무수히 많은 사업들이 우리 앞에 있지만, 그리고 그것들이 찬란하게 보이긴 하지만, 자본과 인력의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는 우리로서는 무엇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지를 선택해야 한다. 추진에 리더쉽이 요구된다면, 선택에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이번에는 가격이 좋을 줄 알았는데 애당초 기대에도 못 미치는 감귤 값 실상이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생활수준이 일정궤도에 오르면 과일소비가 늘지 않는다. 대신 소비자는 수입과일이든 국산과일이든 입맛따라 사먹을 수 있게 되었다. 감귤에 대한 수요는 일정한 데 외국과일이 범람하여 시장을 나눠가질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당연히 감귤값은 떨어지게 된다. 지난 2∼3월에 서울거리 노점상에 싱싱한 칠레산 포도가 난데없이 나돌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계절적으로 남미의 포도 수확기였고 농산물 시장이 개방된 이상 한국으로 쏟아져 들어온 것이다. 당연한 귀결로서 우리들 선택의 초점은 무엇보다 가장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우리의 생활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1차산업을 살려내는 데 모아져야 한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한 관광자유도시나 국제자유도시는 환상과 망상에 불과하다. 지역연고가 깊은 1차산업이 붕괴된다면 그 어떠한 제주의 비전도 의미가 없는 것이다. 1차산업은 단지 살린다는 차원이 아니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게 해야 한다. 요즘 지식산업을 새로운 추세라고 한다. 1차산업을 지켜내는 데에도 나아갈 방향이 바로 여기에 있다. 농업도 수산업도 창조적 경영에 바탕을 두고 과학기술을 접합하여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면 바로 지식산업인 것이다. 그리하여 감귤값 하락을 막아내고, 돼지값을 안정시켜 주어야 하며, 잡는 어업이든 기르는 어업이든 어민들에게는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의 어획고를 보장해내야 한다.이러한 일을 하는 데에는 내와 남이 있을 수 없다. 내편 네편 가르고 남 헐뜯기 좋아하는 추태를 그만두고 모두의 힘과 지혜를 하나로 모아야 한다. 관용과 화해가 마침내 화합으로 이어지는 오케스트라의 화음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우리 공동의 복지를 위탁받고 사회적 대응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제주도)가 서야 한다. 이를 외면하는 정부는 자신의 직무를 유기하는 것에 다름 아니며, 심각할 경우 존재가치마저 상실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주도가 살아남을 자격을 요구하기 보다는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는 땅으로 남아있게 해야 한다. 그것이 제주인으로서 우리 세대의 소명이다.송재호/논설위원·제주대 교수 제240호(2000년 1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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