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에서 만난 사람들 39] 백혜진 시민기자

“사장님! 왜 그러세요!  왜 안 된다는 겁니까?” 우렁찬 목소리가 안방까지 울린다.

‘무슨 일이 있나?’

내용인즉슨 차를 두세 번 타야 하는 올레코스는 우리 숙소에서는 불편하니 해당 코스 근처의 숙소를 이용하라는 친절한 사장님의 안내에 반박하는 한 올레꾼의 목소리였다.

숙소 운영을 하며 오랜 기간 체류하는 올레꾼들이 고맙긴 하지만 도보여행자들의 편리성과 접근성을 고려한 정보 안내는 기본이기에 사장님의 권유가 올레꾼은 마냥 섭섭한 모양이다.

악의에 차 있지 않으나 큰 목소리는 거친 항의 같은 느낌이다.

39세의 김명이(전남 광주)님.

그녀는 무계획이라는 일정을 갖고 제주 올레를 찾았다. 가끔 한 달 정도 숙박하는 올레꾼을 본 적은 있었으나 무기한으로 막무가내 눌러 앉겠다는 듯 으름장 놓듯 자리 예약을 하는 올레꾼은 처음이다.

무엇이 그녀에게 긴 휴식을 필요로 하게 했는지 궁금했다.

씩씩하다 못해 우렁찬 기합소리 같은 목소리에 항상 쾌활한 웃음과 거침없는 입담, 그리고 낯가림이 없는 누구에게나 호의적인 아가씨.

푸짐하고 편안한 인상은 초면에도 걱정, 고민거리를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에 지쳐서 쉬러 왔어요. 제주도를 너무 사랑해요”라며 그녀는 술술 자신의 지난 일상을 읽어준다. 

인상, 성격으로 보아하니 모든 사람들의 상담사이고 도우미처럼 남을 무던히도 위로를 해 주는 역할을 하는 생활이 보였다. 1시간이고 2시간이고 고민을 들어주고 위로해 주고 방법을 모색해 주는 그녀지만 정작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거나 털어 놓을 상대가 없음을 문득 발견한다.

무상하고 허전하고 외롭다. 정작 자기 자신도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로 인해 바쁘지만 자신을 위해 쉬어 보지도 못한 시간들이 한꺼번에 고통으로 다가왔다. 

자신의 시간을 위해 타인들에게 냉정해 진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혼자라는 이유로 사람들은 함부로 자신의 시간을 송두리째 헌납을 요하는 것 같아 섭섭한 나날들. 그러나 탈출을 감행했다. 

사람으로 인한 상처를 보듬어 주고 긴 휴식을 선택했다. 자신만을 쳐다 볼 수 있게 그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의 긴 여행이다.

어느 덧 한 달을 넘기고 있는 시점에서 돌아본다. 새로운 만남에 정신없이 올레길을 즐기고 설산에서 한껏 눈과 뒹군다.

‘마음이 아팠던 적이 있었는가’가 기억이 가물 할 정도의 신나는 시간들이다. 사람들을 피해 왔다더니 그녀의 주위에는 또 온통 많은 새로운 인연들이 가득하다.

버릴 수 없는 천성처럼 동생, 언니 할 것 없이 챙기고 있다.  만나면 반갑고, 헤어질 때가 되면 아쉬움에 눈물을 글썽거린다. 각양각색의 사연과 삶의 방식을 들으며 자신의 고통은 어느덧 아무것도 아닌 듯.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했는데요, 지나고 나니 제가 더 많이 주려했던 마음이 편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친하기에 못했던 말들도 이젠 서서히 연습이 되는 것 같아요. 냉정한 충고는 상처를 주는 것 같아, 속으로만 참았던 자신이 조금씩 변하는 것 같아요. 아직은 멀었지만요.”

유쾌한 듯 뱉어내는 말들이지만 그녀의 안경 속 촉촉한 눈빛에선 여전히 아픔과 고민이 묻어있다.

세상을 살다보면 주는 사람은 마냥 내어 주어야만 하고, 받는 사람들은 당연하게 주기를 기다린다. 착한 사람도 고통의 연속에는 비명도 지를 줄 알아야 한다.

마냥 받아들인다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닐진대, 그녀는 오늘도 마냥 자신의 넓은 마음을 펼쳐 놓고 사람들이 드나 들 도록 허락하고는 뒤안길에선 혼자 가슴을 부여안고 있는지 모르겠다.

따뜻하게 그녀의 손을 잡아주고 싶다. 그리고 톡톡 어깨를 두드려 주고 싶어진다.

남의 마음 나의 마음 모두 위로를 하고 싶지만 아직은 두 가지가 안 되는 힘든 상황이지만 현명한 방법을 꼭 찾을 것이다. 남에게 베푸는 심성은 버릴 수 없는 그녀는 사람들을 멀리 하는 것이 대수가 아니라 사람 속에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고 얘기해 주고 싶다. 

‘오늘도 나는 아프다’면서 상대의 아픔을 어디선가 들어주고 위로해 주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알까?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얼마나 단단해지고 외면이 아닌 더 큰 사랑을 받고 있는지를.

한 달이 지났지만 “한 달 더!” 하며 외치는 그녀에게 “이곳이 도피처가 아닌 행복한 쉼터가 되어 편안한 마음을 안고 가길 바랍니다”라는 말을 전한다.

올레는 충분히 그녀를 변하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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