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에서 만난 사람들 41] 백혜진 시민기자

 

10코스 거꾸로 올레 행사때 모슬포 바닷가에서, 사진작가 강영호씨가 찍은 조길남씨 사진  

 

누군가 그랬다.
찬란한 햇살이 너무 좋아 슬프다고.
너무도 푸르른 오늘, 한껏 좋아했을 사람 생각에  이 햇살이 고와서 차라리 슬프다.
웅웅 거리는 바람 소리는 어디선가 우는 누군가의 울음소리 처럼 느껴지는 지금.

사실 오늘은 올레를 너무도 사랑한 올레지기의 발인일이다.

이틀 전 부재중 전화가  황당한 소식으로 이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장난말처럼 ‘나는 제주 올레길에 묻히고 싶어’라던 올레 이민자 조길남님(54세).
투석을 받아야 하는 장기 이식을 받은 환자라는 내용을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가 제주자연의 품에서 그리고 올레를 동네삼아 일상을 내내 보내는 중에도  자신의 병을 내색하지 않았던  완벽한 사기극(?)을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지금야 알고 말았다.

결국은 자신의 사랑을 뿌리던 올레의 자연에 묻혔다.

급하게 제주행 비행기를 타고 온 큰 딸(조아라, 27)은 어찌 할 바를 모른다.
슬픔만도 버거운데 해결해야 할 장례절차 어린 딸은 황망하기만 했다.
그러나 몰려든 올레길 여러 지인들은 고인이 평소 원했 듯이  올레길에서의 행복 완결판을 만들어 냈다.
제주올레 서명숙 이사장님은 “올레를 그토록 사랑했고 얼마나 많은 봉사를 하신분인가요. 올레장을 하는 것이 도리인 것 같아요.” 라며 마음을 내어 놓았다.
제주올레 이사장님 예하 모든 사람들이 동감을 했다.

슬픔을 나누는 올레 식구들의 응집력은 대단했다.
일사천리 요소 요소 당황한 유가족들과 마음을 같이한  손길과 발길들, 자연을 품은 사람들의 마음들은 슬픈 유가족의 또 다른 가족이 되었다.
고마움에 어찌할 바 모르는 가족들은 “제주에 묻히기를 원했다. 고향이 아닌 먼 곳에서  썰렁할 거라 걱정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내 일처럼 도와 주셔서 너무도 감사합니다.”라며 울먹거린다.

시기를 달리할 뿐 누구든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의 종착점은 있다.
그러나 홀로 가야하는 외로운 그 길을 올레식구들은 끝까지 같이했다. 그가 지극히 사랑하고 쓰다듬던 10코스 송악산이 결국은 망자의 영원한 집이 되는 순간 먹먹한 가슴들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같이 걸었던 사람들, 그 길을 서로 같이 사랑했던 사람들이 마지막도 그렇게 같이 그 길을 걸었고 길가의 초목조차 바람의 핑계를 앞세워 온몸으로 통곡을 한다.

평범한 사람의 기준으로 보면 너무도 괴이했던 긴 머리에 신령님 나무 지팡이를 든 남자.
한 번 보면 기억에 남게 되는 외모와 걸맞게 올레길 사랑도 못지않게 극성이었던 사람.
그는 제주올레 10코스를 지키는 올레지기였다.
거주지인 서귀포에서 화순, 송악산을 넘나들기에는 대중교통도 환승을 해야 하는 버거로운 거리이다.  그러나 송악산을 중심으로 한 10코스는 그의 놀이터이고 한 댓 잠도 즐기는 그만의 소중한 터전이었다.
눈으로는 즐거운 하얀 겨울, 꽁꽁 감싸고 걷는 길에서 만난 10코스 지기는 장갑도 없이 올레길 리본 정비를 하고 있었다. “허허  혜진씨 여기 왔어?!”
“어이쿠 장갑이라도 좀 끼시지~” “아니야~ 내 집인데 나는 안 추워~”
무조건 이런들 저런 들 어떠하리. 그러나 올레길에서 만큼은 까탈스런 올레 지킴이.
 
“아들! 그래 오늘은 뭐 했어? 아빠는 우리 아들의 매분 매시가 궁금해~~   그래 사랑해~~”
가끔 자녀들과의 통화 모습을 볼 때는 닭살스럽다고 타박까지 했었다.
사랑하는 유가족과 사랑고백을 이미 받아버린 올레의 자연은 그를 그리워 할 것이다.
그러나 더 편안한 고통 없는 곳으로 잘 가시라 우리는 놓아줘야 한다.
그리고 그 뿌린 사랑이 예쁘게 피어오르도록 우리는 이 자리를 잘 지키면 된다.
아픈 고통을 행복으로 승화시킨 이 길에서 편안히 원하는 곳으로 잘 가시라는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다.
“올레사랑 옹고집쟁이님 저희들이 잘 지키겠습니다. 이제는 편히 쉬세요.”

문득 올려다 본 깜깜한 장례식장의 하늘.
살가운 아낙네 눈웃음 같은 초승달이 우릴 보며 웃고 있다. 그렇게 웃었던 익숙은 조길남님의 눈매가 보인다. 벌써 하늘 자락에 자리를 잡고 우릴 보고 있는 듯 하다.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글귀가 문득 떠오르는 오늘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올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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