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혜진 시민기자의 올레 이야기>

잠시 집을 떠났다. 반복되는 일상은 가끔 다른 세상을 동경하게 만들기도 한다.
현실을 수긍하며 나름 해소 방법을 찾으며 살기도 하겠지만, 부지불식간에 앙금처럼 서서히쌓인 마음의 찌꺼기는 어느덧 목을 타고 올라오는 듯 했다.
괴물로 변하는 자신이 보이기 시작할 즈음, 기회가 왔다.
올레길 인연으로 시작된 모임에서 몇몇이 부산의 '갈맷길'을 간다는 것이다.

'다른 지역 길을 아는 것도 경쟁력이 아닌가.'라는 합리적인 이유를 앞세우며 허락을 받고 감행했다.
이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을 한 제주올레는 전국 걷기 열풍을 일으켰고 각 지역마다 트렌드처럼 걷는 길이 속속들이 생겨났다.

제주올레길을 비롯, 지리산 둘레길, 강릉 바우길, 관동팔경길, DMZ평화누리길 등이 그 예 이다.  짧은 일정을 활용하기 위해 항공, 교통편의상 우리의 선택은 제주와 가까운 부산 '갈맷길'로 낙찰이 됐다. 지리산 둘레길도 물망에 올랐지만 접근성을 따졌을 때 일정이 길어져야 했다.

여러 여행자를 보아온 터, 나름 준비를 한다고 열어본 관련 홈페이지를 둘러 보며 참으로 난감했다. 올레길 초보들이 그렇듯 나 역시 초보의 길을 시작하는 셈이다.
익숙하지 않은 지명에 테마별 걷는 길 종류는 머릿속에 들어오질 않는다. 무작정 일행들을 믿고 보자며 봇짐하나 지고 시작된 부산길 걷기.

부산 '갈맷길'은 해안산책길, 숲길, 강변길, 원 도심길이라는 문화, 사탐방길로 테마를 달리하고 있었다.
암남공원으로 시작해 태종대 산책로 한 바퀴 도는 해안 3코스를 시작으로 걸었다.
이름으로 엿볼 수 있는 岩南공원을 시작으로 이어진 송도해안은 제주올레길 10코스 용머리해안 사계일대와 수월봉과 같은 여러 지층의 지질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제주의 지질과는 시대적으로 다르지만 푸른 바다와 시루떡을 쌓아 놓은 것 같은 해안 절벽이 볼거리이며 절벽 주변을 철재다리와 구름다리로 이어 해안을 즐길 수 있도록 돼 있었다.
지질학적으로 사층리, 절리, 정단층과 역단층등 모든 지질현상을 한 곳에서 관찰할 수 있어 '지층 박물관'이라 부를만하다.  제주바다보다는 조금 탁해 보이는 바다를 관망하다 태왁이 보인다. 제주 해녀들이 부산으로 많이 진출해 있다 한다. 해산물 파는 해안가에서는 종종 제주말이 들린다. 제주에 있는 듯 착각하기도 한다. 뭔가 '제주답다' 라는 느낌이 들 때 쯤 , 멀리 걸어야 될 남항대교를 보며 깊은 한숨들이 나온다.

제주올레에 익숙한 우리 모두는 길에 대한 편견이 이미 생긴 듯 하다.
공구리 농로는 용서가 될듯하나 대교 위를 씽씽 달리는 대형 트럭, 버스, 수많은 차들의 소음, 그리고 안개처럼 덮여 있는 갑갑한 공기와 함께 걷는 것은 포기했다.
우리 모두는 그 길만큼은 차로 이동을 했다.

이미 큰 도시로 개발, 발전된 거대한 부산의 도심지에서 어쩔 수 없는 일 인 것 같다. 빠른 것만을 추구하는 시대에 찻길로 인해 밀려난 우리들.
숨통을 트기 위한 길 만드는 사람들이나 걷는 사람들이나 가히 연민스럽다.
웃고, 우는 인생처럼 길을 대입 시키며 시원한 바닷길에 환호하고 힘들게 하는 곳에서는 묵묵히 침묵으로 일관하다 종점에서의 환희를 즐긴다.

종점 태종대 높은 곳에선 바다와 섬을 전망하며 지난 시간을 다 내려놓고 좋은 것만 기억에 남는 듯 헤헤 거리며 웃는다.
숲과 바다가 있는 곳이면 몰려드는 사람들. 일종의 숨구멍에 얼굴을 대고 있는 듯 살아내기 위한 자연에게로의 귀의라는 생각이 든다.
둘쨋날, 일행 중 프래너 역할을 하는 연장자의 의견에 뒤를 따른다.
일정이 맞는 올레꾼이 점점 모여든다.

길에서 만난 인연은 만나면 걸어야 되는 것이 당연시 된다.  많은 길을 걸어본 사람들은 동물적 감각으로 길을 찾는다. 지도 한 장 없이  우리는 넓은 찻길과 건물숲속을 이겨내니 보상을 해 주듯 자연의 품에서 숨 쉴 수 있게 길은 그렇게 이어졌다. 누구랄 것 없이 제주의 신선한 공기와 풍광을 떠 올리며 다시 한 번 명품길을 그리워 한다.

자신이 갖고 있는 것들이 넘치는 행복이라는 것을 열악한 곳에서야 후회처럼 반성하게 된다. 현실 도피로 선택한 일단 벗어나기 일정중 반은 지나 어느 덧 여느 여행자들 처럼 "고민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이 없어요."라는 말처럼 일상을 탈출한 것은 분명했다. 갖고 있던 갑갑한 머릿속은 텅 비어가기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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