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혜진 시민기자의 올레이야기

“엄마! 엄마와 난 전생에도 분명 엄마와 딸이었을 거야. 그것도 너무나 말도 안 듣고, 말썽만 피우며 엄마 속을 단단히 태우던 그런 딸 이었을 거예요. 그래서 이번 생에서는 참 착한 딸, 그리고 철이 다 든 딸로 만나 이렇게 웃으라고 지금이야 우리는 만나게 된 거 같아요. 저의 엄마가 돼주셔서 너무도 감사하고 행복해요.”

40세. 한 아이의 엄마. (서울시, 김미송)

그녀는 엄마가 돼 있지만 ‘엄마’라는 호칭을 불러 본 적 없이 컸던 어린 시절이 참으로 우울하게 떠오른다.

태어나 젖떼기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품은 기억조차 없다. 기억이 없음은 그리움도 없을 터인데, 부러울 것 없이 풍족한 생활 속에서도 유독 혼자만 가질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엄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며 마음 한구석은 항상 허전하고 그립다. 엄마가….

엄마를 갖고 싶다는 어린 소녀의 소원은 불혹의 나이가 돼서 이루어졌다. 뒤 돌아볼 틈 없이 앞만 보며 달려야 했던 싱글맘은 엄마이기에 딸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으로 열심히 살아내기에 바빴다.

▲ "엄마와 난 전생에도 분명 엄마와 딸이었을 거야... 저의 엄마가 돼주셔서 너무도 감사하고 행복해요."
쉴 틈 없었던 14년의 직장생활. 머리는 가슴에게 말한다. ‘쉴 때가 됐다’고. 평소 가보고 싶었던 제주는 어쩌면 그녀의 길고 어두운 긴 터널 끝의 밝은 햇살과 열린 세상과의 접선 역할을 해줬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엄마 역할 하느라 애섰던 자신에게의 선물이랄까.

‘렌트하고 제주의 시원한 바다와 함께 드라이브를 하는 거야. 그리고 조용한 찻집에서 차와 책을 마주 하는 거야.’

그녀의 여행 계획은 그랬다. 그러나 묵고 있던 민박집 사장님은 “여기는 올레라는 걷는 길도 생겼고 자연과 함께 해 봐. 렌트할 필요없어!”하며 극구 말리는 사장님의 충고에 올레를 소개받고 길을 걷기 시작했다.

자연이 인생을 가르쳐 주는 것 같았다. 어떤 것도 들어올 틈이 없었던 가슴은 점점 열리는 듯 했고 답답하게 차있던 것들은 차츰 비워지고 있었다. 올레가 열어준 마음안으로 점점 따뜻한 정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한 코스 마치고 돌아온 숙소는 기다려 주는 가족이 있는 집처럼 “밥은 먹었어? 얼른 씻고 밥먹자!” 눈물이 핑 돈다.

61세 서애순님.(서귀포시 중앙동)

서귀포 올레 시장 인접한 곳에 가정식 민박집을 운영하며 엄마의 따뜻한 손길같은 정성으로 여행자들을 쉬게 한다.

“받는 것 보다 베푸는 것이 더 편해요. ‘베풀며 살자’라는 소명을 갖고 살다보니 어느새 몸에 밴 것 같아요. 무의식적으로 생선 가시 발라 손님들 밥그릇에 올려주게 되드라구요. 그날도 어김없이 식사시간이 됐고 습관처럼 생선살을 올려주니 유독 미송이는 반응이 다르더군요. 태어나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며 눈물을 글썽이니 참 난감했죠. 그러다 개인사가 나오기 시작했고 그녀의 아픔을 알게 됐지요.” 그녀 역시 9년전 남편은 하늘나라로 먼저 갔다. 홀로 외딸을 키우며 지내다 딸을 서울로 대학 보내고 나니 그녀 역시 적적한 시간을 나고 있었다.

“저의 엄마가 돼 주세요”라는 말에 황당해 하며 손님으로 왔던 전국의 조카들은 많아도 엄마가 돼 주라는 말은 부담이었다. 어떻게 해 주어야 긴 시간 응어리를 풀어줄 수 있을지도 고민이었다. 평소 무뚝뚝한 성격의 두 여자. 그러나 서로 마주하고 있으면 연애하는 커플만큼이나 다정하고 살갑다.

각자의 세월 속에 묻어뒀던 아픔을 서슴없이 내어놓는 사이가 되면서 그녀는 엄마가 있었다면 해 보고 싶은 것들을 한을 풀듯 하나 하나 실행해 갔다.

▲ "한 코스 마치고 돌아온 숙소는 기다려 주는 가족이 있는 집처럼 “밥은 먹었어? 얼른 씻고 밥먹자!” 눈물이 핑 돈다."

제일 먼저 그녀는 “엄마! 엄마! 엄마!...!!!!” 그동안 불러볼 수 없었던 단어를 여한 없이 불러댄다. 아침, 저녁으로 문안전화를 하는 그녀는 힘들 때 전화해서 응석부릴 엄마가 생겼고, 찾아갈 친정집이 생겼다는 것은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할 만큼 그녀 인생에 큰 선물이었다.

22일을 엄마가 해주는 밥, 처음으로 받아든 엄마표 도시락, “다녀왔습니다!” 외치며 들어가던 서귀포 집에서 떠나는 날은 친정엄마의 정성어린 김치가 싸 있었고, ‘큰딸’이라는 표시를 해주시며 뒤돌지 말고 얼른가라며 눈물을 훔치는 모습에 진짜 엄마 같아 통곡 같은 울음이 쏟아졌다. 남들에게는 평범한, 등 긁어주기, 목욕탕가기, 등등이 너무도 행복한 그녀는 말한다.

항상 곁에 있어서 부모사랑을 감지 못하는 사람은 ‘엄마’라고 한번이라도 불러보고 싶은 심정을 모를 것이라고…. “내게도 엄마가 생겼어요. 편한 마음으로 더도 덜도 말고 잘 유지해 나갈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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