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행복은 자신이 심어 가는

우리들은 언제나 행복을 꿈꾸며 산다.때로는 행복한 듯 하다가도 금방 불행이 엄습하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 행복이란 영원한 향수인지도 모른다.도대체 우리들의 일생에 있어서 행복과 불행은 무엇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일까. 그것은 누구의 탓도 아니다. 부모의 탓도 아니요. 단지 자기자신이 원인을 제공하고 결과도 스스로 만들어내기 때문에 행복과 불행은 자기자신이 자작한 것이라 할 수 있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그 주체가 자기자신인 것이다.사람들은 오늘도 행복을 쟁취하고자 주변 환경이나 물질적인 조건개선 내지 과학 기술의 혁명이나 사회 체제의 개혁에서 불행을 탈피하고자 머리를 짜내고 있다. 그러나 생활 환경이 보다 편리해지고 사회 체제가 정비된 만큼 갈등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하고 있을까.인간의 행복은 어디까지나 만족감에서 그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만족을 채우는 욕구 충족은 끝이 있는 것일까. 만족은 불만족을 상대로 한 개념이다. 불만족이 없다면 만족은 영원히 그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듯이 만족은 불만족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성립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만족과 불만족은 같은 뿌리(본성)에 나와서 이름이 다를 뿐이다.다시 말해서 만족과 불만족은 항상 따라 다니면서 서로를 성립시키고 서로 전환하면서 끝이 없이 구르고 구르는 것이 마음의 정체이다. 욕심이 치성하면 마음이 편안해질 수가 없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면 마음은 항상 불안하기 마련이다.명심보감에 “마음이 편안하면 모옥(茅屋)도 안온하고 성품이 안정되면 나물국도 향기롭다”는 구절이 있다. 불만은 결핍에서 온다기보다 욕망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만에 자기가 속지 않으면 된다. 어떤 불만으로 해서 자기를 학대하지 않는다면 인생은 즐거운 것이다.욕망을 제어하는 방편은 자기 분수를 알고 자족(自足)함을 느끼는 일이다. 욕망에 현안이 된 인간은 어떠한 악도 스스럼없이 자행한다. 인륜도 도덕도 모두 망각한 추한 모습이 욕망에 빠진 인간의 모습이다.공자는 “소인은 이(利)에 빠르고 군자는 의(義)에 빠르다”고 했다. 욕망을 자제하여 생활의 절개를 지키는 것이 삶의 정도(正道)이다.현대는 온갖 유혹이 우리를 부르고 있다. 인간은 점점 많은 쾌락과 안일을 추구함으로써 생의 목적은 욕망의 충족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환각에 빠지고 있다. 어느 누가 이런 말을 했다.“탐욕은 바다 물과 비슷하다. 마시면 마실수록 목구멍에 갈증이 오는 것이요. 술에 취한 사람은 다시 깰 수 있어도 탐욕에 취한 사람은 깨지 않는다”고 했다.끝없는 욕망을 잡으려는 것은 무지개를 잡으려는 것과 흡사하다. 어떤 사람이 “온종일 봄을 찾아 구름 덮인 언덕길을 신발이 다 닳도록 오락가락 하였건만, 봄은 찾지 못하고 돌아와 정원에 있는 매화가지 휘어잡자 그윽한 향기 뿜어 웃는 모양에서 봄은 이미 내 집에 가득함을 알았다”는 옛 글이 있다.행복은 결코 먼데 있는 것이 아니다. 옛 선인들은 ‘소욕지족(小慾知足)’이라하여 작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알고 ‘안빈도락(安貧道樂)’을 했다. 방이 수십 개라도 내가 누어 잘 곳은 하나로 족하고, 땅이 아무리 많다해도 죽어 묻힐 곳은 반평이면 넉넉하다. 문제는 과연 어떤 것이 행복을 느끼느냐에 달린 것이다. 행복의 문을 여는 것도 자기요 받는 것도 자기다. 우리 주변에는 욕망이 빚어낸 흉한 군상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산야는 파괴되고 바다와 강물은 오염되고 그 속에 동물들은 질식하고 있으며, 사람들도 안심하고 물과 공기를 마실 수 없게 되었다.뿐만 아니라 도처에서 과욕으로 인하여 가산이 탕진되고 개인이나 공공기관이 빚더미에 눌러 앉게 되었다. 스스로가 욕망에 사로잡혀 불행을 자초하는 것이다. 참으로 행복은 스스로 닦고 마련하는 것이지 초능력자의 힘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주어진 환경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행복의 열쇠는 있는 것이다.이 열쇠로 자기가 자기를 구제하는 일이다. 구제의 시기는 바로 이 순간이요 구제의 장소도 바로 이 곳이다. 현재의 순간순간 한 생각 속에 영원한 과거로부터의 모든 원인이 숨어 있고 현재의 한 생각이 영원한 미래를 펼쳐 가는 법이다.과거나 미래의 모습이 모두 현재의 내 마음속에 갖추어져 있다고 할 때 현재야말로 가장 소중한 행복의 순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의 삶에서 욕망에 속지 아니하여 행복을 찾아야 한다.오남련/논설위원·전 서귀포교육장제242호(2000년 1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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