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특집기획> 서귀포에 부는 제주 이주바람(상)
귀농.귀촌, 심신치유, 여유낙락 등 이민사유 다양

육지에서 제주로 이주하거나 이를 꿈꾸는 사람들이 계속 늘고 있다. 작년 통계청이 내놓은 국내인구이동통계를 보면 지난 2008년부터 최근 3년간 제주는 전출인구보다 전입인구가 많고 다음카페 ‘제살모(제주도에서 살기위한 모임)’ 회원수가 6000여명이 넘어서는 등 제주 이주바람이 심상치 않다. 서귀포시에도 이 같은 바람이 불고 있다. 서귀포로 온 이주자들을 직접 만나 고향을 떠나 제주행을 택한 이유와 제주에서 어떤 삶을 꿈꾸고 있는지 등에 대해 2차례로 나눠 들어본다. <편집자주>

 

제주에 정주하는 사람들에는 여러 부류가 있다. 제주의 자연에 반해 떠나지 못하거나 다시 돌아온 사람들, 노후의 안식처를 찾는 사람들, 새 삶의 기회를 찾아온 사람들, 도시에서 농촌으로 귀농ㆍ귀촌한 사람들 등이다. 제주에 온 그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마음의 고통을 치유하다= 이가영(29ㆍ여)씨도 제주살기를 택했다. 경상남도 진주가 고향인 그는 작년 1월 가족과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왔다가 같은 해 3월 다시 제주를 찾았다. 제주여행 후 머릿속에 제주의 모습이 떠나질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리움으로 제주로 내려와 제주올레 1코스부터 다시 걷기 시작했다.

올레길을 걷기 시작한지 4일째 되던 날 그는 제주올레 6코스인 이중섭 거리에 멈춰 섰다. “내 자신을 위한 공간이 필요했어요. 이중섭거리에 도착하는 순간 이곳이 내가 원하던 그 공간이라고 생각했어요. 20대 마지막을 여기서 보내자고 다짐했죠.”

그렇게 그는 이중섭거리 근처에 연세를 얻어 전통찻집과 여행자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1년째 서귀포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주변에 그와 같은 또래 이주자들이 많다고 귀뜸했다.

틀에 박힌 현실에서 벗어나 잃어버린 자신을 찾기 위해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영혼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치유를 받기 위해 자연스럽게 제주로 몰려들고 있다는 것. 보수는 적더라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삶을 즐기겠다는 입장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엔 “제주는 알면 알수록 너무 매력적인 곳인 것 같다. 일단은 현재의 삶을 즐기고 싶다. 이와 함께 앞으로의 내 인생을 설계해 나갈 계획이다”고 답했다. 

또 다른 이주자 서울토박이 최선경(36ㆍ여)씨도 작년에 어머니 송현숙(66)씨와 함께 제주에 내려왔다. 틀에 박힌 서울생활에서 벗어나 치유와 성찰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올레길을 걸었던 것이 계기였던 것 같아요. 그때까지는 너무나 바쁘고 정신이 없던 삶이었거든요. 딱 1년 동안 스스로에게 휴가를 주자는 마음으로 이곳으로 왔죠.”

1년간 제주에서 생활하다 서울로 다시 돌아가려고 했던 이들은 최근 그 계획을 바꿨다. “나무, 꽃, 풀, 새소리, 바다 등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제주의 자연에 반했어요. 서울로 올라가려고 하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제주에 머물기로 했죠. 해외에도 여행을 많이 다니지만 제주만한 곳은 없는 것 같아요.”

제주에 흠뻑 빠진 이들은 최근 제주전통가옥으로 이사해 제주와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 또, 서울에서 교직생활 후 시인으로 활동해온 어머니 송씨는 서귀포문인협회의 회원으로, 딸 최씨는 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위원으로 각각 활동하고 있다.

 

■값진 경험, 소중한 추억들= 게스트하우스 ‘민중각’에서 장기 투숙하다가 지난 2월부터 근처에 연세를 얻어 살고 있다는 오선경(36ㆍ여)씨. 3년 전 해외로 어학연수를 떠나려했던 그는 우연히 KBS 다큐3일이란 프로그램에서 제주올레를 소개했는데 이를 보고 주저 없이 제주로 발길을 돌렸다.

서울에서 전통음식 관련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그는 지난 3년 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제주와 서울을 오가다가 지난 2월부터 서귀포에 연세를 얻어 제주생활에 합류했다. 그는 제주에서 살면서 많은 걸 얻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느끼지 못한 인위적이지 않는 자연과 사람과의 관계가 맘에 들어서 다니던 회사를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올레길을 걸어보자는 마음으로 제주와의 인연이 시작됐죠. 게스트하우스에 장기 투숙하면서 얻은 게 많아요. 전국에서 온 또 다른 게스트들과 서귀포 삼촌들을 통해 몰랐던 지역의 역사, 문화 등 이야기를 듣게 됐죠. 이런 소중한 경험들은 제주가 제게 준 선물이죠.”

 

■현재를 즐기며 행복을 찾다= 서울에서 배낭여행사에 근무하던 곰대리(박일례)와 비과장(박은경)은 제주에서 잠시 근무하다, 제주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2009년의 일이다. 두 명의 여성은 맑고 탁 트인 제주에 정착하고자 회사에 사표를 내고 낚시 하고 귤도 따고 고사리도 꺾으려 법환 포구 근처에다 올레꾼을 상대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다 지난 2011년 안덕면 대평리로 옮겨 구가옥을 리모델링해 ‘곰씨비씨 게스트하우스’를 열었다.

게스트하우스 운영을 핑계로 게스트들과 신나게 놀며 대평리에서 산다는 곰씨와 비씨는 “제주에 와서 계속 좋은 사람들을 만나요. 신기해요. 복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해요”라고 좋아했다. 이어 비씨는 “바쁜 일상생활을 벗어나 자신을 성찰하며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와요”라며 “대부분 그동안 받은 상처들을 치유하기 위해 제주를 찾고 있어요”라고 덧붙였다.

서울에서 갓 이주한 이현정, 육태원씨는 지난 3월 용머리해안 입구에 중섭공방 2호점을 열었다.  올레길을 수없이 걸어보며 각박한 도시생활을 접고 사람답게 살기를 갈망하려는 마음에서 1년 넘게 서귀포에 정착하고 있다. 겨울에 과수원 귤을 따는 등 낯선 농촌 생활에 적응하면서 생활비 정도의 수입을 내고 있지만,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 현재 서귀포 삶이 무조건 좋다“고 항상 웃는 얼굴로 힘든 줄 몰라한다.

육태원씨는 올레길 중 10코스(화순~모슬포)를 가장 선호하며, 그중에서도 용머리 해안길의 수려한 풍광을 으뜸으로 친다. 그는 이곳에서 특별한 기념품을 판매하며 새로운 일감을 찾으려는 생각에, 이중섭거리의 중섭공방 대표(정창섭, 이미경 부부)들과 의논한 끝에 분점을 내기로 결정했다.

한 달 정도 인테리어작업을 거치며 이중섭거리의 중섭공방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놓으려 노력했다. 마침내 용머리 해안에도 중섭공방 용머리 해안점이 탄생하면서 주변가게와 차별화 된 산뜻한 분위기로 꾸며졌다

제주에 새롭게 정착한 의미에서 ‘신제주인’이라 자처하는 이현정, 육태원씨는 매일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을 항상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어 출근길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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