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 시민기자의 귀농일기

지난해 딱 이맘때, 서귀포 신문사에서 기획취재로 우수 음식테마거리 취재갈 때 시민기자 명분으로 함께 했던 여정 중 나를 만났다.거의 매일이 일에 파묻혀 시간이 어찌 가는지 모르게 살다가 구월 시월이 그나마 생각할 여유도 생기고 삶을 반추해 보기도 하며 내 정체성을 확인해보기도 한다. 그 여행에서 잠자던 나를 만났다.

나의 20대 초반은 홀로서기위해 고군분투하였지만 길을 찾는 과정이 길고 무거웠다. 돌아보면 그 시절 또한 내 삶에 뿌리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나를 찾고, 길을 찾고, 그러느라 젊음을 한번 제대로 만끽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금 많은 젊은이들이 길을 찾지 못하여 방황을 한다는데 나도 그 길을 아스라히 지나 왔었다. 눈물 젖은 빵...그 의미를 조금은 맛 본 시절이기도 했다.

그런데 돌아보니 그때는 용기도 패기도 깡도 부족했었던 것 같다. 떨치고 일어나서 내달리는 것, 몸으로 부딫혀 보는 것이 부족한 내게 주문만 걸었던 유약한 시절이었었다. 마흔 다섯을 지나서 떨치고 일어설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것 같다.

육제척인 노동보다는 정신 노동에 더 적합할 것 같은 내 신체구조였지만 그 한계를 극복하며 나아 올 수 있었던 것은 내 유약함을 떨치고자 스스로에게 주문했던 단순 무식(^^)의 삶을 지향한 후 찾아온 변화였다. 그리고 세 아이의 엄마가 되고나서 더이상 유약한 나로서는 바람을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내 생애 가장 여자답고 가장 아름답던 24살,그 해 일년을 춘천에서 살았다. 홀로 독립하기위해 집을 멀리 떠나온 터였다. 그런데도 내 마음은 길을 정하지 못해 방황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 해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 전권을 다 읽으면서 여러 삶을 만났다. 그랬어도 삶에 풍덩 뛰어들지 못하고 서성 거렸던 것은 내 안의 유약함 때문이었다.

그 박경리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통영 앞바다를 무작정 서성이다가 호젓한 바닷가에 있는 팬션에서 우리들은 하룻밤을 자고나서 아침 일찍 박경리 문학 전시관을 찾았다. 나는 그곳에서 내 젊은 날을 떠올렸고 지금의 나를 바라 보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삶은 굴레이지만 이제는 더이상 서성거리지 않는다. 그리고 가능하면 따뜻하게 바라보고자 한다. 부정보다는 긍정으로, 비난보다는 칭찬을 하며 그렇게 살고 싶어한다. 비난의 칼날을 날카롭게 세워서 남을 몰아치는 사람들도 피하고 싶다.

함께 있으면 편안한 사람,따뜻한 사람,돌아서서 내 약점을 헤집지 않고 넉넉한 품으로 감싸줄 것 같은 사람,생각만해도 웃음이 배시시 배어나오게 하는 사람. 부귀나 명예에 너무 집착하지 않고 맑은 눈으로 삶을 바라보는 사람, 눈에 드러나지않게 배려가 깊은 사람, 그 사람을 생각만 해도 행복해진다.

내가 그런 사람을 좋아 하듯이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싶다. 이래서 내 나이가 좋아졌다. 이런 마음으로 편안해질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

박경리 문학관을 돌아보고나서 나는 다시 한번 찬찬히 그 분의 문학세계와 울림을 맛보기위해 그 분 책들을 섭렵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삶을 핑계로 책 한번 제대로 읽지 못한 나를 돌아보고 반성했다. 늘 핑계가 되는 말을 습관처럼 한게 아닌가 반성했다.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