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 시민기자의 귀농일기

농사 10년쯤이면 산마루에 올라앉아 내려다보는 여유를 부리게 될 줄 알았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무작정 도전한 유기농 귤 농사. 귤 농부로 9년째 살고 있는 지금, 아득하기는 왕초보 시절 때보다 더한 것 같습니다.

모를 때는 무식하게 돌진하는 패기로 앞만 보고 달렸는데 무언가 조금 알 듯도 한 시점이 되니 오히려 또 다른 벽을 만나게 됩니다.

유기농농부로 살아남기 위해 집중했던 지내온 날, 이제는 내가 만들어 온 길이 다른 초보농부들에게는 길이 되기도 하는 시점이 되었습니다.

귀농귀촌 열풍 현상으로 먼저 귀농하여 자리 잡은 제가 멘토가 되어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기도 하여 때로 부담스럽고 멀미증상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제 유기농 귤 농사의 숲이 보이는 시점이 되긴 했지만 저로서는 새로운 길을 만들면서 나아가야 하기에 늘 한계상황을 마주합니다.

제가 걸어온 길이 초보농부에게는 길이 되기도 하지만 제가 걸어가야 하는 길은 만들어서 나아가야 하는 길이므로 도전을 멈추지 않아야 하는 선구자적인 운명에 놓여 있음을 느끼고 묵직한 고민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점점 더 까다로와지는 소비자들의 욕구와, 점점 더 광폭해지는 이상기후에서 편안하게 농사짓던 시절은 다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농산물 FTA체결로 보호막은 사라졌습니다. 하우스지원이니 타이백지원이니 하는 미봉책으로는 5년 후조차 기약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생산현장에서 찾아낸 길이 아닌 탁상행정에서 만든 길은 거의가 전시행정에 불과함을 보아 왔기에 또 다른 위기 앞에 서서 벽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3대 4대 수 백년을 탄탄하게 이어갈 수 있는 강소농의 길. 그 길을 찾아내서 만들어 가야 하는 시점에 서서 또 다른 백의종군의 길을 가야하는 비장함을 곱씹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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