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장 수 명

 

삽화/김품창 화백.

 

“휴우~!”
순이 할머니는 한숨을 몰아쉬면서 몸을 떤다.
“지아 아버지가 그날 서울만 가지 않았더라도 지아 엄마가 그렇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리고 지아 아버지를 돌아보면서 한마디 한다.
“이씨, 지아 좀 그만 때려! 애가 꾀 들고 다 컸는데, 자꾸 그러면 애 마음 다치지. 내가 보니까 지아가 아주 똑똑해.”
순이 할머니는 그렇게 한마디 하고 대문을 나선다.

2. 미운오리 새끼

교실 안은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자, 여름방학 동안 부모님 말씀 잘 듣고, 물놀이 조심하고, 개학 때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자!”
“예~!”
아이들은 교실이 떠나가도록 큰 소리로 대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아의 마음은 너무나 무겁다. 무서운 아버지와 방학동안 함께 있을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가슴도 벌렁벌렁 거리며 마구 방망이질을 했다.
“지아야, 방학 잘 보내라.”
지아의 마음을 알아차린 듯 선생님은 지아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그리고 따뜻하게 안아 주기까지 한다. 지아는 순간, 눈물이 울컥 솟아올라, 하마터면 소리 내 울 뻔했다. 입술을 꼭 깨물고 간신히 참았다. 그리고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아이들 속으로 파고들었다.
아이들은 방학동안 부모님과 여행할 계획으로 한껏 들떠 있었다.
‘참, 좋겠다.’
지아는 아이들의 웃음이 부러웠고, 표정이 부러웠다.
‘나도 엄마가…….’
느닷없이 엄마를 생각한 자신에게 스스로 깜짝 놀랐다. 그래서 마치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재빨리 교문을 나서는 아이들 속을 비집고 교문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번 방학 동안은 꼭 옛날의 아버지의 사랑을 다시 얻을 거야.’
그런 생각을 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방학이 시작한지도 며칠 지났다. 다행히 그동안 지아는 아버지에게 혼이 나거나, 얻어맞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지아의 표정은 많이 밝아졌다. 늘 주눅이 들어서 움츠려져 있던 마음에 용기도 생겼다. 지아는 이참에 아버지에게 더 잘 보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던 지아의 눈에 검정색아버지의 구두가 눈에 띈다. 먼지가 뿌옇게 묻어있었다. 지아는 입김을 호호 불어가며 아버지의 구두를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았다.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아버지 목소리에 놀란 지아는 닦고 있던 구두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야, 이 기집애야, 누가 너 보고 내 구두 만지래!”아버지는 다짜고짜 고함을 지르며 지아에게 달려온다. 그리고 지아의 머리를 때렸다. 지아는 아버지에게 맞은 머리를 문지르며 바닥에 떨어진 아버지의 구두를 다시 집어 든다.
“그냥 두라고 했지! 만지지 말라고 했지!”
아버진 다시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며, 지아의 뺨을 사정없이 때렸다.
“…아·버·지·잘·못·했·어·요…….”
지안 들고 있던 아버지 구두를 바닥으로 떨어뜨리며 황급히 집밖으로 달아났다.
‘아버지 미워, 미워!’
지아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후두둑 떨어진다. 매일 아버지에게 까닭 없이 매를 맞고 혼이 나는 지아. 공부하면 전기세 많이 나오게 밤늦도록 공부한다고 혼나고, 심부름 좀 하려고 하면 재수 없게 나선다고 혼나고.
아버지에게 얻어맞은 오른쪽 뺨이 얼얼하다. 빨갛게 부어오른 뺨을 만지며, 지아는 여름방학되기 전에 만들어 놓은 비밀 장소로 가고 있었다.
그 곳은 지아가 만들어 놓은 자기만의 본부였다. 아무도 모르게 지아가 지난 6월부터 만들어 놓았던 지아의 본부. 지아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슬프고 속상할 때면 지아는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보면 조금씩 마음이 가라앉았다.
지아의 집 뒤로 돌아서 가면 좀 오래전에 블록공장이었던 커다란 공터가 나온다. 그리고 그 공터를 지나 조금 더 가면 기차가 지나가는 철길이 있고 비밀장소는 그 철길둑에 있다.
아카시아 나무와 잔풀이 잔뜩 우거진 둑에 지아는 블록 공장에서 나뒹구는 벽돌과 깨진 블록들을 주워 바닥을 깔고, 아카시아나무가지를 얼키설키 엮어서 벽과 지붕을 만들었다. 그리고 괭이밥, 양지꽃, 고추풀등을 비밀장소 옆에 옮겨 심어 놓았다. 지금은 꽃이 모두 지고 없지만, 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참 예뻤다. 지아는 그 곳에서 몹시 슬프고 속상할 때면 엉엉 소리 내서 마음껏 울기도 하고, 목청껏 소리를 지르면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지아는 차가운 바닥에 등을 대고 눕는다. 시멘으로 만들어진 블록의 차가운 기운이 땀에 젖은 등을 시원하게 식혀준다. 혼자 있을 수 있어서 지아는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마음은 너무 슬프고 두렵다. 아버지가 화를 내기시작하면 그 상황은 아주 오래도록 이어졌다. 지아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하다.
“울면 안돼, 울면 안돼,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푹푹 찌는 삼복더위에 지아는 난데없이 크리스마스 캐롤송을 부른다. 한 참 동안 이노래 저노래를 부르던 지아가 노래를 뚝 멎는다.
‘아빠는 언제쯤이면 날 좋아할까? 언제이고 아빠는 날 좋아하지 않겠지.’
혼자서 제가 묻고, 제 물음에 답을 하면서 지아는 정말 슬펐다.
“이지아, 왜 태어났니?”
지아는 제 자신에게 묻는다. 종종 저 혼자 묻고 답을 하곤 했다. 도대체 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제 겨우 9살인데 말이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태어나서 한 번도 본적 없는 엄마를 생각하면서 지아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그리고 지아는 아버지가 왜 자기한테 그렇게 무섭게 그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언니들에게는 그렇게 친절하고 너그러운 아버지이면서, 왜 유독 자기에게만은…….
혼자서 이생각저생각을 하던 지아는 아카시아 나무사이로 실바람이 솔솔 불어오자 깊은 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꿈을 꾼다. 꿈속에서 지아는 세 살쯤 되어 보였다. 아버지의 어깨위에서 목말을 타고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는 지아가 보였다. 맛있는 과자를 손에 들고 와서 지아 앞에 내미는 아버지의 웃는 얼굴도 보인다. 꿈속에서 까르르 웃던 지아가 제바람에 놀라 잠에서 깨고 말았다. 일어난 지아는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아버지.’
잊고 있었던 기억이 불쑥 떠올랐다. 초등학교 입학하는 날이었다. 아버지는 지아의 긴 머리를 한 시간여 동안 묶었다가 풀고, 다시 묶고……, 결국엔 가지런히 빗긴 머리에 빨간 리본이 묶인 머리띠를 씌워주고는 커다란 손으로 콧등을 쓸며 씨익 웃었다.
“거참, 잘 안되네.”
아버지는 옷장에서 하얀 종이가방을 꺼내 지아 손에 들려주었다. 종이 가방 속에는 공단으로 된 하얀 둥근칼라에 빨간 니트 원피스앙상블과 빨간 구두가 들어있었다. 공주처럼 예쁘게 차려 입은 지아의 손을 잡고 학교를 가면서 아버지는 정말 즐거운 표정이었다.
“우와~, 우리 지아 정말 예쁘다!”
수도 없이 보고 또 보고 지아의 모습을 훑으며, 함박웃음을 웃던 아버지모습이 불현 듯 생각났다. 그때 일을 생각하던 지아는 그 빨간 원피스가 생각났다. 입학하고 한 참을 입고 다녔던 원피스. 그런데 그 원피스가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그 빨간 원피스가 어디에 있는지 몹시 궁금해졌다.
‘빨리 집에 가서 찾아봐야지!’
아카시아본부에서 나오자마자 찌는 듯한 삼복더위가 숨을 턱턱 막는다. 집으로 가려던 지아는 걸음을 멈추었다. 아버지와 마주칠 두려움이 지아의 가슴에 또 다시 방망이질을 하기 시작했다. 지아는 발길을 돌려 다시 본부로 간다.
‘아버지, 그리고 지민이 언니.’
지아가 넘지 못할 두개의 산이었다.
아버지가 지아를 미워하던 그때부터 제일 큰 언니인 지민이 언니도 차가운 냉기를 지아에게 풍겼다.
본부에 오도카니 앉아서 지아는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집에서 제일 사랑을 많이 받았던 지아였다. 그래서 늘 바로 위의 언니 지인이가 샘을 내곤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지아는 길게 한숨을 뱉었다. 그리고 더욱 절망의 끝으로 내몰리는 기분이 들어서 몸을 잔뜩 웅크렸다.
‘갑작스레 아버지가 변한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여러 가지 일들을 되새김질해본다. 하지만 뚜렷하게 기억에 남을만한 일은 생각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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