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장 수 명

‘아버지!’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어버린 지아가 늘 측은하고 안타까웠던 아버지. 그래서 지아를 다른 자매들보다 더 많이 사랑하고 아껴주었던 아버지!
 지아의 머릿속은 온통 아버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했다. 두려움과 그리움. 지난날을 생각하던 지아는 아버지가 갑자기 변해버린 어느 순간이 기억저편에서 스멀스멀 떠오르기 시작했다.

작년, 일학년 6월말이었다.
 지아가 학교에서 받아 온 통신문을 들여다보던 아버지의 얼굴이 한 순간에 일그러졌던 그날이 떠올랐다. 그날 아버지는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며 새벽녘에야 들어왔다. 그리고 연신 죽은 엄마이름을 부르기만 했다.
 “진숙아, 진숙아, 이 나쁜년, 진숙아…….”
 다음날 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새벽이었다.
 아버지는 집을 나가시던, 그 밤처럼 술을 아주 많이 마시고 돌아오셨다. 아버지를 보자, 반가움에 지아는 맨발로 달려 나가 아버지 팔에 매달렸다.
 그 순간, 아버지는 강하게 그리고 너무나 차갑게 달려드는 지아의 가슴을 굵은 팔로 막았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난생처음의 거절, 지아는 당황했다. 온 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변했다. 지아가 눈에라도 띄면 다짜고짜 욕을 하면서 거친 손으로 지아에게 매질을 하기일수였다. 게다가 매일 술에 취해 있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지아는 몸을 움츠린다. 푹푹 찌는 삼복더위에 싸한 냉기가 끼쳐 온몸에 한기가 느껴졌다.
 ‘맞아, 그때부터야, 그 건강검진기록표……. 뭔가 알 수 있을 거야. 거기에 뭔가 비밀이 있   어.’
 지아는 제 물음에 대답하고, 본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잰걸음으로 집으로 간다.
 여름날 긴긴 해가 어느새 서쪽 하늘 끝을 붉게 물들여 놓고 있었다. 무심히 걷던 지아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녁식사 시간이잖아!’
 지아는 뛰었다. 저녁밥 먹는 시간에 늦으면 아버지에게 혼난다. 허겁지겁 집으로 가는 지아는 두려웠다.
 ‘하느님, 혼나지 않게 도와주세요!’
 지아는 마음속으로 기도를 했다. 그리고 블록공장을 지나서부터는 뛰기 시작했다. 집안으로 막 들어서려고 할 때다.
 “지아는?”
 아버지의 낮게 깔린 언짢은 듯한 목소리가 담을 넘어 들려왔다.
 “오늘 온 종일 안 보였어요.” “조금한 년이 어디 간 거야?”
 “…….”
 “…아버지, 지아 좀 때리지 마세요.”
 둘째 언니 지은이가 기죽은 듯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한다.
 “…….”
 의외다. 화를 낼 줄 알았던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밖에서 듣고 있던 지아의 등골은 서늘해졌다.
 “아버지, 우리도 무서워요.” 지은이 언니가 아버지가 가만히 있자, 기회라는 듯 또다시 말을 한다.
 “가만있어!”
 큰언니 지민이가 둘째 지은이 언니의 말을 가로막는다.
 “시끄럽다!”
 아버지가 언짢은 목소리로 소리를 버럭 지르며 들고 있던 숟가락을 탁 소리가 나도록 상에 내려놓았다.
 “누구든지 내 앞에서 지아 이야기를 하면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알아서들 해!”
 담을 넘어 들리는 소리. 지아는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아니, 왜 거기 서있니? 어서 들어가라.”
 한데 바람을 쐬려고 나온 앞집 순이 할머니가 우두커니 서 있는 지아를 보고 말을 했다.    그 소리를 들은 아버지는 얼굴을 찡그리시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어서 들어오지 못해! 어딜 종일 쏘다니는 거야!”
 아버지는 쭈뼛거리며 들어오는 지아에게 고함을 지르고 밖으로 나간다.
 “어디 갔다가 오는 거니?”
 큰언니 지민이가 못마땅해 하며 톡 쏜다. 게다가 둘째 지은이언니도 매일 너 때문에 조용할 날이 없다며 지아에게 한마디 쏘아 붙였다.
 “그만해. 어서, 밥 먹어.”
 지인이 언니가 숟가락을 쥐여 주며 밥이랑 반찬을 지아 쪽으로 밀어 준다.
 “지아야, 너 왜 매일 아버지에게 혼나는데? 아버지에게 혼나지 않게 좀 해.”
 지인이 언니가 지아 옆에 바싹 다가앉으며 말했다.
 “응, 알았어.”
 지인이 언니는 지아에게 아버지가 하지 말라는 일은 하지도 말고, 아예 아버지 앞에 얼씬거리지도 말라며 귓전에 대고 소곤거렸다. 고개를 끄떡이며 지아가 배시시 웃는다.
 “웃음이 나오니? 너 때문에 얼마나 무서웠는데.”
 지인이는 도끼눈을 뜨며 정색을 한다. 아무생각도 없는 아이 같은 지아가 정말 걱정이 되고, 밉기도 했다. 온 종일 굶었던 지아는 밥이 정말 꿀맛 같다. 아버지에게 혼났던 일, 무서웠던 일들을 밥을 먹으면서 모두 잊어 버렸다.
 “잘 먹었다.”
 지아를 한심하게 보는 지인이 언니와 눈이 마주친 지아는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상을 치운다. “내가 할게. 너는 가서 씻어.”
 “아니야, 내가 설거지 할게.”
 재빨리 지아는 작은 손에 커다란 빨간색 고무장갑을 끼며 말했다.
 “할 일도 없이 가만히 있다가 아버지에게 혼나고…….”
 지아의 말을 들으면서 지인이는 가슴이 싸하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2학년인 지아는 바로위 언니인 지인이와는 4살이나 차이 났다. 여느 아이들 같으면 엄마한테 온 종일 떼쓰면서 지낼 나이인데, 벌써 아버지 눈치를 알고, 어떻게 하면 살기 편한지 알아서 해야 하다니 지인이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지아는 정말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것이 더 힘들다. 밥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이런 일이라도 해야지 아버지한테서 벗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빨간 원피스, 건강검진 기록표.’
 설거지를 마친 지아는 얼른 손을 닦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아버지 방으로 조심조심 들어간다. 붙박이장문을 열고 서랍이며, 옷들 사이사이를 들춰본다. 하지만 지아가 찾는 것은 없다.
 ‘어디에 있지?’
 그때다. 마당에서 아버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약주도 안하고 그냥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어떡하지!’
 지아의 심장이 쿵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것 같다. 한번 나가면 밤늦도록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아버지였는데, 하필, 오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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