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영 시민기자> 나의 삶, 나의 추억

최후의 승자는 용서라고 했던가. 억울하게 죽은 영령들이 해원을 해야 함에도 아직 갈 길은 먼 것 같다. 아픔이 묻어나지 않은 곳이 어디 있으랴. 유년시절에 겪었던 ‘트라우마’. 그 상처는 오랜 세월에 희석된 줄 알았는데 요즘처럼 어떤 계기가 도래하면 다시 또 감당하기 어려운 공황상태에 빠져 들곤 한다. 젊은 날은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이라면, 이제는 나아감의 희망보다 멈춤의 미덕을 터득하는 시기. 그런데도 어두웠던 기억들의 깊이는 더욱 선명해 진다.

잔인한 사월이라는 게 우연이 아닌 듯, 지난 사월은 참으로 힘겨웠다. 신도 침묵하고 외면해버린 4월 16일! 그날 일어난 ‘세월호’ 참사는 온 국민을 ‘패닉’ 상태로 몰아넣었다. 침울한 분위기에 젖어 잊던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분노로 들끓고 있다.

고교시절! 얼마나 순수하고 꿈 많은 시절인가. 꿈에 부푼 이 아이들이 기본도 모르는 어느 한 어른의 잘못으로 ‘세월호’에 갇힌 채 차디찬 바닷물에 수장되고 말았으니, 금쪽같은 자식들을 가슴에 묻은 부모의 심정을 어떻게 헤아려야 하나…

지난 4월 19일, 제주시 산지항 제 2부두에 다녀왔다. 아침부터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바람마저 심상치 않은 날이었다. 제주민예총 주관으로 그곳에선 수장(水葬)해원상생 굿을 하고 있었다. 거기서 나는 또 다른 사실을 알았다.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주민 중 일부를 예비검속으로 주정공장에 수감 했다가 7월 16일 밤 9시경, 10대의 차에 50명씩 태우고 산지 항으로 가서, 다시 또 그들을 배에 태운 뒤 바다로 나가 두 시간 만에 빈 배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쉬쉬하며 바람결에나 들었던 말들이 지금 눈앞에 현실로 나타났다. 생전 처음 와본 이곳. 바로 내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그 장소였기에 나는 그날 얼마나 떨었는지 모른다. 수장된 영령들이 비와 바람에 못다 한 이야기들을 수많은 메시지로 전달하는 것만 같았다. 해원상생 굿은 비극적 죽임을 당한 ‘학살의 터’를 찾아 인간의 영혼뿐이 아닌 상처받은 장소, 즉 죽임의 장소였던 자연도 함께 치유하는 상생으로 생명의 굿이기도 했다.

기억하기조차 싫은, 몸서리치는 죽은 땅을 되살리는 회생의 제의(祭儀)였다. 역사적 비극을 치유하는 예술과정이었지만, 내 아버지가 포승줄에 묶인 채 이곳에서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 수장 당했다는 생각이 미치자, 온 몸이 얼어붙을 듯 감정 이입이 안 되었다. 아울러 ‘세월호’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아이들이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고, 바다에서 죽어가는 모습이 내 아버지와 오버랩 되자 온몸이 마비될 듯 굳어지는 느낌이었다. 바다를 보는 것조차 고문이었다.

그날, 어느 시인의 시낭송을 들으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훔쳤는지 모른다.

 

물에서 온 편지

김수열

죽어서 내가 사는 여긴 번지가 없고

살아서 네가 있는 거긴 지번을 몰라

물결 따라 바람결 따라 몇 자 적어 보낸다

아들아,

〈중략〉

조반상 몇 술 뜨다 말고

그놈들 손에 질질 끌려 잠간 갔다 온다는 게

아, 이 세월이구나

산도 강도 여섯 구비 훌쩍 넘어섰구나

 

그러나 아들아

나보다 훨씬 굽어버린 내 아들아

젊은 아비 그리는 눈물일랑 이제 그만 접어라

네 가슴 억누르는 천만근 돌덩이

이제 그만 내려놓아라

육신의 칠 할이 물이라 하지 않더냐

나머지 삼 할은 땀이며 눈물이라 여기거라

나 혼자도 아닌데 너무 염려 말거라

 

네가 거기 있다는 걸 보여 줄 수 없듯이

내가 여기 있다는 걸 보여 줄 수 없어

그게 슬픔이구나

봉분 하나 없다는 게 서럽구나 안타깝구나

그러니 아들아

바람 불 때마다 내가 부르는가 여기거라

파도 칠 때마다 내가 우는가 돌아보거라

물결 따라 바람결 따라 몇 자 적어 보내거라

죽어서 내가 사는 여긴 번지가 없어도

살아서 네가 있는 거기 꽃소식 사람소식 그리운 소식

물결 따라 바람결 따라 너울너울 보내거라, 내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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