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셈이 확 피었습니다. 밭 올레 길섶에서 약모밀을 본 후의 일입니다. 차타면 10분 거리를 약모밀은 몇십 년 걸려 온 것이라 배력배력 아니 할 수 없었습니다.

‘술할망칩’ 올레에 약모밀이 있었습니다. 나 보다 위인 또래 두어 명이 파면 ‘새 감저’가 있다고 추그렸습니다. 그들의 수작에 걸려 잡아당겼는데 고약한 냄새가 났습니다. 손이 썩을 거라며 아주 놀려, 세상 무너지는 근심에 그 올레를 피해 다녔습니다.

현재는, 메밀 잎 같이 생겨 약모밀이라 부른다고 하지만 어릴 때는 꼭 구감에 난 이파리 같았습니다. 구감은 순을 키우고 난 고구마입니다. 모종 역할이 끝나면 내버려 두는데 간혹 어린 고구마가 들기도 했습니다. 새가 소똥 속에 벌레가 있음을 알아 소똥을 헤집듯 우리도 구감을 뒤졌습니다.

영천동주민센터 동쪽에 우알로 난 골목이 있습니다. 좁고 구불거려 운전이 서툰 사람은 불편한 길입니다. 여기에 ‘조레기낭’으로 만든 ‘쏠대’가 있었습니다. 원래는 ‘사장밭’에 세웠는데 그냥 없애기가 뭣해서 골목으로 옮겼다고 합니다. 저는 제 키보다 작은, 썩은 기둥만 봤습니다. 그때는 그게 ‘쏠대’인 줄 몰랐습니다. 지금은 골목 중간으로 중산간도로가 지납니다.

사장밭부터 쏠대 있던 곳까지 길가에 약모밀이 자랐습니다. 토평 약모밀은 ‘제주식물도감’에 나올 정도로 유명합니다. 도감에서 약모밀에 대한 설명을 처음 보았을 때 바로 ‘쏠대’ 골목이 떠올랐습니다. 돌담 넘으면 ‘약촌’이라 자라는 이유를 짐작할 만하나 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문헌에는 제주와 도서 지방에 자란다고 되어 있습니다.

전에, 부스럼 따위에 쓰려고 더러 가꾸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여러 질환에 효험이 많다는 소문이 돌아 인기가 많습니다. 약모밀의 한약명은 어성초인데 만지면 생선 비린내가 나기에 붙은 이름입니다.

매년 약모밀이 필 때쯤, 쏠대 골목을 걷습니다. 길 에염, 돌담 따라 쭉 약모밀이 피면 길이 펴지는 듯 환합니다. 어느 해는 제초제가 뿌려져 있었고 또 언젠가는 길가를 깨끗하게 베어내서 꽃이 없었습니다. 이런 때는 좀 섭섭하지만 상심하지 않았습니다. 약모밀은 땅속으로 줄기가 뻗어 가며 사는 식물이라 원만해서는 죽지 않기에 다시 볼 수 있습니다.

 길 이름을 새로 짓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쏠대 골목은 ‘약모밀로’라고 부르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몇몇 지인에게 이야기했더니 반응이 신통찮았습니다. 나만 좋은 것 같았습니다.

 오일육도로가 마을 밖으로 건너가면서 약모밀이 많이 번졌습니다. 길 공사를 하는 와중에 뿌리들이 옮겨 다녔고 또 환경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새로 난 길을 운동 삼아 걷다 약모밀을 만나면  잠시 서 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약모밀이 이제 중산간 우리 밭 올레까지 온 것입니다.

쏠대-과녁. 약촌-경성제국대학교(현 서울대) 생약연구소 제주도시험장. 쏠대는 ‘몰귀’(말의 형상을 한 솟대)라고 설명한 분도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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