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의 관

21세기를 흔히 포스트 모더니즘(Post Modernism)의 시대라 한다. 1700년대 중반 영국의 산업혁명 이후 세계를 지배하던 ‘모던’의 규범들이 점차 자취를 감추고 새로운 질서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대량’과 ‘규격’이 ‘소량’과 ‘다품종’, 그리고 ‘유연’으로 대체되었다. 볼펜만 하더라도 불과 이삼십년 전에는 ‘모나미’만 있는줄 알았는데, 이제는 그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지난 20세기는 사회 모든 면에서 ‘대량’이 각광받던 시기였다. 생산도 대량으로, 소비도 대량으로 해야 발전인 줄 알았고 직성이 풀렸다. ‘대량’의 관념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모든 것을 규격화하는 것이 유행했다. 우리가 입는 양복바지의 허리치수를 보면, 32인치다 34인치다 하면서 딱 맞게 규격화되어 있다. 그렇지 않고는 대량으로 만들어낼 수 없기에 정부와 기업은 규격의 효율성과 규모의 경제를 소리높여 외쳐댔고 소비자들은 그게 맞는 줄 알고 영락없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실제 우리의 허리치수는 그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다. 평소 32인치이던 허리가 배고프면 31인치로 줄어들기도 하고 배부르게 먹고 나면 33인치로 늘어나기도 하는 것이다. 이치적으로는 허리가 처한 상황에 따라 31∼33인치까지의 바지를 입어야 맞는 것이다. 아니면 우리의 한복처럼 유연하게 1∼3인치는 자유자재로 늘였다 줄였다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정보화 덕택에 우리 모두가 이러한 사실들을 알 수 있게 되면서, 소비자들은 32인치의 바지를 거부하고 31인치에서 33인치의 바지를 선호하게 된 것이다. ‘규모’와 ‘규격’ 보다는 ‘범위’와 ‘선택’이 중시되는 사회로 전환된 것이다.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각 분야의 생산자들도 소비자 선택에 맞춰 생산의 범위를 넓히고 다품종·소량의 유연한 체제로 바꿀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관광을 가리켜 매우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현상이라 한다. 그래서 그런지 관광은 미래사회를 주도할 잠재력이 높은 산업의 하나로 주저없이 꼽힌다. 관광의 기본적 속성이 일상의 규격으로부터 탈출하는 자유활동이기 때문인 모양이다.이런 점에서 제주도는 분명 ‘기회의 섬’이다. 세계적으로 유력한 매스컴인 르몽드나 뉴스위크에 특집으로 소개될 만큼 제주도의 관광개발 잠재력은 크고 시대 또한 그리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기에 따라서는 제주도가 세계시장을 주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가능성을 현재화 해내지 못하고 있다. 관광잠재력을 살리는 것은 고사하고 거꾸로 잠재력을 갉아 먹거나 되지도 않는 ‘술수’로 임기응변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아직도 ‘대량’의 시대에 젖어있어 툭하면 대규모를 선호하고 규격화하려고 한다. 발을 담그며 석양에 서는 그 바다를 메워버렸거나(제주시 탑동) 또 메우려고만 한다(서귀포시 워터프런트 개발계획). 제주도 전체가 하나의 관광지임에도 불구하고 23개씩 관광단지·지구를 다시 지정해야 하고 리조트를 개발해도 꼭 대규모 단지이어야 한다. 관광일정은 맨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그게 그거다. 양질의 관광객 유치는 관심 밖이고 오직 관광객수가 얼마나 늘어났느냐를 가지고 타령이다(세계적으로는 관광구조의 개선을 위해 오히려 관광객수를 줄이려고 애쓰는 관광지도 많다). 이래 가지곤 제주관광의 내일이 없다. 한물간 관광형태만 판치는 ‘죽어있는’ 관광박물관을 만들어서 히트해 볼 요량이 아니라면, 관광의 구조를 포스트 모더니즘의 패러다임에 맞게 리모델링해야 한다. 대량보다는 소규모, 단일보다는 다품종, 규모보다는 범위로 관광의 체격을 조정하고 관광객과 지역사회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외자유치다 뭐다 하면서 대규모 시설개발에만 열 올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노력으로 지역을 잘 아는 주민이나 기업이 적은 돈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관광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각양각색의 지역밀착형 관광활동이 유익하고 재미있는 시설들과 함께 여기저기 있어줘야 한다. 그에 맞는 표적 관광객들을 조금씩 조금씩 끌어와, 붐비지 않으면서 전체적으로는 많이 되게 하는 그러한 관광지로 가꿔야 한다. 서귀포만 하더라도 소암선생의 서예가 있고 한란의 자생지가 있으며, 고려말 ‘목호의 난’과 관련된 범섬의 역사가 있고, 아름다운 해양·해저 환경도 있다. 하기에 따라서는 다양한 범위의 다품종 관광생산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신이 혼미하여 이를 실천으로 옮기지 않고 있을 뿐이다. 기회는 그것을 통찰하고 준비하며 ‘스스로 돕는 자’의 노력을 외면하지 않는다.송재호/논설위원·제주대 교수 제248호(2001년 2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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