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세 삼창' 자존과 자주, 그리고 자강

2016-03-03     서귀포신문

지난 1일 제주시 조천읍 조천체육관에서 열린 제97주년 3.1절 기념식에 앞서 조천청년회의소가 주관한 만세대행진 행사에는 초등학생을 포함해 수많은 도민들이 함께 했는데 그 표정에 결기가 가득했다. 일제의 압제를 끊어내고 민족의 자주독립을 선언하는 선열들의 모습이 투영되는 듯했다. 1919년 3월 21일 조천리 미밋동산에 태극기를 꽂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 만세를 목이 터져라 외치며 행진해 나가던 광경이며, 이후 24일까지 조천장터에서 이어진 만세시위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1931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일제 식민지 수탈에 맞서 분연히 일어섰던 해녀항쟁의 역사도 지역사회 공동체와 연대의식에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구좌, 성산, 우도 해녀들을 중심으로 펼쳐진 해녀항일운동은 인간 존엄성 확보와 생존권 사수를 위한 몸부림으로 시작했으나 결국 238회 연인원 17,000명 이상 참여한 조직적인 항일운동으로 확산되었다. 1918년 무오 법정사 항일운동 또한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이다. 서귀포시 도순동 소재 법정사 스님들이 주축이 되어 지역민 700여명이 함께 참여한 법정사 항일운동은 일본인들을 쫓아내고 국권을 회복하겠다는 목적으로 거행한 도내 최초, 최대의 항일 거사였다.


 아우내 장터에서 태극기를 들고 "우리는 나라를 찾아야 합니다. 나라 없는 백성을 어찌 백성이라 하겠습니까. 우리도 독립만세를 불러 나라를 찾읍시다"라 열변을 토하던 유관순 열사. "나는 밥을 먹어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잠을 자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서 해 왔다. 이것은 내 목숨이 없어질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다"던 도산 안창호 선생.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던 안중근 의사의 말씀 역시 되새겨야 할 작금의 현실이다.


 대한독립, 해방 71년을 맞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일제의 잔재가 청산되었는가를 생각해보면, '아니다'라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분단된 조국은 여전히 패권주의적 열강들의 틈바구니,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암담한 현실을 느끼는 것이다. 일제에서 해방된 대한민국의 국시는 헌법 제1조에 명시되어 있는 그대로 민주주의이다. 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민주주의에 대치되는 개념은 독재, 절대왕정, 전제국가 등이라 할 것이다. 그 민주주의, 국민 주권이 아직도 온전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된 통치행위는 국민을 위한 통치여야 하고 정치인 역시 국민을 위한 정치에 나서야 하는 까닭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이 나라 통치도, 이 땅의 모든 정치 행위도 집단이기주의에 매몰되어 있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이처럼 집단이기주의가 난무하는 한 주권재민의 진실된 민주주의는 들어설 여지가 없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반발이 거센 한일정부간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이번 합의는 피해자 할머니가 한 분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집중적이고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인 결과라고 말했다. 진정으로 그러한 노력의 결과라면 위안부 할머니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을까 의문시 되는 부분이다.


 한일 위안부 합의 무효와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제주행동이 발족식과 함께 행동에 나선 까닭도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의 목소리가 배제된 합의는 무효이기 때문이다. 제주행동은 한일 위안부 합의 무효를 선언하고, 이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시작한다고 선언했다. 우리는 역사를 잊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니, 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이다. 통치자들이, 정치인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국민 스스로 나서서 임하겠다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가 말해주듯이 민족자존과 자주, 자강은 국민적인 연대로부터 시작되며 그 길은 바른 역사 정립 위에 주권재민을 공고히 하며,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는 데에 달려 있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