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청해진식 일방통행인가?
"감사합니다. 제주와 함께 새롭게 출발하겠습니다! "
준공식을 앞두고 지난 2월 24일 오픈한 대한민국 해군 제주민군복합형관광미항 홈페이지를 클릭하면 뜨는 팝업창이다. 소개합니다, 누려볼까요, 함께합니다, 알려드려요, 소통합시다 등 홈피 메뉴의 글귀도 아름답고 다정하다. 그러나 웃는 표정 따로 야수의 발톱을 숨긴, 속마음 따로인 해군의 모습을 보노라면 섬뜩하다.
지난 2007년, 건설을 위한 입지 강정마을을 선정할 때부터 일방통행이더니 오늘날, 대도로변에서 기지에 이르는 진입로 개설까지 일방통행식 모습을 보이고 있어 주민들의 불만 섞인 항의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공식 사업명은 제주민군복합형관광미항(이하 해군기지) 진입도로 일부 개설사업이다.
주민들은 강정동 2974-1부터 5652번지, 도순동 483부터 1372번지에 이르는 과원과 전(田), 단장과 석축 등 공부상 1,057,323㎡ 중 77,924㎡가 소유주에 대한 개별 통고도 없이 강제 편입, 수용될 위기에 놓여 있다고 항변한다. 여러 경로의 기존도로가 있음에도 이를 활용하지 않고 대로변에서 해군기지에 이르는 직선도로를 뚫겠다고 생땅에 선을 그으면서 문제가 빚어졌다.
들리는 말로는 기존도로를 확장해 사용하려 시도를 했으나 몇 가지 제약 요인으로 인해 여의치 않았다고 한다. 일방통행에 익숙한 해군측은 주민 소유의 과수원과 전은 물론 임야, 비닐하우스, 창고, 수도시설, 묘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직선도로 계획선을 그으면서 문제로 부상해 있다. 혹시 어지러운 4·13 총선 분위기를 틈타 조용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감쪽같이 처리하려 했던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들 정도라는 주민들의 전언이다.
그러나 그나마 공사에 돌입하기 전에 밝혀졌으니 여간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공사가 시작된 후에 알게 되었더라면 다시 해군과 주민들간 더욱 극심한 갈등과 다툼이 빚어졌으리라는 점은 불을 보듯 한 일이다. 앉아서 당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머리띠를 동여매고라도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보상의 차원이 아니라 공권력에 의한 기만과 수탈을 눈뜨고 당하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당위성 때문이기도 하다.
해군기지 진입도로 개설에 저촉되어 편입되는 토지의 소유주는 강정동, 도순동, 외지인 등 70여 명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 이와 같은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토지주는 채 10명도 안 된다는 점만 보더라도 얼마나 쉬쉬하면서 일을 진행해 왔는지 쉬이 짐작된다. 비단 사업시행자인 국방부(제주민군복합항건설사업단)만이 아니다. 인가권자인 서귀포시와 담당부서는 지난해 10월 14일자로 시청 홈페이지에 소리 소문 없이 도시계획시설사업 실시계획 인가 고시를 올려놓고서 해야 할 도리를 다했다고 주장한다. 제주도 관련부서는 어떤 소리를 할지 궁금하다. 짝짜꿍 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눈 가리고 아웅,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려는 행위 아닌가.
적어도 어느 번지 어느 땅, 어느 비닐하우스, 어느 창고, 어느어느 기름탱크와 묘소가 해군기지 진입도로 개설사업에 편입됩니다 정도의 개별 통지는 필요한 일이 아니었나 하는 여론이 무성하다. 사전 설명회라든지 주민동의 절차는 거치지 못하더라도 고시기관인 서귀포시 담당부서나 주민자치센터를 통한 해당 토지 소유자 대상의 고지 의무에 충실을 기했더라면 반발과 마찰을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아직도 자신의 소유 과수원과 토지, 임야, 비닐하우스 등이 수용되는 사실을 모르는 소유주들이 더 많아 보인다.
사업추진 과정에서 서귀포시가 애써 준수했다는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의 제정 취지를 살펴보니 국토의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한 계획수립 및 집행 등에 관해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공공복리를 증진하고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라고 되어 있다. 결국 해군의 일방통행을 도우면서 공공복리와 국민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길을 택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또한 법 제91조(실시계획의 인가) 내용을 보면 사업의 착수예정일 및 준공 예정일을 반드시 포함시키도록 하고 있으나 타이틀은 그리 붙여놓고 실시계획인가일(2015. 12. 31)을 넣어 착수예정일과 준공예정일은 온데 간데 없다.
대한민국의 생명선인 남방 해상교통로와 해양주권 수호를 위한 21세기 청해진으로서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겠다고 자처했던 해군기지가 아닌가. 그러나 무리한 세월호의 항행으로 귀한 생명들을 앗아간 청해진해운의 일방통행 악귀의 망령을 보는 것 같아 소름 돋는다. 해군기지 진입도로 일부 개설사업에 앞서 해당 토지 소유주들과의 소통과 원만한 협의와 동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