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바람의 아이-20부-

[엄마와 함께 떠나는 동화기행]장수명/동화작가

2016-04-28     장수명

지민이는 휘청거리며 뒤로 몇 발자국 뒷걸음질을 치는 순간이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으으~."

등에 업혀 정신을 놓고 있던 지아의 입에서 가는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언니, 지아가 움직였어!"

"정말."

"그래, 우리 지아 안 죽었어. "

지민인 정말 젖 먹던 힘까지 내어서 달렸다.

"지아야, 조금만 참아!"

얼마나 정신없이 달려왔는지 병원에 도착한 지민인 숨이 턱까지 받혀 한 마디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동생은 지금 열사병에 심한 탈수상태니까 며칠 입원을 해야겠네요."

의사선생님이 말했다.

"그러면 우리 지아가 살 수 있나요?"

의사선생님은 빙그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좀 더 두고 봐야 되고, 탈수는 심하지만, 다른 장기나, 뇌에 이상이 없으니까 며칠 입원 하면 괜찮아질 것 같아."

"후~."

지민이는 그제야 깊은 숨을 뱉는다. 얼마나 가슴을 많이 졸였는지 모른다. 지민이는 지아를 병원에 입원시켰다. 그리고 그날 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아가 많이 아프다는 것과 지금 입원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아버지가 빨리 집으로 오셔야겠다는 이야길 했다.

"아버지, 저 혼자 감당하기는 너무 힘들어요. 아버지……."

수화기 저편에서 아버지는 알았다고 했다. 며칠 안에 가겠다고도 한다.

아버지와 통화를 끝낸 지민이는 오랜만에 마음이 편안했다. 그리고 지아에게 온 민호의 사진과 편지를 꺼내 들었다. 천천히 편지를 읽고 사진을 오래도록 들여다본다.

사진 속 엄마와 아들, 처음 보는 두 사람이 낯설지 않았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낯익은 얼굴들 같았다.

'닮았다'

지민이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쩌면 부자지간(아버지와 아들)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사진 속에 민호라는 사내아이는 아버지와 참 많이 닮아 있었다. 쌍꺼풀이 진 시원한 눈매와 짙은 눈썹, 그리고 선이 분명하고 두터운 입술, 둥그스레하고 소담스런 콧망울까지.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지아가 아버지를 많이 닮은 아이라고는 했지만, 이처럼 닮은꼴이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게다가 곁에 선 민호엄마도 낯설지 않았다. 잔잔하고 예쁜 얼굴이 어디서 많이 본 듯했다.

'낯설지 않아.'

지민이는 등줄기가 오싹해진다.

숨이 헉 막힌다. 누워 있는 지아와 닮았다. 눈을 꼭 감고 누워있는 지아를 보면서 사진 속 민호 엄마를 본다.

'닮았다.'

식구들을 별로 닮지 않은 지아이다. 그래서 지민이는 엄마의 부정한 행위를 아빠가 증오하는 만큼 저도 엄마의 부정이 지아를 볼 때마다 상상 되어져 미치도록 괴로웠던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지아의 모습에서는 엄마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았다. 엄마의 모습을 찾으려고 애썼지만, 지아의 얼굴엔 엄마도 아빠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아버지처럼 지민이도 지아가 속으론 몹시 불쾌하고 싫었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도대체 지민이가 상상하기에는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그런 지아가……. 혼란스러웠다.

이제 조금씩 안정이 되어지고 있는데 이건 또 무슨 일이란 말인가?

'아버지 빨리 오세요.'

지아는 조금씩 건강해졌다. 이전보다 훨씬 더 어른스러워졌다. 아이들은 아프고 나면 큰다고 하던 어른들의 말씀처럼 지아는 몸도 마음도 아주 훌쩍 자랐다.

말 수도 전번보다 훨씬 없어졌다. 말을 안 하는 사람처럼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할뿐이다. 만약에 의사선생님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면 아마 실어증에 걸린 거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지아의 그런 모습이 지민이는 낯설다. 편치 않았다.

드디어 아버지가 오셨다. 아버지 얼굴은 많이 핼쑥하고 야위었다.

"지아는 어떠니? 아버지는 많이 부드러워지셨다."

"이제 많이 좋아졌어요."

네 자매는 모처럼 아버지를 만나서 너무 행복했다. 그리고 지아는 이제 아버지를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이 무겁다. 아버지는 아주 옛날처럼 지아를 대하고 계셨다.

집으로 돌아 온 지민이는 아버지에게 지아에게 온 사진과 편지를 건넨다.

"아버지, 이거 보세요."

지민이가 불쑥 내민 사진을 보던 아버지의 표정은 굳었다.

"이, 사진 속 아이는 누구냐?"

사진 속 아이를 묻는 아버지 얼굴에 작은 경련이 일어난다. 입술이 떨려 말도 더듬거렸다.
 
"지민이 아빠, 이번엔 틀림없이 아들이야! 내가 임산부 몸을 잘 보잖아. 저 배 모양은 틀림   없는 아들이야! 뒷모습도 영락없이 아들이고!"

갑자기 9년 전에 하던 순이 할머니의 말이 떠오른다.

"이 사진 어디에서 구했어?"

지민이는 편지를 건넨다. 아버지는 빠르게 편지를 훑고 지나갔다.

"지아야, 지아야!"

아버지가 다급하게 지아를 부른다.

아버지는 민호를 어떻게 만났는지, 민호가 몇 살인지 꼬치꼬치 물었다. 지아에게.

"외갓집."

조목조목 대답하는 지아의 말을 들은 아버지 표정은 대리석처럼 단단히 굳어져 버렸다.

아이가 바뀌었어! 틀림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