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최순실 게이트, 거짓과 진실
지난 24일,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확인된 최순실씨가 44개에 달하는 대통령 연설문을 미리 전달받고 그의 지시에 의해 빨간 펜으로 고쳐져 다시 대통령에 전해졌다는, 있는 그대로의 팩트를 전한 JTBC 단독보도는 정치적 혼란을 몰고 왔다. 최씨 PC에 각종 문서 200여 개 등 VIP용 파일이 들어 있었다는 게 사실이고 보면, 이어지는 뉴스들마다 핵폭탄급 충격파라 할만하다. 대통령 연설문만이 아니다. 실제로 최씨가 대통령의 정치활동을 기획하고 움직인 게 아닌가, 의혹을 갖게 하는 증거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국가기밀, 안보, 인사까지 농단해온 게 사실이라면, 과연 대통령은 누구였다는 말인가. 국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어떻게 이런 일이!" 한탄한다. 봉건 왕정, 구중궁궐 조선왕조 시대라 하더라도 이만큼 심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말한다. 언론계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계, 법조계, 학계, 시민사회단체, 심지어 경제계에서까지 대통령을 향해 이제 진실을 말하시라!, 요구한다. 세간의 평가는 헌정 유린 사태라는 것이다. 이를 수습할 방도는? SNS 검색어 1위 '하야'라는 단어, 그리고 '탄핵'이라는 말이 그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빨간 펜 최순실'로 상징되는 국정농단 혼란. 국민들을 아연실색케 하고도 남음이 있다. 대한민국 국민임을 부끄럽게 만들고 참담하게 했다. 설마 했던 설·설·설이 급기야 그 실체를 드러냈다. 오히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는 진정성이 없다는 평가가 높다. 그동안 대통령이 행한 모든 통치행위에 진실됨이 없었다는 심증에 물증까지 굳혀지는 모양새이다. 심지어 "혹시 2분만에 후딱, 어물쩡 해치워버린 대국민사과문에도 '빨간 펜' 자국이 있는 것 아니냐"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참으로 슬프고도 슬픈, 그래서 울프고 웃픈 나라꼴이다.
새누리당 대표의 입에서는 또 한편의 개그가 나와 폭소를 터뜨리게 했다. "대정부질문 하나만 하더라도 아주 다양하게 언론인들이나 문학인, 상인분들, 친구들 이야기도 듣고 한다." 라고. 이에 앞서 국회 운영위에서 최씨 관련 의혹을 제기했을 때 청와대 비서실장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믿을 사람이 있겠느냐.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가 어떻게 밖으로 회자되는지 개탄스럽다"라고 했다던가? 대통령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있는 이들의 웃픈 현실이다.
대통령은 이제 덮고 있는 거짓을 깨뜨려 진실을 말해야 한다. 아니 국민 앞에 이실직고해야 한다. 자백해야 한다. 국회 시정연설을 통한 '임기내 개헌 완수' 언급이 '위기탈출용 개헌카드'였음이 여실히 드러났다. 현재 대통령이 맞닥뜨린 상황에서는 국민의 준엄한 심판과 명령을 따르는 길밖에 달리 도리가 없을 듯하다. 무엇보다 지금 청와대가, 정부가 주도해서 개헌에 앞장서겠다고 나서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잠재적 대권 주자들은 물론 정치 지도자들도 당리당략, 혹은 자신과 관련한 이해득실에 따라 개헌 찬반을 입에 올릴 뿐, 국민을 위한 마음은 아예 없는 듯이 비친다. 개헌을 한다면 이 역시 어떤 형태로든 국민들이 나서야 마땅하다.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진실규명과 심판 이후의 일이 될 것이다.
사실, 민중은 개돼지라 내뱉던 이 나라 교육부 고급관료의 몹쓸 말짓거리가 나올 때부터 알아봤다. 1% 최상류층, 최고 권부의 속마음을 드러낸 것이라는 설이 파다했으니. 이 정권의 뿌리가 저급하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자자손손 누리고 있는 친일파들의 득세와 호의호식이 그 밑바탕에 넓고 깊게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을 먹여 살리는 일, 민생이 중요하다. 침체된 시장경제, 나라경제를 살리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위기에 처할 대마다 누누이 강조하던 대통령의 말씀도 그 뿌리에 맞닿아 있다.
"국민들은 먹을 것, 입을 것만 넉넉하게 던져주면 만사태평일 것이다, 저항의 발톱도 무뎌질 것"이라는 인식이다. 그러면서도 노동자의 고통은 애써 못 본 척하는 정권이다. 되려 대재벌, 사용자 편에 서서 노동자들의 피눈물을 짜내는 일에 급급한 모습을 보인 정부였다. 이 역시 최씨의 빨간 펜에 의한 것이었나,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시사인> 주진우 기자는 사이비교주가 통치하는 나라라고 호된 비판을 가했었다. 승려이자 목사 출신 최태민 사이비교주의 종교적 후계자가 그의 딸인 최씨라 증언하면서. 대통령 연설문의 창조경제, 문화융성, 대북제재 내용 중에 어느 분야에 방점이 찍히느냐에 따라 주가도 출렁였던 게 우리 경제 현실이다. 일부에서는 의도적인 연설문 고치기는 없었을까 의혹을 제기하기도 하는 이유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역시 '도민은 개돼지'라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개발광풍, 난개발과 관련한 중국자본에 대한 특혜, 대단위 리조트 개발의 부당성을 가려 따지는 도의원을 향해 '협박'과 '갑질' 행위를 보이는 지사와 고위 공직자들의 표정과 말씀들이 대통령과 최순실 그리고 그 주변 인사들을 닮았다는 느낌에 소름 돋기 때문이다. 제주도정은 '똥뀐 놈이 썽낸다'는 제주 속담의 의미를 곰곰이 새길 일이다. 제주 땅을 훼손하고 도민의 삶의 질을 파탄 낸 전임 지사들의 전철을 밟지 말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