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죄의 심판에 성역은 없다
‘대통령은 이제 모든 것을 버리고 내려와야 한다’는 100만 촛불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곡해까지 하는 청와대를 비롯한 정치권 일부 움직임에 분노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국민들은 이미 이 나라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청와대는 대변인을 통해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국정을 정상화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는 입장을 냈다. 얼마나 오만한 대응인가.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주길’ 바라는 형국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소용없어. 5천만 국민이 달려들어서 내려오라고, 네가 무슨 대통령이냐고 해도 거기 앉아 있을 게다. 그런 고집쟁이야. 고집 부리면 누구도 손댈 수가 없어.” 9순의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 중에 내뱉었다는 발언 내용을 듣고서 ‘섬찌그랑했다’는 사람들이 많다. 농담으로 던진 말이라 굳이 변명한다 하더라도 작금의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증언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과 정부, 여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평화적인 100만 촛불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고 삿되게 이용하려는 야당 세력의 경거망동에도 국민들은 질타를 쏟아낸다. 이러한 국난을 가져온 것은 전적으로 청와대와 정부, 여당에 그 책임이 있으나 그들만의 잘못도 아니다. 이 지경까지 오도록 제 역할을 못하고 오히려 때로 함께 동조하고 함께 만들며 누리기도 한 야당은 물론 주변부 정치인들, 눈을 감았던 언론들,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법조계, 검은 거래를 일삼아온 재벌, 권력에 빌붙어온 지식인그룹 등 모든 기득권 세력에도 꼭 같은 책임이 주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그 비호세력, 남아있는 비선 실세들은 변호인을 앞세워 검찰 수사를 회피하고 국민에 맞서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성실하게 검찰수사에 임하겠다는 약속의 파기이며 국민에 대한 배신 때리기에 다름 아니다. 국민의 평화적인 촛불 행진을 욕되게 만드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 시간에도 이러한 국면을 당리당략적으로 해석하고 정권쟁취의 호기로 삼아 국민들의 뜻을 이용하려는 여야 정치꾼들이 득실거린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국민들은 없다. 야당 정치인들은 물론 대통령에 등을 돌린 여당 정치인들 역시 망발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다.
최순실 게이트. 국민들은 너나없이 참으로 참담하다고들 말한다. 도무지 끝 간 데를 알 수가 없다. 드러나고 있는 마각의 일부, 그 실체는 국민들을 충격 속으로 빠뜨리고 있다. 과연 누가 이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것인지 국민들은 어이없기도 하고 이러한 현실에 절망하고 분노한다. 대통령을 등에 업은 비선실세들에 의한 국정 농단 자체가 국난인 것이다. 이는 곧 헌정 파괴, 국헌 문란 행위임이 자명해진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탄핵’은 그 어느 쪽에도 불행해지는, 또다른 음모일 수 있다는 법조계와 학계 등 전문가그룹의 의견이 나온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말이 있듯이 법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쥐도 코너에 몰리면 “찍” 소리를 낸다. 제 한 목숨을 지키기 위해 최후의 발악을 하는 법이다. 스스로 물러날 수 있는 여지, 대통령에게도 퇴로를 열어줄 필요가 있다. 현재의 정치상황을 만들어온 야당 정치인들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국민의 뜻을 외면하는 대통령으로 하여금 다시 한 번 깊이 성찰하며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그 자리에서 내려오게 하는 일은 오직 국민들만이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사임한다는 대통령의 국민에 대한 약속 이후에 여야합의를 통한 국회의 국무총리 임명동의 절차와 대통령에 의한 임명, 이어지는 사임 절차 정도면 대통령에게도 큰 불만이 없을 퇴진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진실을 영원히 숨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거짓은 언젠가는 드러난다는 진리를 역사의 한복판에서 우리 국민들이 증명해내고 있다. 이 시점에서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대통령의 퇴진, 하야만이 아니다. 유구한 세월, 이 나라를 통치하며 백성을 핍박하고 고혈을 빨아온 지배세력, 대한민국을 농단해온 기득권 세력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 필요하다. 가까이는 해방 이후 친일파들의 득세로 인한 지속된 역사왜곡, 독재권력에 의한 국민탄압 등의 역사를 바로 펴고 억울한 국민들의 한을 풀어내는 일이다. 죄의 심판에 성역은 없다. 진정으로 국민이 주인 되는, 판을 완전히 새로 짜는 일이다. ‘헬 조선’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나라의 근본을 바꾸고 새로운 희망의 역사를 써 내려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