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조국 미국과 날 길러준 중국, 너무 닮았다

[NIE 영어로 고전 맛보기(49)] 펄 벅(Pearl Buck)의 1938년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

2023-03-14     장태욱

The minds of my own country and of China, my foster country, are alike in many ways, but above all, alike in our common love of freedom. And today more than ever, this is true, now when China’s whole being is engaged in the greatest of all struggles, the struggle for freedom. I have never admired China more than I do now, when I see her uniting as she has never before, against the enemy who threatens her freedom.

나의 조국(미국)의 정신과 나를 길러준 나라 중국의 정신은 여러 방면에서 닮았는데, 무엇보다도 자유에 대한 우리의 공통적인 사랑은 정말 닮았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과거보다 더 닮았는데, 오늘날은 중국 전체가 가장 위대한 투쟁,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참여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처럼 중국을 존중해본 적이 없다. 나는 지금처럼 중국인을 과거에 존중해보지 않았다. 나는 지금 그들이 자신들의 자유를 위협하는 적들에 대항하기 위해 과거와는 달리 빠르게 결속하는 것을 보기 때문이다.

 

펄 벅(Pearl Buck)은 1892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 주에서 태어났고, 생후 3개월 만에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중국으로 이사했다. 15세까지 중국에서 어머니의 보살핌 속에서 성장했다.

어머니는 어린 펄에게 미국에서 공부할 것을 권했고, 펄은 1910년 미국 맨돌프 매콘 여자대학교에 입학해 1915년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졸업 후에는 중국으로 돌아와 미국인 농학자인 존 로씽 벅과 결혼했다.

펄의 결혼생활을 순탄하지 못했다. 남편은 연구에는 열정적이었는데 가족에게는 소홀했다. 게다가 둘 사이에 태어난 딸은 지체장애를 앓았고, 펄은 딸을 치료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그런 와중에도 남편은 아내와 딸에게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펄은 현실의 절망을 잊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30년에 『동풍서풍』을 발표하면서 최초로 문학적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 이듬해 중국 왕룽 일가의 역사를 그린 3부작 『대지』를 발표해 세계적인 큰 화제를 일으켰다. 『대지』는 근세 중국을 서사적으로 묘사해 서양에 소개한 최초의 작품으로서 퓰리처상을 받았다. 그리고 1938년 『대지』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펄 벅은 어린 시절부터 중국에서 생활했다. 중국에 대해 나를 길러준 나라(my foster country)라고 부른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미국과 중국의 교량 역할을 담당하고자 애썼다.

가난한 어린이를 돕는 일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1949년 전쟁과 가난 속에서 부모를 잃은 아이를 미국으로 입양하도록 하는 웰컴하우스를 창설했고, 자신도 7명의 아이를 입양했다. 1964년에는 미국계 사생아를 돕기 위해 펄 벅 재산을 세웠다.

소개한 대목은 펄 벅이 1938년 12월에 노벨상을 받으면서 스톡홀름 시청에서 한 연설이다. 어린 시절 자신이 자랐던 중국과, 성인이 돼서 살았던 미국이 서로 크게 다르지 않다고 강조하는 내용이다. 당시 중국은 일본과 전쟁을 치르는 와중이었다. 중국 인민은 한편으로는 일본, 영국 등 제국주의와 싸웠고 다른 한 편으로는 인민을 억압하는 봉건 지배질서와 싸웠다. 고단한 투쟁에 나선 중국 인민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이상으로 삼는 미국인과 닮게 보였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