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로 인한 해상 참사, 53년 전 남영호 사고

1970년 12월15일 남영호 침몰 적재량 초과한 과적이 원인 사망 326명, 생존자 12명 뿐 위령탑 장기간 방치되기도

2023-12-21     오성희
서귀포-부산 정기여객선 남영호(자료사진)

해방 이래 끔찍한 대참사로 손꼽히는 남영호 사고가 지난 1553주기를 맞았다.

19701214일 오후 5시경, 362톤급 선박 남영호는 승객 및 선원 210명과 감귤을 가득 실고 서귀포항을 떠났다. 저녁 725, 중간에 경유한 성산포항에서는 사람과 화물이 떼로 모여 너도 나도 승선을 요구했다. 성산항에서 승객 128명이 승선해 정원 302명보다 36명을 더 태웠다. 여기에 화물도 정량인 150t을 초과한 500t을 실은 남영호는 그날 밤 810분경 부산항으로 출발했다. 남영호가 성산항을 떠난 지 5시간 25분이 지난 15일 오전 115, 승객이 부대끼며 불편한 잠에 겨우 빠져들 무렵, 남해 여수 인근 소리도 앞바다에서 초속 3.7m 서남풍을 탄 파도가 남영호를 덮쳤다.

배는 무게중심을 잃었고, 배가 기울어지자 바닷물이 객실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선내는 아비규환으로 변했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살기 위해 버둥댔지만 배는 점점 기울어지더니 한 시간 만에 뒤집혔다.

배가 기우는 동안 남영호는 무선으로 수차례 구조요청을 보냈지만 한국 해양경찰은 12시간 가까이 현장에 구조대를 파견하지 않았다. 당일 오전 825분경 인근을 지나던 일본 어선이 최초로 현장을 확인하고 구조에 나섰고, 일본 해상안전부 제7관구 소속 구사가키순시선이 출동해 소수 생존자를 구출했다. 한국 해경이 구조에 나선 것은 사고가 발생한지 12시간이 지난 후였다.

일본 어선에 의해 구조된 8명과 한국 어선에 구조된 1, 한국 해경이 구조한 3명을 포함해 생존자는 12명에 불과했다. 전체 탑승객 중 사망자는 326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1971년 부산지방해난심판원 재결문에는 323명 사망, 15명 구조, 남제주군 조난수습 대책일지에는 326명 사망, 12명 구조로 기록되는 등 53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조난자 규모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남영호 참사 생존자인 강기정씨는 지난 2020년 서귀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고함소리가 나서 잠에서 깼는데 객실로 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겨우 배에서 탈출한 뒤 감귤궤짝에 의지해 바다 위를 떠다녔다날이 밝은 후 지나가던 일본 어선에 구조를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남영호는 중량 362, 길이 43m, 7.2m, 시속 15노트, 정원 302, 화물 최대적재량 149톤인 여객선이었다. 사고 이후 조사과정에서 남영호는 정원과 적량을 훨씬 초과하는 승객과 화물을 실은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선창을 채워도 화물이 남아 많은 양을 갑판 위에 쌓았기 때문에 배가 흔들릴 때, 화물들이 왼쪽으로 기울어지면서 참사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부산해난심판원은 화물 선적이 잘못돼 선체가 불안정한데도 이를 고려하지 않고 운항한 선장의 과실과 과적 과승을 방조한 항해사와 사무장의 직무상 과실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남영호조난수습대책본부가 책정한 사망자 보상금은 1인당 69만원에 불과했다. 19716,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선장에게는 금고 3, 선주는 금고 6개월과 벌금 3만원, 통신장은 벌금 1만원이 선고됐다. 부산지방해운국 부두관리사무소 직원, 해경 통신과 직원 등에게는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남영호가 출항했던 서귀포항에는 배 침몰로 인한 326명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1971년에 위령탑이 세워졌다. 당시 제주지역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승택 도지사는 위령탑 제막식에서 슬픈 탑으로 남기지 말고 슬픔을 극복하고 지성으로 바다를 다스려 힘차게 전진하는 탑으로 남겨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탑은 이후 항만 확장으로 인해 19829월 서귀포시 상효동 법성사 인근으로 옮겨졌다.

이전된 장소에는 위령탑과 함께 무연분묘 14기를 포함한 무덤 17, 비석 3기가 안치됐지만 외진 곳에 위치한데다가 진입로와 안내표지판도 없어 유족들이 접근하기 어려웠다. 2005년까지는 유족들이 사고 당시 선주로부터 받은 피해보상금 300만원으로 벌초를 해왔으나, 유족들이 나이가 들고 일부는 세상을 뜨면서 이마저도 어려워졌다.

이러한 소식이 알려지면서 20131126일 남영호 조난자추모위원회가 발족됐다. 서귀포시와 추모위원회는 정방폭포 인근 해안가 쪽에 위령탑을 건립하기로 의견을 모아 2014년 지금의 정방폭포 주차장 인근에 위령탑이 새롭게 조성됐다.

서귀포시는 새롭게 이전한 장소에서 매년 1215일에 남영호 조난자 위령탑 참배행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공식적인 유족회가 발족되지 못하고 있어 유족들의 아쉬움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