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세 스승과 80대 제자들의 아름다운 서귀포 동행
부평초 제자들, 은사 모시고 서귀포 찾아 "선생님과 함께하는 3박4일,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
“80세가 넘은 제자들이 94세 노인을 휠체어 태우고 여행을 한다는 걸 누가 믿겠어요? 제가 바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선생님일 겁니다”
지난 6일, 강정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응한 김명자 선생님(94)의 감동 어린 말에서 사제지간의 깊은 정이 묻어났다.
1956년 인천의 부평동초등학교(당시 부평동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김 선생님은 약 7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자들과 각별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이번 여행에 동행한 김명자 선생님의 제자는 김군자, 나영희, 문영자, 윤춘강, 한경자씨 등 5명이다.
제자라고 하지만 나이는 모두 80세가 넘었다. 80세의 어르신들이 90세가 넘은 초등학교 시절의 스승님을 모시고 서귀포를 여행 중인 셈이다.
이들은 7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서귀포의 겨울 풍경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선생님께서 늘 저희를 먼저 생각하신다. 모일 때마다 맛난 음식을 먹고는 하는데 항상 슬쩍 먼저 계산을 하셔서 난감하다” 문영자 씨의 말에서 80세가 넘어도 이들이 여전히 어린 제자로 보이는 스승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일행은 서귀포의 명소들을 한곳한곳 정성스레 둘러보았다.
동백이 한창인 위미 동백수목원에서는 붉은 꽃망울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고, 아쿠아플라넷에서는 제자들이 번갈아 휠체어를 밀며 김 선생님의 발이 되어주었다.
서귀포의 겨울 먹거리도 이들의 여행을 더욱 풍성하게 했다.
김군자씨는 “선생님께서 4년 전에 서귀포에 오셔서 갈치국을 드셔보셨는데 너무 맛있다고 하셔서 이번에 그 식당에 갔는데 너무 맛있었다”라고 말했다.
일행은 갈치국뿐 아니라 제주의 여러 토속음식을 맛보았고 처음 맛본 보말죽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94세의 고령에도 김 선생님은 여전히 계단을 이용할 만큼 건강한 편이지만 여행 중 힘이 부칠 때에는 휠체어를 이용하기도 한다.
김 선생님은 “제자들이 휠체어를 끌어줘 편하고 좋았지만 마음속으로는 눈물이 흘렀다”며 제자의 애틋한 마음에 눈시울을 적셨다.
나영희 씨는 학교 시절에 대해 “한국전쟁 이후 부평시장이 완전히 불타고 학교건물에는 총알 자국이 수두룩했던 시절이었다”며 “그렇게 힘든 시절이었지만 선생님은 우리에게 야단 한번 치신 적이 없다”고 말했다.
여행 일정이 끝나 숙소로 돌아오면 저녁에 함께 숙소에서 윷놀이를 하며 어린 시절처럼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우애를 다진다고 전했다.
숙소에서 바라본 서귀포의 절경은 이들의 여행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한경자 씨는 “아침마다 본 일출과 범섬, 설산이 된 한라산이 너무 아름다웠다”며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라고 전했다.
김군자 씨는 “서울에서는 가습기를 틀어야 겨우 잠을 자는데 여기 서귀포에선 깨끗한 공기 덕분인지 너무 꿀잠을 잤다”며 웃었다.
이들의 만남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나영희씨가 퇴임 후 부천에서 유치원을 운영하던 김 선생님과 연락이 닿았고 그 계기로 반세기가 지나 사제의 연이 다시 이어졌다.
김명자 선생님은 "그 시절에는 나라에서 봉급을 주기 힘드니 각자 반에서 '사친회비'를 거둬 교사 봉급을 충당하고는 했다. 그런데 여기 있는 제자들이 사친회비를 잘 거둬 내가 봉급을 받을 수 있게 서로 격려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뭉클했다"고 이야기했다.
윤춘강 씨는 “제주 여행을 몇 번 왔었지만, 사랑하는 선생님과 친구들과 함께여서 더욱 특별했다”며 이번 여행의 의미를 되새겼다.
김군자 씨는 “일년에 두 번 정도 여행을 다녔는데, 이제는 선생님이 힘에 부치시는 것 같아 먼 곳보다 가까운 곳으로 다녀야할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서귀포의 동백꽃을 배경으로 찍은 기념사진 속에는 60년이 넘는 세월이 무색할 만큼 따뜻한 사제의 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