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신문’ 만들겠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쯤 일본 도호쿠(東北) 지역 인근 해저에서 규모 9.0의 강진(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다. 당시 지진은 초대형 쓰나미를 불러오면서 도호쿠 연안 지역에 대규모 인적, 물적 피해가 컸다. 지진 당시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났다. 동일본 대지진 여파는 후쿠시마 오염수 태평양 방류 등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쓰나미가 일본을 강타하면서 인구 약 15만명의 이시노마키시는 도로와 건물이 파괴되고 정전으로 도시는 암흑으로 변했다. 일주일 이상 이어진 사실상 무정부 대혼란 시기에 이시노마키시를 기반으로 하는 석간지 ‘이시노마키히비’ 신문이 언론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신문에 세계 언론계가 주목한 이유는 동일본 대지진 당시 “휴간은 하고 싶지 않다. 손으로라도 써보자. 독자가 신문을 기다리고 있다”라며 이른바 ‘벽보 신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시노미키시를 기반으로 하는 이시노마키히비 신문사는 초대형 지진해일로 신문사의 윤전기가 멈춰서 신문을 정상적으로 발행할 수 없게 되자 다음날인 3월 12일부터 17일까지 6일 동안 ‘호외’벽보신문을 제작했다. 동일본 일대는 전기와 수도가 끊기고 대부분의 시설물이 파손되는 엄청난 피해를 당하면서 정보망은 모두 차단된 상황이었다. 이시노마키 지역에 있었던 언론사 기자는 영상과 기사를 보내지 못했다. 시민은 이시노마키에 있었지만, 이시노마키시가 어떤 상태인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이시노마키히비 신문사는 재해를 입은 시민이 알고 싶어하는 정보를 우선으로 해서 허위 정보와 유언비어 등으로 의심이 깊어진 시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했다. 벽보신문은 전기가 복구된 3월17일까지 6일 동안 이어졌다.
서귀포신문은 1996년 2월 12일 창간호를 시작으로 오늘(2025년 2월 12일) 1471호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 서귀포 시민 544명이 자발적으로 주주에 참여해 창간한 서귀포신문은 지금까지도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신문’을 제작하고 있다고 자평한다. 서귀포신문은 “우리도 제대로 된 언론, 제대로 된 서귀포시만의 신문을 하나 만들자”는 산남 지역 주민의 열망의 결과물이다. 서귀포신문은 지난 29년 동안 다양한 기획과 심층취재를 통해 부당한 권력과 불의에 맞서고, 항상 시민과 독자의 입장에서 달려왔다. 창간 29주년인 올해도 시민의 목소리를 더 담기 위해 서귀포신문은 현장으로 갈 것이다.
서귀포신문은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당시 언론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던 이시노마키히비 신문처럼 서귀포 시민만을 위한 신문이 될 수 있도록 더 노력할 것이다. 서귀포신문은 창간 정신과 신문 발행 방향을 되새기며 창간 당시 초심으로 돌아가 오직 서귀포 시민과 독자만 바라보면서 진실을 알리는 언론의 가치를 높일 것을 다짐한다. 서귀포 시민, 제주도민, 재외 제주도민을 비롯한 서귀포신문 독자의 아낌없는 사랑과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서귀포신문은 ‘좋은 신문’을 만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