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에서 되살아난 제주 신화, 미여지뱅뒤

PC방에서 만난 제주 신화 몰입형 공연의 새로운 경험 3년간의 제작 과정과 도전

2025-02-19     설윤숙

사람이 죽으면 바로 저승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49일 동안 멀고 험한 저승으로 가는 길을 오르게 된다. 그때 마지막으로 도착하는 공간이 아무것도 없는 광활한 벌판 같은 곳인데, 바람이 세게 불고 가시나무가 있는 곳에 도착한다. 그 가시나무에 이승에서의 미련과 나쁜 감정들을 모두 버리고 홀가분하게 저승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공간, '미여지뱅뒤'이다.

전통예술을 몰랐는데 이렇게 메타버스 공연에 게임이 가미된 형태로 접해보니 굉장히 신선했다. 체험하면서 엄마한테 소개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타버스 미여지뱅뒤PC방에서 접한 Z세대의 반응이다.

사단법인 마로(대표 양호성)는 온라인 이머시브 공연으로 보여주는 메타버스 미여지뱅뒤를 전국 36개 레벨업 PC방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 120일까지 오픈했다.

제주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몰입형 온라인 공연 미여지뱅뒤PC방을 통해 선보이게 된 것은 게임적 요소가 있는 공연이기에 그래픽카드 GeForce RTX 3060 이상일 때 감상하기 최적의 환경이기도 하고, 실제 게임을 실행해야 이해가 높아 PC방에서 쇼케이스를 진행하게 됐다. 또한 대부분 10, 20대가 이용하는 PC방에서 체험 기회를 제공해 전통예술이 젊은 세대에게 다가가는 기회도 마련하고자 했다.

메타버스 미여지뱅뒤

미여지뱅뒤는 망자가 이승과 저승 사이에 마지막 한을 푸는 공간이다. 자연에 깃들어 사는 제주의 18000 신들이 인간의 탐욕과 오염에 의해 파괴되어 가는 제주를 떠나간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떠나간 제주의 신들을 다시 신들의 세상에 불러오는 이야기라는 세계관으로 공연을 기획했다.

전통예술과 디지털 기술이 결합한 새로운 형식의 공연으로 제주 신화 속 공간인 서천꽃밭, 하늘올레, 푸다시를 가상현실로 구현하고, 관객이 직접 이 세계에 접속해 관람한다.

'메타버스 미여지뱅뒤'

 

음악, 소리, 배경, 캐릭터 등 전통예술을 녹여낸 게임형 공연에 관객이 아바타를 직접 움직이며 미션을 완수하고 스테이지를 넘나든다. 아바타는 제시된 길을 그대로 따라갈 수도 있지만 플레이어의 의지에 따라 맵을 탐험하고 경치를 구경할 수도 있다. 이렇듯 미여지뱅뒤는 육체의 한계를 초월한 디지털 휴먼을 내세워서 관객으로 하여금 능동적인 경험을 하도록 하고 관객은 내가 정말 그 공간에 존재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관객의 선택에 따라 공연 내용이 달라지는 상호작용적 연출로 온라인 환경의 장점을 극대화했으며, 전통음악과 디지털 그래픽이 어우러져 깊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단순히 영상을 보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호흡을 같이하며 스토리를 따라가고 체험하며 시각과 청각이 자극되는 공연으로 스토리, 노래, 동작, 장면에 담긴 신들의 이야기가 아름답고 몽환적으로 펼쳐진다.

미여지뱅뒤 제작 과정

미여지뱅뒤 제작 이야기

미여지뱅뒤는 사단법인 마로와 전시공연미디어아트 전문 기업인 인스피어의 합작품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ARKO)의 공연예술 창작주체 지원사업을 통해 3년간의 연구와 실험 끝에 탄생한 이번 공연은 공간과 장르의 경계를 허물며 전통예술의 확장 가능성을 제시했다. 또한, 디지털 공연 자산을 기반으로 티켓 수익 외 새로운 수익 모델을 모색한 점에서 눈길을 끈다.

양호성 마로 대표는 세계적인 가수의 언리얼엔진 디지털 가상 세계 공연이 신선한 자극이 됐다. 우리 전통예술도 저렇게 구현할 수 있다면 제약을 넘어 더 많은 이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미여지뱅뒤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란 의미에서 가상 세계와 무척 닮았다고 느꼈다. 메타버스의 세상이 미여지뱅뒤의 세계를 표현하기에 알맞다고 생각했다. 가상공간에서 펼쳐진 미여지뱅뒤 공연이 무척 재밌겠다고 생각했고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됐다라고 전했다.

상상력이 창조한 거대한 공간은 공연예술이 가지는 공간적 시간적 한계를 벗어날 수 있고, 또한 놀이처럼 접근할 수 있는 예술로 인식시킬 수 있다는 사실 또한 흥미롭다.

송주연 마로 사무국장은 제주의 큰굿과 제주의 설화를 화려하고 거대한 스케일로 볼 수 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게임의 체험성과 공연의 현존성을 동시에 구현해 몰입감을 높인 새로운 형태의 공연을 선보일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3년 간의 제작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송주연 사무국장은 어떻게 하면 공연자들이 메타버스 안에서 공연을 제작하고 연습하고 또 공연을 만들어 나갈지 많이 고민했다고 전했다. “기존에 했던 공연은 주고받는 눈빛으로 소통하는 공연이었는데, 메타버스 공연을 준비하면서 처음 1년은 이런 소통의 방법을 찾지 못해 공연자들이 힘들었다. 특히, 전통예술의 묘미가 예를 들면 손끝, 고갯짓의 각도, 옷자락의 미세한 흩날림 등 자연스럽게 사소한 것에서 오는 이런 디테일인데 기술로 이런 것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다. 왜 게임 캐릭터의 옷이 몸에 딱 달라붙는 것인지 이해가 됐다(웃음)”며 새로운 시도에서 수없이 겪었던 시행착오에 대한 에피소드를 전했다.

양호성 마로 대표.

앞으로 나아갈 미여지뱅뒤, 그리고 마로

현재 미여지뱅뒤는 글로벌 무대에 제주 신화와 전통예술을 선보이기 위해 영문판 제작을 준비하고 있으며, 나아가 XR (확장현실) 공연으로의 확장도 준비 중이다.

XR 공연은 라이브 연주와 디지털 공연이 결합한 형태로 실시간 퍼포먼스와 가상현실을 동시에 경험하도록 해 예술성과 기술의 결합을 한층 더 진화시킬 예정이다.

양 대표는 “3년간의 개발 과정은 전통예술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기술을 통해 새로운 무대와 관객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굉장히 실험적인 도전인 만큼,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한다. 중견 예술 단체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지역에 마련한 공간을 바탕으로 지역과 연계한 활동을 더 단단히 펼쳐가고 지속적인 혁신과 도전을 통해 전통예술이 가진 힘은 더 넓은 세상에 전달하겠다라고 말했다.

온라인 공연 미여지뱅뒤와 관련한 내용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miyeojibaengdui.com)

사단법인 마로는 2000년부터 사물놀이패로 시작한 25년의 저력을 가진 제주 전통예술공연단체로 제주큰굿에서 영향을 받아 제주큰굿보존회의 큰심방 서순실 심방을 예술 고문으로 제주의 굿을 연구하고 이를 창작, 발전시키는 작업을 해왔다. 사물놀이를 기반으로 한 판굿에서 미디어아트를 도입한 융복합 공연을 시도하며 10여 년간 전통적 기술과 디지털 기술을 잇는 창작물을 개발했다. 제주 신화와 설화를 모티브로 한 다양한 창작 융복합 공연을 발표했고, 해외에서 호응받아 다양한 지역 초청 공연을 진행했다.

특히 전통예술 공연이 티켓 수익만으로 유지하기 쉽지 않은 데, 제주의 전통예술 단체인 마로가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전통 중의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위한 열려 있는 생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무속신앙이라 여기는 굿. 샤머니즘적인 예술을 제주인들의 정서, , 문화를 담아 정형화된 전통이 아닌 현대적 매개 등을 활용해 전 세대가 공감하는 디지털 기술 융합 예술 작품을 만들어가고자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