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에 담긴 4·3... ‘내 이름은’ 제작 본격화
정지영 감독, 염혜란 배우 주연 영화 크라우드 펀딩에 9778명 참여 4월 크랭크인…내년 3월 개봉
지난 15일, 정지영 감독을 비롯한 영화 제작진이 서귀포시 대정고등학교를 찾았다. 4월에 크랭크인 예정인 제주4·3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내 이름은’의 장소헌팅을 위해서다. 제작진은 학교 내외부를 오가며 시나리오와 장소가 어울리는지, 인물의 동선이 적절한지 꼼꼼히 살펴보았다.
4·3의 아픈 역사를 스크린에 담을 이 영화는 크라우드 펀딩 성공에 힘입어 본격적인 제작 준비에 돌입했다. 영화 ‘내 이름은’ 제작위원회는 지난해 12월 2일부터 두 달간 진행한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에서 9778명의 참여로 4억400만원을 모금했다.
이는 당초 목표액 4300만원의 940%를 달성한 금액으로, 영화 제작 펀딩 사상 최고 기록이다. 제작위원회 관계자는 “많은 분의 오랜 염원을 확인하고자 텀블벅을 선택했다”며 “중간에 계엄 선포 등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제작발표회 다음 날인 12월 10일 이미 4300만원의 목표액은 달성했고, 이후 최종적으로는 1000%를 목표로 설정했다”고 밝혔다.
‘내 이름은’은 제주4·3 평화재단과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가 공동 주최한 시나리오 공모전 당선작을 영화화하는 작품이다.
‘정순’과 ‘영옥’이라는 두 인물의 이름을 매개로 1948년 4·3의 상처가 1980년대 민주화 과정을 거쳐 1998년에 드러나고, 2024년 현재의 세대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조명한다.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 ‘블랙머니’의 정지영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드라마 ‘더 글로리’와 ‘시민덕희’로 주목받은 염혜란 배우가 4·3의 아픔을 간직한 정순 역을 맡아 기대를 모은다. 제작비는 마케팅 비용을 제외하고 약 30억 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촬영은 오는 4월 3일 4·3 추념식 장면을 시작으로 6월까지 이어진다. 제주공항을 비롯해 표선민속촌, 대정고등학교, 서귀포시 원도심 등 촬영 분량의 80% 가량이 제주에서 이루어질 예정이다.
특히 1949년과 1998년을 배경으로 하는 주요 장면들이 서귀포 지역에서 촬영될 예정이다.
도 차원의 제작 지원과 협력체계도 구축되고 있는 중이다. 제주콘텐츠진흥원이 인센티브를 지원하고, 제주MBC는 제작 과정을 담은 기획 프로그램과 캠페인 광고 방영 등 홍보 협력을 약속했다.
제주4·3평화재단은 2021년 시나리오 공모 당선 이후 지속적으로 내용을 검토하며 협력해왔고, 올해 장비임대나 촬영장소 협조, 스텝 체류 숙소비 등의 현물지원 방식으로 약 9000만원 가량을 지원할 예정이다.
특히 평화재단은 홈페이지 메인화면에 제작비 기부를 할 수 있는 화면을 띄우는 등 적극적인 홍보에 나서고 있으며, 4·3유족회도 적극적 참여를 약속하고 있다
박선후 프로듀서는 “당초 작년 촬영 예정이었으나 제주지역 협력 추진주체의 변화와 영화계 제작환경 변화, 제작비 확보 문제 등이 영향을 미쳤다”며 “시대 고증과 현장 준비 등 더 세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1년 순연됐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올해 6월까지 촬영을 마치고 편집과 후반작업을 거쳐 연내 제작을 완료할 예정이다. 이후 각종 영화제 출품을 통해 작품성을 인정받고, 내년 3월 말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제작위원회는 텀블벅 후원자들을 위한 특별시사회와 관객과의 대화도 준비 중이며, 후원 금액에 따라 시사회 초대권 등 다양한 리워드를 제공할 예정이다.
제작위원회는 “27만 제주 가구의 소액 후원이 4·3의 이름 찾기에 의미 있는 주춧돌이 될 것”이라며 “이는 4·3의 전국화와 세계화의 중요한 전기”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76년 전 제주에서 비상계엄으로 희생당한 이들과 4·3을 폭동으로 왜곡했던 역사를 뒤로하고 이름을 찾아가는 여정에 도민 사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제작비 확보에 대한 과제도 남아있다. 크라우드 펀딩의 성공적인 달성에도 불구하고 30억원 규모의 제작비 확보가 아직 충분치 않다.
제주도 행정과 경제계, 문화계의 추가적인 지원이 이어진다면 보다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제주도민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