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의 상처 새 시선으로 담아낼 것”

[서귀포신문이 만난 사람] 정지영 영화감독

2025-02-26     구혁탄

정지영 감독은 1946년 청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1990년대 남부군’, ‘하얀전쟁으로 청룡영화상 감독상과 도쿄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하며 한국 사회파 영화의 대표적 연출자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 ‘블랙머니등에서 사회 문제 고발과 권력 비리를 향한 저항적 시선으로 한국 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남부군’, ‘하얀전쟁’,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 등 시대와 사회의 아픔을 스크린에 담아온 한국 영화계의 거장 정지영 감독이 4·3을 소재로 한 새 영화 내 이름은제작을 앞두고 서귀포를 찾았다.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이데올로기적 접근을 벗어나 상처와 트라우마 극복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4·3 이야기를 그려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깊은 고민 끝에 선택한 4·3

정지영 감독은 처음부터 4·3 영화 제작을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한동안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었다는 정 감독은 실제로 4·3 영화를 안하려 했다. 많은 관계자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소재라 나도 한자리 끼는 것이 경쟁하는 느낌이었고, 그래서 의도적으로 비켜서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연히 접한 내 이름은의 시나리오는 주저하던 생각을 바꿔놓았다. “누군가 읽어보라고 건넨 시나리오였는데, 기존 4·3과 관련된 이야기와는 다른 접근방식이 인상적이었다. 이데올로기가 아닌 과거의 트라우마, 개인의 상처에 관한 이야기였다며 제작을 결심한 계기를 설명했다. 특히 이미 남부군에서 이데올로기 문제를 다뤘기 때문에, 이번에는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서귀포의 시간을 스크린에 담다

영화는 1998년 제주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정 감독은 현장 답사를 마친 후 서귀포는 현대화의 물결 속에서도 여전히 옛날의 정취가 살아있는 공간이 남아있어 1998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표현하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평가했다.

4·3이 가진 상징적인 의미를 담아 오는 43일 크랭크인을 시작으로, 내년 43일 개봉을 목표로 촬영이 진행될 예정이다.

도민과 함께 만드는 새로운 도전

내 이름은의 가장 큰 특징은 제작 과정에서부터 도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정 감독은 제주도민 한 가구당 1만원씩이면 27억원의 제작비가 확보된다소수의 큰 투자보다 다수의 작은 참여가 이 영화의 정신에 더 부합한다고 강조했다. “10만원짜리 한 사람보다 1만원짜리 열 명이 더 의미 있다는 그의 말에서 도민들이 함께 만드는 영화에 대한 진정성이 느껴졌다.

출연진 구성에 있어서도 도민의 참여를 적극 추진한다. 제주도민 배우 100명을 캐스팅할 계획이며, 이는 지역 연극단체와의 협력을 통해 진행된다.

정 감독은 제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연극단체에 캐스팅 권한을 맡겼다먼저 대사 소화 능력을 선별한 후 최종 캐스팅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품을 위한 철저한 준비

시나리오 작업을 위해 정 감독은 방대한 자료 조사에 몰두했다. 4·3 관련 자료와 관련 영상을 섭렵하며 사건의 본질에 다가가려 노력했다. “단순히 이야기의 소재나 아이디어를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고통과 느낌을 몸으로 체득하기 위해 조사했다다는 정 감독은 특정 사건을 재구성하기보다는 4·3의 총체적인 모습을 담아내고 싶다며 접근 방식을 고민 중이라고 답했다.

영화에 담긴 사회적 메시지

정 감독은 멜로드라마를 찍더라도 거기에 사회성을 담는 것이 창작자의 의무라며 사랑의 형태가 시대별로 변하는 것도 결국 사회가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판타지든 액션영화든 감독의 사회적 시각은 작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밖에 없다며 예술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정 감독은 이 영화는 제주도민을 위한, 제주도민에 의한 작품이 될 것이라며 제주도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말에서 4·3의 아픔을 새로운 시선으로 담아내려는 진정성과 열정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