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곳곳 장애인 등 약자 보행 ‘위협’ 여전
작년 조사 72곳 중 문제점 다수 보행권 법 명시에도 차도로 밀려 웰니스거리 사업 보행권 우선해야 이연희 “장애인 접근권 고민해야”
서귀포 지역 도심권 보행환경이 열악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은 보행로가 아닌 위험한 차도로 내몰리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어 안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웰니스 거리' 조성을 통한 원도심 활성화를 추진하는 서귀포시에서 정작 모두를 위한 보행권은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72곳 점검 결과, 법적 기준 미달 '수두룩'
서귀포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센터장 이연희)는 2024년 접근권모니터링 사업의 일환으로 서귀포시 원도심 지역 보행도로 환경을 조사했다. 조사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 당사자가 2명이 포함된 조사단 3명이 진행했으며,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시행규칙에 명시된 기준을 적용했다.
조사단은 서귀포시 중앙로터리를 기준으로 서홍사거리에서 서문로터리, 선반내사거리에서 동홍사거리, 동홍사거리에서 동문로터리까지 원도심의 보행도로 72곳을 점검했다.
조사 결과, 통행로 유효폭 기준을 지키지 않은 곳 20곳, 미끄럽거나 평탄하지 않은 통행로 22곳, 횡단보도와 차도의 턱 높이가 기준을 초과한 곳 21곳, 연석경사로 기울기가 기준에 충족하지 않는 곳 26곳 등 많은 구간에서 문제점이 발견됐다.
▲버스 정류소·화단으로 좁아지는 통행로...장애인 이동 '위험'
조사에서는 버스 정류장과 화단으로 인해 급격히 좁아지는 통행로도 확인됐다. 애니메이션 센터 정류소 부근은 보도가 막혀 휠체어 이용자들이 차도로 이동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동문로터리 인근에서는 상점 문이 열리면 보도가 좁아져 할 수 없이 차도로 휠체어 주행을 할 수 밖에 없는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도로의 구조·시설 기준에 관한 규칙’ 제16조에 따르면 보도 유효폭은 최소 2미터 이상(지형상 불가능한 경우 1.5미터)이어야 하고, 차도와 접하는 연석의 높이는 25센티미터 이하여야 한다. 그러나 서귀포 지역의 많은 보도는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시각장애인 안전 위협하는 점자블록·음향신호기 부재
횡단보도 앞에 점자블록이 설치되지 않아 시각장애인이 위험에 노출되는 구역이 다수 확인됐다. 특히 서문로터리 인근에서는 보도가 좁아져 점자블록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횡단보도 앞 멈춤을 나타내는 점형블록이 없어 위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화초로 인해 점자블록이 고르지 못하거나, 점자블록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은 구역도 있었다. 횡단보도 음성신호기는 신호등이 있는 곳에만 설치되어 있고,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는 음성신호기가 없어 시각장애인들이 더 큰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웰니스 거리 조성, 진정한 '모두를 위한' 거리 돼야
서귀포시가 추진 중인 '웰니스 거리' 조성 사업은 원도심 내 주요도로의 교통체계 개편, 보행환경 개선으로 모두가 편리한 15분 생활권 실현,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도시 속 자연 숲 조성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현재 논의되는 방향은 장애인을 비롯한 교통약자의 관점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이연희 서귀포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장은 “2022년 도내 편의점 장애인 접근권을 조사했는데 87%가 장애인은 이용할 수 없는 곳이었다”며 “상권도 중요하지만 장애인 접근권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애인 콜택시·저상버스 부족 문제도 시급
보행환경 외에도 서귀포 지역의 장애인 이동권은 대체 교통수단 부족으로 더욱 제한받고 있다. 제주도 전체에 휠체어로 바로 탑승가능한 특장차량 택시는 68대에 불과해 대기 시간이 길고, 병원 진료 등 중요한 일정에 늦거나 아예 가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저상버스도 제주도 전체에 약 50대 정도만 운행되고 있어 모든 노선을 커버하지 못하고 있다. 버스 정류소의 구조적 문제로 저상버스가 정류장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 실질적인 이용에 어려움이 있다.
▲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를 위한 환경
1993년 출범 당시 사단법인 녹색교통운동은 보행권을 '모든 사람들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거리를 다닐 수 있는 기본적 권리'로 정의했다.
이어 2012년 제정된 '보행안전 및 편의증진에 관한 법률'에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보행권을 최대한 보장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서귀포시가 장애인을 비롯한 시민의 보행권을 어떻게 보장할지 앞으로 주목해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