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확대, 농민도 수혜자가 돼야 한다
제주특별자치도가 태양광 에너지만으로 감귤을 재배하는 전국 최초의 실증사업에 나서겠다고 최근 밝혔다. 제주도 농업기술원은 올해 1월부터 제주도 혁신산업국, 제주테크노파크와 함께 태양광 시설을 활용한 ‘RE100 감귤’ 생산 모델을 실증하고 있다. RE100은 태양열·태양광·수력·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100%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화석연료 없이 재생에너지로만 감귤 농사를 짓는 시스템 구축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제주도는 총 사업비 6억7200만원을 투입해 농업기술원과 남원읍 농가 두 곳에 태양광 발전과 에너지저장장치(ESS), 히트펌프 시설을 설치하고 있다. 태양광으로 생산한 에너지와 감귤 재배에 소요되는 전력량을 비교·분석하고, 과실 품질 조사도 병행해 올해 말까지 작형별 RE100 감귤 생산 모델을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농가에 보급해 확산시키겠다는 것이다.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감귤 농사는 여러 가지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 무엇보다 고유가로 인한 난방비 부담을 전기로 대체해 농가 경영비 절감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동시에 화석연료 사용을 줄여 ‘청정 제주’ 실현에도 기여할 수 있다. 농가 역시 RE100 감귤 생산시설이 보급되면 감귤 농사에 필요한 전기를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남는 전기는 ESS에 저장해 판매함으로써 새로운 소득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만큼이나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태양광 설비는 화재, 전기 누전, 태풍 등 자연재해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설비 안전성과 자연재해에 대한 충분한 대비 없이는 농가가 오히려 피해를 입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제주도는 이미 지난 2016년 ‘감귤원 태양광 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수익성과 안정성, 토지 이용 문제 등 복합적인 문제로 농가 피해가 확산됐다. ‘전기 농사’라는 장밋빛 청사진을 믿고 참여한 농민만 고통을 떠안았던 것이다. 이러한 과오가 반복돼서는 안 된다.
현재 제주지역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은 20%에 달하지만, 전력계통 포화와 출력제한이라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해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기존 발전소 생산 전력과 중첩되면서, 민간 태양광발전소에 발전 중단을 강제하는 출력제어 조치가 시행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발전사업자의 손실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제주도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분산에너지 특화지역’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분산에너지 체계는 전력 소비지 인근에서 생산된 전기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의 불안정성을 보완할 수 있다. 또한 RE100 감귤 실증에도 필수적인 에너지저장장치 설치도 병행하고 있다.
제주도는 RE100 감귤 실증사업과 함께 제로에너지건축물 확산과 탄소중립 정책 강화를 위한 ‘녹색건축물 설계기준’ 개정도 추진 중이다. 30세대 이상 공동주택과 연면적 1000㎡ 이상 비주거 건축물의 신축·개축 시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의무화하는 것이 골자다. 이는 제주 전역의 에너지 자립률을 높이고, 온실가스 감축에도 기여할 수 있는 방향이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기후변화 대응과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선택이 아닌 필수다. 그러나 이상과 명분만을 내세워 농민과 지역사회의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에너지 체계와 농업의 결합은 철저한 안전 대책, 실현 가능한 경제성, 그리고 농가의 삶과 생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어야 한다. ‘청정 제주’는 주민 모두가 함께 누리고 유지할 수 있을 때에만 진정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