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유불리가 도민 자기결정권보다 우선

[진단] 행정체제 개편 난관 2026년 7월 출범 목표로 추진 주민투표 후 내년 출범 목표 김한규 국회의원 다른 목소리 도의회도 다시 여론조사 방침

2025-08-12     윤주형

서귀포 시민이 서귀포시장과 서귀포시의원을 직접 뽑아 기초자치단체를 설치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제주형 행정체제 개편이 이번에도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는 정치권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동안 제주도민보다는 정치인의 판단에 따라 행정시장 직선제 등 행정체제 개편은 번번이 좌절됐다. 도민의 자기 결정권 강화를 정치권이 나서서 실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시민이 직접 시장 선출
2022년 7월 출범한 민선 8기 제주도정은 2026년 7월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출범을 목표로 설정했다.

이에 따라 제주도는 민선 8기 제주도정 출범 직후인 2022년 8월 30일 행정체제 개편위원회를 구성해 제주형 행정체제 도입 등을 위한 공론화 논의에 착수했다.

제주도 행정체제 개편위원회는 지난해 1월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 출범으로 폐지된 시군 기초자치단체를 다시 도입하고 현행 2개 행정구역을 동제주시, 서제주시, 서귀포시 등 3개로 재편(국회의원 선거구 기준)’하는 내용을 담은 제주형 행정체제 개편안을 제주도에 권고했다.

제주도는 주민 토론회 등 숙의형 공론화를 거쳐 행정체제개편위원회가 제안한 3개 기초자치단체를 수용하고, 관련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기초자치단체 설치를 위한 법적인 절차는 아니지만,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제주도민의 자기 결정권 보장 등을 위해 주민투표를 실시하고, 내년 지방선거에서 시장을 시민이 직접 선출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안이다.

▲도민 공론화에도 정치권 이견
3개 기초자치단체 설치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제주형 행정체제 개편은 국회의원 등 정치권이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난관에 봉착했다.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제주시을)은 지난해 11월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기초자치단체로 만들어 주민이 시장을 직접 선출하도록 하되, 현행 제주시, 서귀포시의 행정구역을 유지하는 내용의 이른바 ‘제주시 쪼개기 방지법’을 발의했다.

3개 기초자치단체 설치를 위한 도민 찬반 의견을 묻는 주민투표가 무산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현행 제주특별법은 ‘행정안전부 장관은 제주자치도의 계층구조 등 행정체제 개편에 대한 도민의 의견을 들을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도지사에게 주민투표법에 따른 주민투표의 실시를 요구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의 행정체제를 개편하기 위한 주민투표는 행정안전부 장관이 실시 여부 등을 결정하고, 제주도지사에게 요구해야 이뤄진다.

그러나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달 장관 임명에 앞서 국회가 실시한 인사청문회에서 “기초단체를 과거처럼 4개가 아니라 2개나 3개로 부활하자는 의논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어느 쪽으로든 선택돼야 주민투표에 부의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김한규 국회의원이 발의한 ‘제주시 쪼개기 방지법’으로 인해 중앙 정부는 제주도민이 기초자치단체를 몇 개로 할지 정하지 못했다고 인식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제주도의회와 정당도 가세
제주도의회 역시 행정체제개편위원회가 도민 공론화 과정을 거쳐 제안한 행정체제 개편안에도 불구하고, 행정체제 개편 막바지에 다시 여론조사 추진 입장을 밝히면서 도민사회 혼선을 키우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상봉 제주도의회 의장은 지난 5일 제441회 제주도의회 임시회 개회식에서 “제주도민의 뜻과 타당성을 직접 묻는 절차를 도의회가 이행하겠다”라고 밝혔다.

이후 이상봉 제주도의회 의장은 제주도의회 의회운영위원회 소속 의원 등과 비공개 간담회를 열고 여론조사 계획을 논의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도 혼란에 가세하는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은 지난 6일 ‘제주시를 동제주시와 서제주시로 나누는 행정구역 조정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란 문항으로 실시한 자체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하기도 했다.

해당 여론조사는 제21대 대통령 선거 전에 실시돼 비공개 자료로 알려졌지만,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 위원장의 뜻에 따라 공개된 것으로 도내 정가는 보고 있다.

▲번번이 정치권에 ‘발목’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하면서 기존 제주시·서귀포시·북제주군·남제주군이 통폐합된 이후 도민 사회에서는 시장 직선제 등 행정체제 개편 요구가 이어졌다.

이에 따라 2010년 민선 5기 제주도가 행정시장 직선제 논의를 시작한 이후 2022년 7월 출범한 민선 8기 제주도정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0년 출범한 민선 5기 제주도정은 당시 행정체제개편위원회가 제시한 ‘시장직선·의회미구성안’을 수용하고 행정시장 직선제를 추진했다.

그러나 행정시장 직선제는 당시 제주도의회가 ‘행정시장 권한 강화 우선’ 등을 이유로 제시하면서 행정시장 직선제 동의안을 부결시켰다.

이어 민선 6기 제주도정이 행정체제 개편 논의를 재개했지만, 당시 지방선거를 앞두고 본격화한 개헌 논의 등으로 제주 출신 국회의원들이 “개헌안이 나올 때까지 행정체제 개편 논의를 유보한다”라고 밝히면서 행정체제 개편은 다시 좌초됐다.

제주도의회에 이어 제주 출신 국회의원이 당시 시장 직선제를 주요 내용으로 하던 행정체제 개편에 제동을 건 상황이다.

민선 7기 제주도정 들어서는 정부가 행정서비스 효율성·신속성 확보의 단일광역자치체제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불수용’ 의견을 제시하면서 행정시장 직선제는 무산됐다.

민선 8기에 들어서는 기초자치단체 설치 및 ‘동제주시’ ‘서제주시’ ‘서귀포시’ 등 3개 행정구역으로 나누는 민선 8기 행정체제개편위원회의 권고안을 수용해 추진하고 있다.

민선 8기 제주도가 추진하는 행정체제 개편 역시 정치권의 이견과 중앙 정부의 불명확한 입장 등으로 고비를 맞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편 이재명 정부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위원회는 13일 대국민 보고회를 열고 세부 국정과제 및 정부 조직개편안 등을 공개할 예정으로, 국정과제에 제주형 행정체제 개편 내용이 담길지, 담긴다면 어떤 방식이 될지 등이 제주형 기초자치단체 설치의 변곡점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윤주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