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증(范曾) 선생’과 AI 시대의 예술
오은숙 / 서귀포시청 중국교류 담당
지난 7월, 제주한라대학교 공자학원과 RISE 사업단이 공동 주최한 기획 포럼 ‘범증(范曾) 선생의 철학 사상과 예술세계’에 초청받아 참석했다.
한국과 중국의 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범증 선생의 예술과 철학을 깊이 조명한 그 자리는 단순히 한 예술가를 이해하는 자리를 넘어서 예술과 그 안에 담긴 동양 철학의 깊이를 함께 풀어내는 뜻깊은 자리였다. 개인적으로도 매우 뜻깊고 인상 깊은 시간이었다. 단지 한 예술가를 아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술이란 무엇이며, 왜 지금 우리에게 예술이 필요한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범증 선생은 중국 현대 예술계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그는 단순한 화가가 아니라, 동양 철학의 깊이를 예술로 구현해낸 진정한 사유의 예술가다.
시(詩), 서(書), 화(畵)에 모두 뛰어난 그는 언제나 예술의 중심에 철학과 인간 정신에 대한 깊은 탐구를 두었다. 그의 작품 속에는 노자의 ‘도법자연(道法自然)’과 장자의 ‘소요유(逍遙遊)’ 같은 동양 사상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그림에서 철학의 향기가 진하게 배어나오는 듯했다.
범증 선생이 강조한 ‘고전으로 회귀, 자연으로 회귀(回歸古典, 回歸自然)’라는 말은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자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잃어버린 본연의 삶과 정신, 자연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회복하자는 깊은 철학적 메시지다. 이러한 메시지는 오늘날 우리에게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 같다.
포럼에 참석한 학자들의 발표를 경청하던 중, 몇 년 전 들었던 한 뉴스가 떠올랐다. AI가 만든 그림이 국제 미술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고, 심사위원들조차 그것이 인공지능 작품임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사건이다. 놀라운 기술 발전에 많은 사람들이 큰 허탈감과 나아가 예술의 본질이 흔들리는 듯한 깊은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나 역시 ‘예술 세계에도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는 시대가 오는가?’라는 질문을 지울 수 없었다. 오늘날 AI는 단 몇 초 만에 정교한 이미지를 만들고 감미로운 음악을 작곡하며 인간의 목소리까지 완벽하게 흉내낸다.
기술의 발전은 분명 경이롭다. 하지만 범증 선생이 말한 “붓끝에서 피어나는 선은 단지 형상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발현”이라는 점에서 AI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AI는 형상을 모방할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 사유, 생의 무게까지 표현하기는 어렵다.
나는 미술에 대한 깊은 지식은 없지만 범증 선생의 예술 세계에서 분명한 울림을 느꼈다. 그의 작품은 단순히 아름다운 그림이 아니라 철학이고 삶이며, 시대를 관통한 인간정신의 소중한 기록이었다. 예술은 단순한 기술이 아닌 인간이 자기 자신과 마주하고 시대와 대화하며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는 고유한 방식이다.
AI는 훌륭한 도구일 수 있지만, 도구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는 것이 있다. 즉, 예술 속에는 작가의 고민과 철학, 시대정신, 그리고 인간만이 지닌 감정이 깊이 스며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AI가 흉내낼 수 없는 ‘인간만의 결(結)’, ‘영혼의 흔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예술뿐 아니라 인간 고유성마저 위협받는 격변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기에 인간의 깊은 사유와 감정, 고유한 표현력은 기술이 대체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철학이 깃든 예술, 정신을 담은 선을 되새겨야 한다.
범증 선생이 강조한 ‘고전으로 회귀, 자연으로 회귀(回歸古典, 回歸自然)’라는 철학을 기억하며 AI 시대에 우리는 기술에 휘둘리기보다는 기술과 인간의 조화로운 공존 속에서 우리의 삶이 더욱 풍요로워지길 간절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