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전설’, 추석이 온다
[도시 이야기] 신승훈 / 서귀포시 중앙동 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장
가을이 온 것 같더니 아직 여름이다. 확연한 뜨거운 여름 날씨다.
강릉의 가뭄 현상은 전국 뉴스로 소개되며 나라의 걱정이 되고, 곳곳에서 벌어지는 기후변화 현상에 올해 추석 물가에 대한 걱정이 많다.
명절이 다가오면 늘 회자되는 것이 물가지만 제주도민에게 가장 이슈가 되는 것은 역시 벌초가 가장 뜨겁다.
뉴스나 신문 등 각종 지역 매스컴에서도 벌초 소식이 전해진다.
‘추석(秋夕)’은 음력 8월 15일에 지내며 한가위라고도 불린다. 설과 함께 한국의 대표적 명절이다. 농경사회에서는 한 해 수확에 대한 감사와 조상을 기리는 날이다. 그 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척과 친구들을 만나기도 한다. 각박한 세상에서도 명절 때만큼은 나눔과 그리움, 반가움이 있다.
제주에서 추석은 ‘팔월멩질’이라 부르며 벌초로부터 시작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체로 음력 8월 초하루부터 시작해 추석 전날까지는 벌초를 끝낸다. 이 때가 되면 중산간을 중심으로 삼삼오오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가장 윗대 조상의 묘부터 모둠벌초 혹은 문중벌초를 시작한다.
학교나 직장 등의 이유로 타지에 살고 있더라도 이 때 만큼은 제주로 돌아와 벌초에 참석한다. 모둠벌초가 끝나면 직계 묘소를 찾아 가지벌초 혹은 가족벌초를 한다.
‘식게 안 한 건 몰라도, 소분 안 한 건 놈이 안다’라는 제주 속담이 있다.
제사 안 지낸 것은 남이 몰라도, 벌초 안 한 것은 남이 안다는 뜻이다.
또 ‘추석 전에 소분 안하민 자왈 썽 멩질 먹으레 온다’라는 말도 있다. 추석 전에 벌초하지 않으면 조상이 덤불을 쓰고 추석 먹으러 온다는 뜻이다.
그 만큼 벌초는 제주에서 중요한 문화다. 한 때는 벌초방학이라 해서 임시휴교일을 정해 학생이 벌초에 참여하도록 했던 시기도 있었으니 오죽했을까.
가족과 친지가 모여 조상을 기리고 벌초하는 모습은 제주가 이어가는 소중한 공동체 정신이자 훌륭한 괸당 문화라 생각한다. 조상을 위해 땀 흘리며 벌초하는 모습을 보면 대단한 효심과 단합이라고 생각한다. 조상 잘 두는 것도 운명이지만 후손 잘 두는 것 또한 조상의 운명이 아닐까 싶다.
추석하면 송편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전국 8도 각각의 풍습대로 가족들이 모여 송편을 빚고 차례상에 올린다. 최근에는 수고를 덜고자 시중에서 구매해 올리는 경우도 많다.
제주의 송편은 육지와는 조금 다르다. 육지는 대부분 반달 모양인 것에 비해 제주는 둥글고 납작한 보름달 모양으로 빚는다. 또한 제주시와 서귀포시 조차도 송편의 형태가 다르다는 이야기도 있다.
팥, 콩 등으로 소를 만들고 쌀 재배가 어려웠기에 좁쌀, 보리, 조 등 잡곡을 섞어 송편을 만들기도 했다.
또한 지역마다 차례상에 올라가는 음식이 다른데 내가 본 것중 가장 이색적이었던 것은 바로 카스테라나 롤케이크였다. 척박했던 시절, 빵이 귀해 추석 명절에 특별히 올린 것이 그 기원으로 보인다.
어릴 적부터 봐왔던 별모양의 기름떡(별떡)도 신기했다. 테두리를 별 모양으로 만들어 노릇하게 구운 떡 위로 하얀 눈이 내린 것처럼 설탕을 흩뿌리는데 한 입 베어물면 기름이 안에서 터지며 달콤함과 고소함이 함께 느껴졌던 그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또 보릿가루나 밀가루에 탁주를 부어 발효시킨 반죽에 팥소를 넣고 성형하여 쪄낸 것을 ‘상애떡(상외떡, 상웨떡)’이라 하는데 사실상 빵에 가깝기에 상애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육지의 술빵과 비슷한데 심심하면서도 묘한 매력이 있어 가끔씩 먹게 된다. 그 외에 옥돔, 돼지고기적, 귤, 각종 해산물 등 척박했지만 마음은 풍요로웠던 제주의 차례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른다.
추석이 되면 시장과 오일장은 사람들로 붐비고 도시가 활기를 띈다.
올해는 연휴가 길어 관광객도 많이 제주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추석은 매년 찾아오지만 한 해 한 해 기다려지는 이유는 제주에 살아서일까?
제주만큼 풍요로운 문화와 풍습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없기에 올 가을 추석 또한 유난히 기다려진다.
‘가을의 전설’, 추석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