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간 집어등
[에세이로 쓰는 제주의 삶] 오금자 / 수필가
여름밤은 집어등 빛으로 시작한다.
삶에 지친 영혼들이 하나둘씩 밤 바다에 모여든다. 모래알이 발밑에서 사각거린다. 한 줄기 바람이 품었던 사연을 바다에 풀어놓으면 파도가 응답하듯 출렁거린다.
바람과 파도는 친구처럼 서로를 밀어주고 다독여 준다. 포구의 어둠을 대낮같이 밝히는 집어등 불빛이 오늘따라 더 밝다. 하늘에서는 만선을 기원하듯 별빛들이 쏟아진다.
집어등이란 어부들이 물고기를 잡기 위해 사용하는 램프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불빛이 집어등이다. 밤이 내리면 바다는 어둠 속에 잠긴다. 멀리서 바라보는 바다는 작은 도시를 이룬 것처럼 온통 불빛으로 환하다.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어부들은 기대와 희망으로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뱃사람들은 바다의 소리와 짠 내음을 고스란히 맡으며 희망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바다는 아름다움과 슬픔이 공존하는 곳이다. 여름밤이면 습관처럼 바다를 바라본다. 어떤 날은 집어등이 바다를 삼킬 듯이 가득 채우고, 어떤 날은 드문드문 바다에 떠 있다. 집어등은 단순한 빛이 아니라 생명들이 모여들게 하는 집합소이다.
어둠이 내려앉은 바다 위로 집어등 불빛이 쏟아지면 푸른 심연은 인공의 빛으로 물든다. 바닷속을 유영하던 고등어와 갈치와 오징어들이 유혹적인 광채에 홀려 죽음의 초대장인지 모른 채 내일을 잊고 춤을 춘다.
어부들이 은빛 갈치를 건져 올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어릴 적에는 작은 ‘테우’(통나무배)를 바다에 띄우고 고기도 잡고 해초도 땄다. 아버지는 더위가 한창 무르익으면 테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바다에서 하루를 보낸 아버지의 손에는 벵에돔과 우럭과 용치놀래기가 가득하다. 저녁이면 우리는 동그란 밥상에 모여 앉아 갓 낚아온 생선을 앞에 두고 바다 이야기를 했다. 동그라미 추억이 하나둘 떠오르면 아버지 얼굴이 눈물 꽃이 되어 내 눈에 맺힌다.
▲바다, 생명의 보고
아버지의 손은 인생의 지도와 닮았다. 굵고 깊은 주름마다 파도의 격랑과 햇살의 온기가 마디마디 새겨져 있다. 훈장처럼 잘려 나간 새끼손가락은 고기밥이 되었고, 손바닥에 생긴 굳은살은 수천 번의 출항 준비로 생긴 상처가 웅크리고 있다. 아버지가 바다로 향할 때면 노을빛에 물든 수평선이 손금에 비친다. “물고기가 많이 나오는 지점을 찾을 수 있을까?” 선원들에게 묻지 않아도 손가락 관절의 굵기로 풍향을 읽으며 손등에 솟구친 푸른 정맥이 고기가 몰리는 곳을 정확히 알아내는 나침이 된다.
아버지는 바다로 나갈 때 늘 침묵으로 바다와 마주한다. 파도와 나누는 무언의 깊은 대화가 길어지고 얼굴에는 먹구름이 끼었다.
바다는 생명의 모태이자 죽음의 문이다. 어부에게 그물이 올라올 때마다 생과 사가 갈린다. 은빛으로 펄떡이는 고기떼는 오늘의 승리를 알리지만, 빈 그물은 내일의 불안을 예고한다. 그물에 걸린 아버지의 삶의 흔적이 파도와 함께 일렁인다.
어릴 적 바다에는 갯돔과 다금바리 같은 고기떼들이 많았다.
사람들은 낚싯대를 두르고 건져 내기가 바빴다. 지금은 인위적인 불빛으로 고기를 유인하여 어획량을 늘린다. 그러다 보니 바다는 점점 고갈되어 간다. 고기들이 차츰 사라지는가 싶더니 바닷물도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바다를 중심으로 살아왔던 사람들의 삶에도 변화가 생겼다. 어부들의 손길이 점점 거칠어지고, 집어등과 함께 출렁이던 바다는 끝없이 내어주다 더 이상 내어줄 것이 없는지 가난해졌다.
▲인간의 욕망이 죽이는 바다
아버지가 전해주던 “바다는 어머니의 품”이라는 말은 이제 먼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바다는 아파도 힘들어도 한마디 비명도 지르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제 몸을 내어줄 뿐이다.
바다는 고깃배의 불빛으로 점령당하여 도시의 한복판에서 춤추는 유희처럼 허우적댄다. 밤바다의 한적함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바닷가에는 낮과 밤이 다르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육지의 밤은 한없이 고요하지만, 여름날의 밤바다는 수많은 고기잡이배로 요란스럽고 부산하다.
바다에서 더 많은 어획량을 거두기 위해 인간의 욕심은 꿈틀댄다. 빛에 이끌린 물고기들은 그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뒤엉켜 고통스럽게 팔딱거린다. 드넓은 바다에서 인간의 욕심은 어디까지일까. 욕심은 인간 본성의 일부라지만, 광야 같은 인생길 무거운 짐을 지고 신음하더라도 마음에서 욕심을 내려놓지 못한다. 땅에서나 바다에서나 인간의 욕망은 겹겹이 쌓이고 끝이 없다. 더 많은 물고기를 잡으려고 집어등 불빛으로 바다를 채우면 생태계는 파괴되고 바다는 아파한다.
지구는 푸른 행성으로 불리며 우주에서 유일하게 인간이 살아간다. 그 중심에는 바다가 있다. 지구 표면의 3분의 2이상을 차지하는 바다는 아름다움과 신비로움 속에서 인류의 생존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인간의 무관심과 무절제한 소비는 바다를 심각한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바다는 이제 기후 변화와 오염으로 인해 중대한 위기에 처해 있으며, 이는 인간의 건강과 생존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바다 생태계가 무너질 경우, 그 여파는 고스란히 인간에게 돌아올 것이다.
▲집어등 불빛을 밝혀라
어부들은 오늘도 바다로 나가 그물을 들추며 속삭인다 “아직 늦지 않았어” 어부가 던지는 건 희망이 아니라 마지막 경고다. 바다가 죽어가면 인간도 죽어간다는 것을, 파도보다 먼저 깨달은 어부의 한마디 절규가 바람에 흩어진다. 어부가 부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파도 소리는 그의 숨소리와 하나가 된다. 생과 사를 오가는 동안 바다는 그에게 단 하나의 진리를 가르쳐 준다. 모든 생명은 흐르고, 그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자만이 진정한 삶을 얻을 수 있다고 바다는 말한다.
방파제 위에서 잠 못 이룬 사람들과 물새와 어울려져 한 여름밤은 보내고 있다. 불어오는 해풍은 시원한 청량음료처럼 심신을 편하게 해준다. 방파제 위로 아이들이 웃음소리가 들린다. 사람들 틈에서 눈치 보던 들고양이도 슬며시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린다. 파도 소리가 잦아드는 포구는 어둠이 짙어지고 집어등 불빛만이 자욱한 안개처럼 내려앉는다.
멀리서 뱃고동 소리가 새벽을 알린다. 달빛을 베개 삼아 길게 누웠던 파도가 일렁이며 바다의 아침을 맞는다.
선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물을 올려라!” 순식간에 은빛 생선들이 갑판 위에 쏟아진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발아래 모래를 굴려대며 내일을 꿈꾼다. 집어등 불빛은 켜지고 생명의 그물은 마지막 바다 이야기를 육지에 내려놓는다. 파도 소리와 함께 새 삶의 리듬이 바닷속으로 스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