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다리’를 아시나요?
[한천민의 오름이야기-142] 한천민 / 한라오름연구소장·동화작가·시인
제주의 오름 이름을 살펴보면 가장 많은 붙이는 것이 ‘오름’이고, 그 외에 ‘-봉’, ‘-악’, ‘-뫼’, ‘-메’, ‘-이’, ‘-산’, ‘-머르’, ‘-아리’ 등이 붙는 경우들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오름의 이름은 위의 예에서 살펴본 것과는 전혀 다르게 ‘썩은다리’다. 이름이 참 특이하다. ‘-다리’라고 붙은 것도 특이한데, 거기다 썩었다니 말이다. 썩은다리는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지경에 있는 오름으로, 화순금모래해수욕장 서쪽에 바로 인접해 있다. 산방산에서는 남동쪽 방향의 바닷가에 위치해 있는 매우 작은 오름이다.
▲ 이름의 유래
이 오름의 이름이 왜 이렇게 불리게 되었을까 궁금해 자료를 찾아보았더니 오름 전문 커뮤니티로 오름을 탐방하여 연구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단체인 ‘오름오르미들’ 홈페이지에는 이 오름의 유래에 대해서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오름의 유래에 대해선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오름의 지세나 형상으로 보아 ‘사근(沙根)+달(높은 봉우리의 의미를 지닌 고구려어 : 높다, 산, 고귀하다)+이’로 분석할 수도 있다’
이로 보건대 화순금모래 해수욕장의 모래밭에 가까이 있는 봉우리이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화순금모래 서쪽편에는 물놀이장이 있고, 물놀이장을 지나서 제주올레 10코스가 이 오름을 올라서 지나가므로, 10코스의 리본을 따라 올라가기만 하면 오름 위로 오를 수 있다.
▲ 오름의 지형 및 식생
썩은다리는 5년 전인 2020년 무렵까지는 바다에 직접 면해있는 오름이었다. 그레서 밀물 때는 바닷물이 오름 바로 아래 퇴적암 지층을 적시기도 하고, 파도가 센 날은 파도가 직접 오름을 때리기도 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2021년에 오름 남쪽에 썩은다리의 면적 만큼의 해수면을 메우고 바다 쪽으로 길게 방파제를 만들었기 때문에 현재는 바다에 접하지 않게 되었다. 해수면을 메운 곳에는 서귀포해양경찰서 최남단관이 들어섰다. 최남단관은 서귀포해양경찰서에서 함정부두로 사용하고 있으며, 최남단 바다를 지키는 함정승조원 지원시설이다.
썩은다리는 자체 높이가 37m밖에 되지 않는 매우 낮은 오름이지만, 해수면에 매우 가까이 인접해 있어 오름으로서의 모습을 제법 갖추고 있다.
오름의 모양새는 동서로 약간 길쭉하며 타원형에 가까운 모습인데, 북쪽 부분이 약간 옴폭 패어서 온전한 타원형의 모습을 잃어버린 모양새이다.
남쪽 경사면은 매우 가팔라서 아래 쪽에서 오름을 올려다보면 수직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으며, 동쪽과 서쪽의 경사면은 다소 가파르고 북쪽 경사면은 완만한 편이다.
이 오름으로 제주올레길 10코스가 지나고 있는데, 올레길이 곧 오름 탐방로가 되는 셈이다. 탐방로는 오름 동쪽에서부터 나무 데크 계단길이 만들어져서 위쪽까지 오르며, 정상부에는 데크로 전망대가 만들어져 있고, 정상부를 지나서 서쪽으로 내려가서 올레길이 계속 바닷가 쪽으로 이어지고 있다.
오름을 지나는 제주올레 10코스는 산방산,용머리 지질트레일을 겸하고 있기도 하다.
오름 남쪽 해수면을 메운 곳과의 사이에 지층을 형성하고 있는 퇴적암들이 큰 바위덩이를 이루어 흩어져 있기도 하고, 오름 사면에 지층을 이룬 바위들이 관찰되고 있으며, 오름 위쪽에도 퇴적암들이 많이 관찰된다.
오름 위쪽과 북쪽 사면에는 소나무들이 듬성듬성 자라고 있으며, 상동나무가 매우 많이 자라고 있다. 또한 폭낭, 큰보리장나무, 천선과나무, 꾸지뽕나무, 상수리나무들이 혼효림을 이루어 자라고 있고, 마삭줄이 퇴적암 바위들을 뒤덮어 자라고 있다. 또한 초가을에 관찰되는 초본류로는 모시풀, 섬모시풀, 감국, 닭의장풀, 무릇 등이 관찰된다.
▲ 오름을 오르며
습기를 머금은 열기로 뜨겁던 여름도 지나고 어느덧 가을로 접어들고 있었다. 더위가 다 가시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느낌이 나고 있었다.
화순금모래해수욕장에 이르러보니 해수욕 철이 지난 화순 금모래 해변은 잔잔한 파도만 모래밭으로 밀려왔다 밀려가고 있었고, 모래를 밟으며 걸어가는 젊은이들 몇이 있을 뿐이었다.
썩은다리를 오르기 전, 해수욕장 근처에 동네 노인들이 앉아 놀고있기에 다가가서 물어보았다.
“할머니, 무사 이 오름을 썩은다리랜 햄수과?” “무산지 알아질 말이라. 옛날부터 불러온 말이난 그냥 고람주”
그러자 또 다른 할머니가 이야기했다. “이 오름에 돌이 돈돈하지 안해영 푸석져부난 썩은다리랜 불럼주”
할머니의 말에 의하면 돌이 석재로 쓰기에 알맞지 않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다리’는 제주말의 ‘간세다리’, ‘거짓갈다리’, ‘야겸다리’ 등 표준어의 ‘-쟁이’를 뜻하는 제주말 ‘-다리’가 붙어서 ‘썩은다리’라고 한다는 것이다.
인용한 오름오르미의 설명과 동네 할머니의 설명 모두 맞는 말인 것 같다.
오름 동쪽에서 올라가는 올레길 탐방로를 따라 나무 데크 게단길을 올라갔다. 계단길을 올라가노라니 주변으로 퇴적암들이 계속 보이고 있었으며 그 퇴적암들은 정말 이곳 할머니들의 말처럼 푸석푸석해서 썩은 돌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살짝 튀어나온 작은 덩어리를 만져서 약간 힘을 주었더니 작은 돌덩어리가 톡 떨어지는 것이었다. 역시 이 곳 사람들은 돌이 썩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해되었다.
정상에 도착하기 전 중간 지점에 시원하게 전망을 바라볼 수 있는 바위가 있어서 올라서서 둘러보았다.
아래로 화순항과 금모래 해변이 펼쳐져 있었고, 남부화력발전소와 박수기정, 월라봉, 군뫼가 바라보이고 화순 마을이 훤히 바라보였다.
정상부 전망대로 올라섰다. 화순항이 우거진 나뭇가지 사이로 살짝 내려다보였으며, 방파제 끝 등대 너머로 형제섬과 마리도가 바라보였다.
올레길을 따라 오름 위를 걸어서 서쪽으로 가서 오름을 내려갔다. 올레길을 따라 내려가 바닷가 모래밭으로 가니 썩은다리 주변 지층으로 이루어진 절벽 아래에는 순비기나무가 모래밭을 덮으며 자라고 있었다.
서쪽편 탐방로에서 이어져 있는 지질트레일 탐방로를 따라 오름 북쪽 길로 가서 탐방을 마치고 되돌아왔다.
차를 세워둔 곳 주변의 화순금모래해변은 해수욕철이 지났지만 드문드문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과 주변에서 야영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쓸쓸함을 덜 수 있는 것 같았다.
물놀이장 옆을 흐르고 있는 개울물에 손을 담그니 개울물은 여전히 시원하게 손을 적셔주었다.
▶ 오름 위치 : 안덕면 화순리 지경
▶ 굼부리 형태 : 원추형
▶ 해발높이 : 42m, 자체높이 37m
▶ 면적 : 1만8910㎡, 둘레 : 594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