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칼럼] 농부들이 먼저 청정제주를 만들어야

안은주 / 사단법인 제주올레 대표

2025-11-06     서귀포신문

제주 사람들은 제주를 너무 함부로 사용하는 것 같아요.”

이주한 지 18개월 된 이와 제주살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가 내뱉은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대정 지역에 살고있는 그가 산책길에 만나는 풍경은 버려진 농약병과 농로 여기저기의 비닐쓰레기, 제초제 냄새가 코끝을 찌르는 환경이란다.

농약·제초제는 땅을 거쳐 지하수로, 결국 바다로 흘러갈 텐데 왜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나요?”라는 질문 앞에 부끄러움을 숨길 수 없었다.

그의 지적이 특별한 상황만 본 것이 아님을 뒷받침하는 몇가지 통계가 있다. 몇 년 전 보고된 수치에 따르면 제주의 제초제 사용량은 20142187t에서 20213539t으로 약 1350t이 증가했다. 도내 단위 면적당 농약 사용량이 전국 평균(10.2 kg/ha)의 네 배 이상인 약 41.3 kg/ha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이처럼 화학비료·농약 사용이 확대되는 상황은 제주의 토양 성격으로 인해 그 위험이 배가될 수 있다. 화산토로 대표되는 제주 토양은 유기물 함량이 높아 본래 오염물질을 흡착·여과하는 능력이 있지만, 과도한 화학물질 부하가 그 능력을 초과한다면 지하수·해양 생태계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해녀와 어부들이 제주 바다에서는 이제 잡을 게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은 비단 기후변화만이 원인이 아니다. 땅과 물에 누적된 인간의 흔적이기도 하다.

농로 곳곳에 쓰레기가 날리는 현상도 마찬가지다. 농로마다 시멘트 포장을 한 탓에 비만 오면 물이 갈 곳이 없어 농로에 고이곤 한다. 인근 밭의 농부들은 밭으로 물이 넘어 들어올까 봐 돌담을 비닐로 막아 여기저기 비닐쓰레기가 날린다. 영농쓰레기를 가져가면 돈을 보상하는 제도가 있지만, 돌담으로 스며드는 농로의 물을 막기 위한 댐 역할을 비닐에 맡기는 한 여기저기 흩날리는 비닐을 막을 도리가 없을 듯하다.

제주도가 이렇게 병 들어가고 있는 상황을 방치하고만 있어야 할까. 단순히 규제를 강화하거나 외부 전문기관에만 맡겨서는 충분치 않다. 근본적 변화는 농가 현장의 자발적 전환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농민 스스로 제초제와 농약 사용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제초제를 치는 대신 예초를 하고 피복식물의 힘을 빌어 땅의 힘을 길러주려는 노력말이다. 해충 방제 역시 무조건 뿌리기에서 벗어나 통합병해충관리(IPM) 방식으로 해충을 예찰한 뒤 선택적 방제로 전환하면 한다.

농업기술원에서 월별 병해충 정보와 혼용 주의사항을 안내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나 현장 실천이 수반되지 않으면 좋은 가이드에 머물 뿐이다.

또한 농업 쓰레기, 영농폐기물 관리도 무시할 수 없다. 버려진 농약병·비닐·모종판 등은 단순한 쓰레기가 아니라 농업환경과 지하수, 바다로 이어지는 문제의 시작이다.

행정에서 영농폐기물 수거 및 보상제도를 시행하고 공동집하장을 설치한 것은 긍정적이지만 제도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농가 참여율을 높이고 일상적 수거를 농가 문화로 정착시켜야 한다.

농로에 고인 물이 밭으로 흘러드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하는 돌담 틈새 비닐 문제도 해결책이 필요하다.

농부들만 노력한다고 될 문제는 아니다. 소비자는 여전히 반듯하고 이쁜 농산물을 더 찾는다. 외형이 매끈하다고 해서 품질이나 안전성이 뛰어난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소비자가 이쁘지 않아도 괜찮아요한마디만 해도 농가에게 전환의 신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청정제주는 자연이 선사하는 축복이 아니라 우리가 지켜야 할 약속이다. 밭일이든 길 걷기든, 느리고 꾸준하며 정직한 발걸음이 모일 때 비로소 제주는 다시 맑은 숨을 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