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칼럼] 천천히 달리는 지혜, ‘슬로우조깅’
김용선 / Ph.D (건강운동관리사)
요즘 거리거리마다 런닝 열풍이 불고 있다.
새벽에도, 해 질 무렵에도 러닝화를 신고 달리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곳곳의 산책로와 해안도로에는 달리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그렇다면 런닝은 젊고 건강한 사람들만의 운동일까?
그렇지 않다. 노년기에도 충분히 가능한 런닝, 바로 ‘슬로우조깅(slow jogging)’이 있다.
슬로우조깅은 일본 후쿠오카대 히로아키 다나카(Hiroaki Tanaka) 교수가 제안한 운동법으로, ‘누구나 무리 없이 할 수 있는 달리기’로 알려졌다. 그의 모토는 ‘Run with a smile’
바로 ‘미소 지을 수 있을 만큼만 뛰라’는 것이다. 숨이 너무 차지 않아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의 느린 속도, 바로 이것이 슬로우조깅의 핵심이다.
다나카 교수는 슬로우조깅의 다섯 가지 규칙을 제시했다.
△싱글벙글 웃는 얼굴 △턱을 들고 시선은 전방 △앞꿈치로 착지 △팔과 호흡은 자연스럽게 △좁은 보폭으로 경쾌하게.
이 단순한 원칙이 슬로우조깅을 더욱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운동으로 만든다. 걷기보다 약간 빠르지만, 달리기보다는 훨씬 여유로운 속도로 진행한다. 걷기가 뒤꿈치부터 착지하는 반면, 슬로우조깅은 한 발이 잠시 공중에 떠 있는 조깅 동작을 유지하되, 발의 중간·앞꿈치(중족부, midfoot)로 부드럽게 착지한다.
보폭은 20~30cm 정도로 짧게 유지하고, 분당 170~180보(15초에 약 45보) 정도가 적당하다.
상체를 약간 세우고 팔은 가볍게 흔들며 리듬감 있게 움직이면 된다.
이때 숨이 약간 가쁘지만 대화가 가능한 정도, 즉 중강도 유산소 운동 수준이면 충분하다.
초보자는 ‘조깅 1분 + 걷기 1분’을 한 세트로 10~15회 반복하고, 주 3회, 하루 10분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단, 무릎 통증이나 심혈관 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반드시 의사와 상담 후 시작하고, 충격 흡수가 잘되는 러닝화를 착용해야 한다.
또 경사가 심한 오르막보다는 평지에서 시작하는 것이 안전하다. 반드시 운동 전과 후로 5분 이상 천천히 걷기와 스트레칭을 병행해야 부상을 예방할 수 있다.
슬로우조깅의 효과는 단순한 체력 향상을 넘어선다. 지방을 주요 연료로 사용하는 유산소 시스템이 활성화해 체지방 감량에 효과적이다.
꾸준히 느리게 달리면 혈압과 혈당이 안정되고, LDL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이 감소해 당뇨·고혈압·고지혈증 등 기저질환자에게도 적합한 운동이라 할 수 있다.
2018년 ‘스포츠의학 및 과학 저널’ 연구에서도 슬로우조깅 같은 중강도 운동이 고강도 운동보다 체지방 연소 효율이 높고 심혈관 건강과 스트레스 완화에 효과가 있다는 결과가 보고되었다.
더 나아가, 슬로우조깅은 ‘뇌 유래 신경영양인자(BDNF)’의 분비를 촉진해 기억력과 인지 기능 향상에도 도움을 준다. 꾸준한 유산소 운동이 치매 위험을 낮추고 우울감을 완화한다는 2020년 ‘네이처’ 자매지 연구도 이를 뒷받침한다. 무엇보다 이 운동은 무릎과 허리에 충격이 적어 노년기 관절 부담이 적고, 평소 사용이 적은 근육을 강화하여 자세 안정과 보행 능력을 높여준다.
이제 ‘런닝은 젊은 사람들의 운동’이라는 생각은 내려놓아도 좋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의 리듬, 그리고 즐겁게 움직이는 마음이다.
매일 걷던 길에서, 오늘은 한 걸음만 더 가볍게 뛰어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