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은 중산간 보전에 앞장서야
제주도민의 삶과 역사적 체취가 깃든 마을공동목장이 서귀포지역에서 하나둘 씩 사라지면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대규모 자본가들에 의해 서귀포 마을공동목장들이 ‘부동산 상품’으로 넘겨지면서 제주 특유의 생태․ 역사적 가치가 서서히 훼손되고 있다. 소와 말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던 <영주십경>의 하나 ‘고수목마’ 현장이 관광개발 여파에 휘말려 국적이 불분명한 골프장이나 테마파크, 대단위 리조트시설 등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축산물 수입개방과 ‘소값 파동’ 등 대내외적 요인에 의해 마을공동목장의 입지는 갈수록 위축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마을공동목장은 단순히 소득증대를 도모하기 위한 터전은 아니다. 마을 주민들이 십시일반 자신의 땅을 내놓아 조성한 점에서 제주만의 독특한 목축문화와 마을 공동체성이 깃든 소중한 유산에 다름 아니다.
마을공동목장은 제주도의 중산간과 한라산 등을 이어지는 생태계를 연결하는 중요한 생태축 역할도 수행해 왔다. 주변지역 개발위협으로부터 동․ 식물을 보호하고 오름과 오름간 완충지 역할을 맡으면서 제주도민의 생명수인 지하수 생성에도 적잖이 기여해 왔다. 이런 마을공동목장이 대규모 개발에 의해 훼손된다면 생태계 기반 파괴는 물론, 지속가능한 자연환경 보전에도 악영향이 우려되고 있다.
이렇듯 제주도민이 목숨 걸고 지켜야 할 마을공동목장이 잠식되는 데에는 행정기관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외환위기를 한참 지난 시점에도 투자유치가 지상과제인양 마을공동목장을 비롯한 중산간 일대를 외부 자본이 손쉽게 구입하도록 거들고 있기 때문이다. 서귀포시도 마을주민 투자유치단을 구성하는데 관여함으로써 마을공동목장을 투자유치 대상으로 간주해 왔다.
반면 제주도 축정당국이 1990년대 이후 5․16 도로 인근 중산간일대에 제주마 방목 체험장을 조성한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축산소득 가치가 떨어진 대단위 목초지에 ‘고수목마’를 재현하는 체험 관광시설을 조성함으로써 관광객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것. 요즘 유행하는 스토리텔링 발굴 차원에서 제주형 카우보이인 ‘말테우리’ 소재를 곁들이는 것도 이 자리를 빌려 권유하고 싶다.
제주도가 2012년 세계자연보전총회 유치를 계기로 세계 환경수도로 도약하려면 무분별한 투자유치에 앞서 중산간의 보전과 지속가능한 개발에도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마을공동목장이 외부 자본에 매각되는 사례가 업적으로 치부되는 것은 분명 모순된 사례다. 제주도는 중산간 일대가 순식간에 골프장으로 점령된 현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