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개발 패러다임, 이제는 버려야
과거 수십년간 제주 사회를 지배하던 개발 패러다임에 맹성을 촉구하는 주문들이 요즘 도처에서 제기되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제주도의 자연자원 가치를 과소평가한 결과 난개발이 이뤄지면서 갈수록 ‘제주다움’이 잃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물론 이 같은 지적은 종전에도 수차례 제기됐지만, 개발이 이뤄지지 않으면 마치 도태하는 듯한 사회 분위기에 휘말려 자연보존 운운은 뒷전에 밀리기 일쑤였다.
최근 서귀포시로 눈을 돌리면 우리의 관심을 끄는 몇 가지 사례가 있다. 우선 국토 최남단에 자리 잡은 ‘섬 속의 섬’ 가파도의 사례다. 주지하다시피 가파도는 그동안 마라도나 우도 등 여타 섬에 비해 외부에 내세울 관광자원이 없다는 이유로 외부인의 시선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가파도에는 수려한 자연경관 외에도 1980년대의 마을공동체 정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도시민들의 마지막 휴식처로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다. 마라도와 우도에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넘치면서 점차 본래의 정취가 퇴색하고 상업주의로 치닫는 것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최근 가파도를 탄소가 없는 섬으로 조성하려는 시도도 본격 추진되고 있어 글로벌 녹색성장 시대에 맞춰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또 다른 사례로 월평마을을 꼽을 수 있다. 평범하고 소박하기 이를 데 없는 월평마을이 공공마을 프로젝트 작업에 의해 하루아침에 이야기 거리가 풍부한 마을로 탈바꿈하고 있다. 월평마을에는 번듯한 건물이나 외부 치장 없이도 원래부터 있던 마을 그대로의 모습과 비경, 유적 등을 소재로 이른바 ‘스토리텔링’이 가미되면서 호기심 넘친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아들고 있다.
이들 두 마을의 사례에서 공통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곳에 가면 막대한 돈을 들여 만든 시설들은 찾아볼 수 없지만, 도시에서 찌든 스트레스와 상처들이 잠시나마 눈 녹듯이 사라지게 된다는 점이다. 최근 서귀포시가 올레꾼 등 관광객들에 편의제공을 위해 올레정보센터나 적자가 쌓인 서복전시관 등에 불로장생 체험관을 시설하려 하고 있다.
지방재정 악화 여파로 공공시설물 적자문제가 도마 위에 오른 상태에서 이렇다 할 사후 운영대책도 마련되지 않고 있다. 앞서 가파도와 월평마을의 사례를 거울삼아, 서귀포시가 개발 패러다임에서 한 발짝 물러서 또 다른 고민을 해야 할 시점에 와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