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과 바람은 소중한 우리 이웃
[기획] 가파도, 청정 ‘녹색 섬’ 꿈꾼다(프롤로그)
/ 후쿠시마 사고 계기, 에너지 자립마을 속속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기름 값은 날로 치솟고, 기후변화도 점차 피부에 닿고 있다. 정부에서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미래 동력산업으로 내걸고 있다. 내년도 제주에서 개최될 세계자연보전총회에서는 에너지 문제가 주요의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국내외 사례를 토대로 신재생 에너지 개발과 에너지 자립 방안 등을 점검해 본다. 아울러 ‘섬 속의 섬’ 가파도를 탄소 배출이 없는 녹색 섬으로 만들기 방안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전북 부안군 등용마을에는 부안시민발전소라는 동네 발전소가 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도움 없이 2005년에 주민들의 직접 출자로 태양광 발전소를 만들었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전력의 60%는 마을 전력으로 사용하고, 남는 전력은 한전에 판매해 출자자들에게 수익이 돌아간다. 마을에서 사용하는 전기 에너지를 점차 줄여, 앞으로 에너지 전체 사용량의 절반 이상을 태양광과 풍력 등으로 대체하려는 목표도 세웠다.
광주광역시 신효천 마을 주민들은 매달 200원 정도만 전기요금을 물고 있어, 전기를 공짜나 다름없는 헐값에 쓰고 있다. 집집마다 옥상에 태양광을 설치하고, 이곳에서 생산된 전기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태양광 설치에 반대하던 주민들이 값싼 전기세에 실감하며 이제는 태양광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인근 마을에서도 태양광 도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일본 이와테현에 있는 작은 산골 마을 구즈마키는 지역의 자연 자원을 활용해 풍력, 태양광, 바이오매스 등 다양한 재생 가능 에너지를 생산한다. 잘 가꾼 산림과 목장, 풍차가 관광 자원이 되면서 일본 최고의 와인과 우유도 생산한다. 골프장이나 스키장 하나 없는 산골 오지인 데도 매년 50만의 국내외 관광객이 이곳을 벤치마킹 위해 속속 찾아든다.
이렇듯 화석 연료의 고갈과 환경문제에 대비해 국내외에서 마을 단위로 에너지 자립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펼쳐지고 있다. 동네 주민들이 지역 여건에 적합한 자연 자원을 활용해 에너지를 스스로 만들려는, 이른바 ‘에너지 자립마을’ 조성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에너지 보급체계는 대규모 원전과 화력발전소 등에서 생산한 에너지들을 전국 각 지역에 보내는 중앙집권 체제였다. 소비자들은 한전에서 보내주는 전기나, 대기업에서 수입하는 기름 값이 싸든 비싸든 아무런 불평 없이 그대로 받아쓰기만 했다. 원전 건설에 따른 안정성 논란으로 인해 대규모 원전 건립 때마다 주민들이 크게 반발하며 사회문제로 부각돼 왔다. 집단민원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대체 에너지 개발보다는 기존의 원전 소재지 주변에 원전을 추가 건립하는 임시방편으로 대처해 왔다.
1990년대 들어 지방자치제도가 본격 도입된 이후 우리나라 에너지 생산방식에도 민주화? 지방화 바람이 불고 있다. 지역주민들이 재생가능 에너지 시설에 직접 투자하고, 스스로 운영하며, 경제적 이득을 공유하는 주민 출자형 에너지 조합회사가 하나 둘 생겨나고 있다. 에너지 소비자에 머물던 지역주민들이 에너지 생산에도 직접 참여하면서 일자리가 창출되고 소득도 늘어나고 있다.
지역에서 에너지 생산이 늘어나면 에너지 체계가 중앙 독점에서 지방 분권으로 전환하는 발판이 마련된다. 대형 화력발전소와 원전 등에서 전기를 생산하고 이동시키는데 따른 사회적 환경적 불평등이 다소나마 해소될 수 있다. 무엇보다 지역주민들이 에너지 문제에 깊게 관여하면서 에너지 절약과 온실가스 절감 노력 등 저탄소 녹색성장을 위한 기반이 탄탄히 구축될 수 있다.
‘바람 많은 섬’ 제주도는 신재생 에너지 개발 분야에서 이미 전국적으로 한 발짝 앞선 단계에 와 있다. 구좌읍 행원리에는 국내 최초로 풍력단지가 들어섰고, 월정리에는 정부 차원에서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 연구를 위해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이 건립됐다.
마을 단위에서도 일찌감치 에너지 자립을 위한 노력이 활발히 펼쳐지고 있다. 안덕면 화순리 주민들은 마을의 미래발전 투자 사업으로 태양광 발전시설 건립에 나서, 매년 막대한 수익을 거두고 있다. 표선면 가시리에는 마을공동목장에 대단위 유채밭과 풍력단지를 조성해 에너지 자립마을로 도약하려는 구상이 순조롭게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제주도에서는 2006년 4월 1일, 사상 초유의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했다. 모든 전략 공급이 2시간 34분 동안 끊기면서 도민들이 불안과 공포, 혼란에 빠져들었다. 사고 발생 후 11개월이 지나서야 육지에서 제주로 전력을 공급하는 해저송전망이 모래채취 운반선에 의해 파손되면서 정전이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전국적으로 신재생 에너지 개발을 주도하는 제주도이지만 에너지 지원이 없으면 한갓 고립된 섬이라는 사실을 도민들이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됐다.
최근 국토 최남단 가파도를 ‘탄소 배출 없는 섬’(일명 Carbon Free Island)으로 만들려는 작업이 시도되고 있다. 가파도에 풍력? 태양광 등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자급차계를 갖춰, 그야말로 친환경 녹색섬 면모를 갖추기 위한 사업이 닻을 올리고 있다. 내년도 제주도에서 개최되는 세계자연보전총회 개최를 앞두고 가파도를 저탄소 녹색성장의 세계적 모델로 조성한다는 방침도 세워졌다.
세계지질공원 대상의 하나인 안덕면 용머리 해안지구에는 기후변화 대응을 체험하는 랜드마크 시설도 건립될 예정이다. 기후온난화에 따른 해면 상승으로 해안 산책로가 바닷물에 침식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기후변화의 생생한 사례가 된 까닭에서다.
전 세계인에 충격을 준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에너지 문제의 심각성과 함께 신재생 에너지 개발의 중요성을 새삼 부각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저탄소 녹색성장과 온실가스 감축 등 에너지와 환경문제가 더 이상 구호가 아닌, 시급한 현안이라는 사실을 널리 인식케 하고 있다. 제주도는 신재생 에너지와 기후변화 등에서 뚜렷한 특징과 차별성을 드러내며 전국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제주도가 명실상부 보물섬의 면모를 지켜내도록 민관이 머리를 맞대 대응방안을 모색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