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 산골마을에서 ‘부자 마을’로

일본의 에너지 자립마을, 이와테현 구즈마키
<기획> 하늘과 땅, 사람이 어우러진 녹색공동체

2011-09-08     이현모 기자

지자체와 민간이 제3섹터 방식으로 공동 건립한 구즈마키 고원목장. 재생 에너지 시설과 숙박시설, 낙농체험 등 1차 산업과 3차 산업이 공존하는 시설로 각광받고 있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신재생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기름 값은 날로 치솟고, 기후변화도 점차 피부에 닿고 있다. 정부에서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미래 동력산업으로 내걸고 있다. 내년도 제주에서 개최될 세계자연보전총회에서는 에너지 문제가 주요의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국내외 사례를 토대로 신재생 에너지 개발과 에너지 자립 방안 등을 점검해 본다. 아울러 ‘섬 속의 섬’ 가파도를 탄소 배출이 없는 녹색 섬으로 만들기 방안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 주민갈등 딛고 무(無)에서 유(有) 창조
일본의 동북지방 이와테현은 지난 3월 발생한 지진 해일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었다. 이와테현 중심부에 있는 구즈마키마치(葛卷町)라는 산골마을은 아무 것도 없는 마을에서 일약 일본 최고의 마을로 도약하고 있어 각광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면단위에 속하는 구즈마키의 인구는 약 7400명에 마을의 86%가 산림으로 덮여 있다. 낙농업이 주산업으로, 마을 인구의 두 배 수준인 1만5000여 마리의 젖소를 키우고 있다. 교통도 불편하고 골프장이나 온천 등 관광자원 하나 없는 이곳에는 매년 5000여명의 방문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지난해 12월 구즈마키 마을을 방문한 '가파도를 사랑하는 모임' 회원들이 축산분뇨를 활용해 에너지를 만드는 과정을 시찰하고 있다.

 방문객들은 대부분 재생에너지 활용사례를 배우기 위해 이곳을 들른다. ‘가파도를 사랑하는 모임’ 소속 제주도민과 가파도 주민 대표도 지난해 12월 시찰한바 있다. 실제 구즈마키의 전력 자급률은 160%에 달한다. 마을 전체 전력 사용량을 사용하고도 60%가 남아돈다. 두 군데 산등성이에 설치된 풍력발전기 15기에서 전력의 대부분인 2만2000㎾를 생산하고 있다.

 

공공시설 가운데 가장 먼저 태양광 시설을 도입한 구즈마키 중학교. 

 이곳에서는 바람과 햇볕, 지열, 소수력, 심지어 쇠똥과 음식물쓰레기, 나무 조각 등 마을에 널려 있는 모든 것이 에너지 자원이 된다. 구즈마키 중학교에서 50㎾ 태양광 발전시설로 학교 전력의 25%를 공급한 이후 양노원 등 공공시설에 태양광 발전이 보급되고 있다.

 

고원목장 음식점에 설치된 구즈마키 와인 전시판매 코너.

 공공목장에서는 축산분뇨를 활용해 37㎾의 바이오가스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악취와 오염의 원인이 되는 축산분뇨와 음식물쓰레기를 발효시켜 전기와 비료를 생산한다. 산림자원이 풍부한 여건을 토대로, 베어 낸 나무 조각을 활용해 전기와 열과 숯도 생산한다.   현재 구즈마키는 ‘와인과 우유의 마을’이라 불릴 정도로 일본 최고품질의 포도주와 낙농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 주민과 지자체, 민간이 삼위일체
인구 감소와 낙농업 쇠퇴로 몰락하던 구즈마키가 에너지 분야에서 명성을 얻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구즈마키에서는 1980년대부터 마을경제 활성화를 위해 산업폐기물 처리시설 도입 여부를 놓고 마을이 심한 홍역을 치렀다. 16년간 계속된 분쟁은 마을 촌장 선거에서 폐기물 도입에 반대하는 후보가 당선되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고원목장에 들어선 에너지제로 하우스. 모델하우스이지만 실제 적용에 근접하게 설계됐다. 태양광과 지열, 친환경 단열소재 등을 활용해 냉난방이 가능하며 전기도 생산해 낸다. 

 이를 계기로 마을 주민과 지자체는 1999년 3월 ‘구즈마키 신에너지 선언’을 채택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의 잇점을 살려’라는 테마를 내걸고 지역자원을 활용한 공동체로 키우도록 합의를 이끌어냈다. 고원지대에 풍력발전을 비롯해 공공시설에 태양광발전, 공공목장에 축분 바이오가스 공장, 가정에 장작 보일러 등이 속속 도입됐다. 산간 오지마을이란 열악한 여건을 딛고,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던 자연 자원을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낸 것이다. 

 

고원목장 곳곳에 설치된 친환경 에코 숙박시설.

 이 과정에서 지자체와 민간이 공동 출자하는 ‘제3섹터 방식’을 도입한 점이 눈에 띈다. 지자체와 마을주민들 간 오랜 신뢰를 바탕으로 주민들은 부지를 제공하고, 민간은 재생가능 에너지 시설을 설립했다. 마을에서 생산하는 여유 전력은 민간에서 사들여, 도쿄 등 대도시 공공시설에 공급하고 있다.

 

구즈마키 고원에 조성된 풍력단지 시설.

수려하고 청정한 고원지대에는 ‘구즈마키 고원목장’을 건립해 젖소가 새끼를 낳으면 2년 동안 육성하고 임신시켜 목장에 돌려줘 농가 소득증대에 기여하고 있다. 지역특산품인 산머루를 이용한 와인과 주스 공장도 만들어, 주민 소득 증대와 고용창출 효과를 거두고 있다. 투자 효과가 없다고 사기업들이 외면하던 시골마을이 민관의 협력 속에 에너지와 먹을거리가 순환하는 지속 가능한 공동체로 탈바꿈하고 있다.   

▼ 변화의 주역은 사람 관광업도 발전   
구즈마키 마을을 변화시킨 주역은 마을 주민과 리더십이다. 마을 지도자들은 주민들이 새로운 에너지를 이용하고 싶은 여건을 조성하기 신에너지 도입 보조금제도를 만들었다. 마을 주민들의 이용률이 늘어나 즐거움이 확산되면서 마을 전체로까지 보급되기에 이르렀다.

고원목장 내 숙박시설 전경.

신에너지 도입과 더불어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기 위해 2004년 2월에는 ‘에너지 절약 비전’을 책정했다.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지구온난화와 에너지절약에 관해 스스로 공부하고 이해하고 행동한다.

구즈마키 마을에는 ‘숲과 바람의 학교’라는 에너지 교육기관이 있다. 대도시 기업체에 다니던 한 시민이 10여년 전, 외딴 마을 폐교를 활용해 자연과 재생에너지를 체험하는 하교를 만들었다. 폐버스를 활용해 도서관을 만들고 태양광과 소형 풍력으로 밤에 불을 밝히며, 에너지와 환경, 먹을거리를 주제로 다양한 교육과 자원봉사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 학교의 원칙은 첫째가 ‘버리기에 아깝다’, 둘째가 ‘고맙습니다’, 셋째가 ‘당신 덕분입니다’. 학교를 중심으로 자급자족이 가능한 마을을 실현함으로써 구즈마키를 지금의 에너지마을로 가꿔놓는 데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구즈마키산 젖소를 활용해 우유나 피자, 요구르트 등을 만들어보는 낙농체험 시설. 

최근 구즈마키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제3섹터 방식으로 고원목장에 건립된 숙박시설과 낙농체험시설에는 가족단위 관광객과 청소년들의 발길이 쇄도하고 있다. 도농 교류의 일환으로 도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우유 짜기, 양털 깎기, 돌가마 피자 만들기 등의 체험 프로그램이 호응을 넓혀가고 있다.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숙박시설 확충이 추진되고 있고 관광수익도  크게 늘고 있다. 일손이 모자라 도시에서 생활하던 젊은이들이 다시 고향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구즈마키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기념품 판매장에는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구즈마키 주민들은 그들이 처한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며 녹색에너지로 자립하려는 의지를 실천하고 있다. 당초 에너지 자립을 지향하던 마을이 최근 1차 산업과 3차 산업이 함께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은 ‘청정 녹색섬’을 꿈꾸는 서귀포 가파도 마을에도 좋은 귀감이 되고 있다.    

<글 이현모, 사진 최미란 기자>

<이번 기획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받아 연재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