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숙희의 자연&사람 그리고 문화

 

“우리 아이들이 공연을 해요. 사회를 맡아 주셨으면 해서요”

하음 앙상블 대표의 전화였다. 하음 앙상블은 발달장애청소년들과 그 부모들로 구성된 클래식 연주단. 화음을 쉽게 발음해서 하음이라 했다.

토요일 오후 5시는 한낮처럼 더웠다. 공연장소가 아파트단지 야외공연장이라 했는데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가게에 물어보니 공연장은 모르겠다며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아파트 단지 외벽과 아파트 건물 사이의 좁은 길로 두 세 사람이 들어가는 게 보였다. 따라가 보니 아파트건물이 끝나는 지점에 커다란 나무가 나타났고 그 아래 하음앙상블이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여염집의 마당같은 작은 공간이었지만 반원형으로 3단 객석을 갖춘 어엿한 공연장이었다

객석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온 젊은 엄마 두 엇과 중년여성 서너 명이 앉았고 객석 맨 앞에 전동 휠체어를 탄 청년이 보였다. 뇌성마비 청년이었다. 리허설이 진행되는 동안 오는 사람들은 어르신이 많았고 지팡이를 짚거나 부축을 받아 힘겹게 들어오는 분들도 있었다. 살짝 걱정이 되었다. 호응이 많지 않으면 어쩌나. 연주자는 관객의 환호를 먹고 사는데.

자리가 다 차지 않았지만 공연은 정시에 시작되었다. 첫곡 ‘팬덤 오브 오페라’가 연주되고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주제가 ‘렛잇고’가 연주될 때였다. “얘, 너도 빨리 와서 음악 들어봐” 핸드폰으로 집에 있는 아이를 부르는 것이었다. 하음앙상블의 연주는 ‘노래는 즐겁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마법의 성’,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로 이어졌고 듬성하던 객석은 어느새 옥수수 알 차듯 채워졌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는 사람들도 여럿 보였다.

연주자들의 어머니는 말하자면 매니저들이었다. 자식들의 연주 뒷바라지는 기본이고 공연실황을 녹화하는 사람, 오시는 관객을 객석에 안내하는 사람, 심지어 공연 중간에 잠시 쉼을 가지면서 객석에 빵과 음료를 나눠주었다.

“실내 공연장에서는 음료수나 음식물을 못 갖고 들어가게 하는데 여기는 공짜로 나눠주니 정말 좋죠? 그런데 베란다에서 보시는 분들, 어쩌죠. 거기까지는 못 갖다 드리는데”

내 말에 사람들이 와아 웃었다. 다음 곡은 절묘하게도 아리랑이었다. 긴장이 풀린 분위기 위에 오천만이 다 아는 민요가 나오니, 따라 부르는 사람, 손뼉 치는 사람, 앉은 채 춤사위를 하는 사람, 휠체어 청년도 흥이 보통 많은 게 아니었다. 연주자와 객석의 어울림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가운데 ‘나성에 가면’에 이어지는 이 익숙한 멜로디는?

‘내 나이가 어때서’, 관객의 취향을 제대로 맞춘 선곡이었다. 좀처럼 표정변화가 없던 남자 어르신들까지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고 몇 분은 관광버스를 탄 듯 흥에 겨워 하셨다. 그러나 정들자 이별이라고, 그게 마지막 곡이었다. 마무리 인사에도 자리에서 일어서는 사람이 없었다. “아쉽지만 다음에..”라고 말하는데 오른쪽 앞줄에 앉으신 여자 어르신이 내게 손짓하는 것이 보였다. 다가가니 “저기, 지금 한 거 한번만 더 해 줘” 귀에 대고 이른바 앵콜신청이었다. 중풍을 앓아 반신이 자유롭지 못한 모습이었다.

“내 나이가 어때서”가 연주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앵콜신청자, 그 분이 한 손으로 춤을 추시는 게 아닌가. 옆에 앉은 사람의 손까지 잡고 흔들면서 아이처럼 신명나게 춤을 추는 그 모습. 아, 예술이 이래서 힐링이구나.

“우리 애들에게 오늘 정말 좋은 무대였던 거 같애. 다들 열심히 진심으로 들어주는 거 같지 않았어?”

엄마매니저들도 적잖이 감동한 듯했다. 실내보다 야외공연이 더 자유롭다, 이렇게 찾아가는 예술공연을 자주 해야 한다, 이를 후원한 도예술문화재단이 고맙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어르신 한분이 다가오셨다.

“내가 오늘 가슴이 답답한 일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다 풀어져서 편안해졌소. 고맙소”

발달장애 자식을 키우며 가슴앓이 해온 엄마들, 불가능하다고 좌절했던 시간들을 딛고 하음을 이끌어온 지휘자와 선생님들의 얼굴에 번지는 저 웃음의 깊이를 뉘라서 헤아릴 수 있을까.

이 작은 아파트에 손바닥 공연장이 있는 게 너무 고마웠다. 오로지 연주에만 몰입한 하음 아이들에게 그늘을 드리워 준 커다란 나무는 혼자서도 완벽한 무대였다. 바람에 맞춰 가지와 잎을 흔들어 대는 나무는 시시각각 변화무쌍한 무대장치였다.

자연 속에서 예술을 통해 사람들이 행복해지고 서로 감사하는 이 순간, 사람 사는 세상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일이 있을까. 최상의 관객, 최고의 연주, 최적의 무대, 3합의 멋진 앙상블. 이보다 더 멋진 공연이 세상에 또 있을까?

오한숙희 /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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