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분수를 아는 것이 행복의

무슨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과 무게가 어떤지를 알아보고 모든 일을 감당할 재능이 어느 정도인지 자기 분수를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소크라테스의 말을 빌리면 “너 자신을 알라”는 것이요, 요즘 유행하는 말을 하면 “주제 파악을 하라”는 것이다.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각자의 몫을 지니고 태어난다고 옛사람들은 말해 왔다. 그래서 사람마다 지닌 역량은 다르나 각자 지닌 재능으로 제나름대로의 삶을 꾸려가게 되어 있다. 어떤 사람은 흙을 만지면서 어떤 사람은 기계를 만지면서 살아가게 되어 있다는 말이다.석가모니는 사람들에게 각자 “자기를 등불로 삼고 의지해야 하며 남의 것을 의지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사람은 누구나 가능성이라는 커다란 힘을 안으로 간직하고 있어서 그 힘을 어떻게 닦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행·불행이 갈라지게 되어 있다. 스스로 배워서 갈고 닦으면 누구나 훌륭한 인격자가 될 수 있다. 내 그릇이 작다고 탓할 것이 아니라 내 그릇을 키워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인격이다. 인격은 사람마다 지닌 제나름대로의 품격을 말한다. 자기 자신의 품격을 모르고서야 어떻게 자기분수에 맞는 삶을 살 수 있겠는가.요는 자기에게 주어진 몫을 어떻게 갈고 닦아서 보다 쓰임새 좋은 그릇으로 만드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다. 이것 역시 나 자신의 몫임을 분명히 자각하여 함부로 남의 몫을 탐내어 눈떠보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남이 하니까 나도 해야하며, 남이 가지니 나도 가지자는 탐욕은 자기 분수를 모르는 처사로 스스로의 몰락을 재촉할 뿐이다. 분수 모르게 날뛰다가 망신당한 우화가 있다.옛날에 개구리 한 마리가 풀밭에 드러누워 쉬고 있는 황소의 모습을 보고는 황소의 큰 덩치에 놀라며 부러워하였다. 황소만큼 커지고 싶었던 개구리는 몸에 있는 주름살이 없어질 때까지 몸을 불려 나갔다. 힘껏 몸을 부풀린 다음 자식들에게 내 몸이 황소보다 더 크냐고 물었다.자식들은 고개를 저었다. 안되겠다고 생각한 개구리는 몸을 부풀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더욱 힘을 들려 자기의 살갗을 팽팽하게 뻗칠 수 있는 데까지 뻗쳤다. 그리고 누가 더 크냐고 다시 물었다. 자식들은 황소가 더 크다고 대답했다.마침내 개구리는 화가 났다. 그는 더욱 몸을 불리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하여 부풀리다가 결국 몸이 터져 죽고 말았다.요즘 우리들 스스로가 가난하다고 느끼는 것은 옛날처럼 끼니를 걱정하는 절대 가난이 아니라 ‘상대적 빈곤’으로서 무엇이나 남처럼 가지고 싶고 보고싶고 먹고싶은 마음 때문에 생겨나는 일이 많다.흔히 말하듯 ‘필요’보다 ‘욕심’에서 생겨난 일들이다. 이럴 때 분수를 알고 자족(自足) 할 줄을 알면 빈곤감이 없어지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부자처럼 느끼며 살 수 있다.누가 이런 말을 하였다.“사람은 자기가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것보다 남에게 행복하게 보이기 위해 애를 쓴다. 남에게 행복하게 보이려고 애쓰지만 않는다면 스스로 만족하기란 그리 힘든 일은 아니다”만족이 바로 행복이기 때문이다. 만족하지 않으면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보기 어렵다. 그리고 그 만족의 욕구가 어디까지라고 단정해서 말할 수 있는 사람 역시 만나기가 어렵다. 돈을 좋아하는 사람은 바라던 만큼 돈을 가지게 되어도 만족하지 않는다. 또 명예나 권력을 좋아하는 사람 역시 바라던 만큼의 명예와 권력을 쟁취했으면서도 만족하지 않는다. 그때부터 그들에게는 만족이라는 어휘자체가 불필요하게 된다. 욕심과 탐욕이라는 어휘가 그 자리를 차지해 버렸기 때문이다.석가모니는 이렇게 말했다.“만족함을 모르는 사람은 부유하더라도 가난하고, 만족함을 아는 사람은 가난하더라도 부유하다”고 하였다.참으로 분수를 알면 만족을 알고 만족을 알면 여유롭게 살 수 있는 진리를 터득할 수 있는 것이다. 탐욕하게 되면 오직 근심이 쌓일 뿐이다.오남련/논설위원·전 서귀포교육청 교육장 제249호(2001년 2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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