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충근 시민기자의 식물이야기>

어떤 자리에서 너덩쿨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옛날, 모자 만들 때 썼던 풀이라고 하데요. 모자 만들던 식물은 정동줄 아니었나요? 모자 이름은 정동벌립이구요. 다른 식물로도 모자는 만들 수 있겠다 싶어 말꼬리를 잡았습니다. 그게, 겯는 게 아니고 풀(糊)을 제조해 쉐털과 섞어 만들어 났주, 이러는 겁니다. 진짜요?

쉐가 털을 갈 때나 부구리 긁어낼 때 생기는 쉐털을 모아둔다. 너덩쿨을 방애혹에서 뽀스민 절굿공이가 붙을 정도가 된다. 모자틀에서 혼불치레 두불치레 절룬다. 비 올 때 도롱이와 같이 쓰고 다녔다.

설명이 어색한 것으로 보아 해본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듣기는 했으니 설명할 수 있는 것일 테지요. 어쨌든 식물로 접착제 만들었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솔깃했습니다. 옛날에도 본드는 필요했을 거고 무엇인가로 만들어 쓰긴 썼을 겁니다.

추적개시, 우선 동네 할아버지께 쉐털로 모자를 만들었었는지 여쭸더니 쉐털벙것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직접 만든 경험은 없지만 보기는 했다는군요. 문헌에도 쉐털로 만든 모자가 있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콩풀과 쉐털로 만들었는데 제주에만 있는 모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너덩쿨을 찾아봤습니다. 그냥 덩굴식물의 줄기를 이르는 말이더라고요. 콩을 너덩쿨이라 하지는 않으니, 말을 꺼낸 형에게 매달렸습니다. 줄기 식물인 거는 틀림없이 맞고 이파리 모습은…, 어머니가 너덩쿨을 아니까 어떤 식물인지 살펴 놓겠다고 대답은 했습니다. 형은 표선 출신입니다.

그러나 형은 자기 일 아니라고, 사람 죽는 일 아니라서 그런지 대음에 대음 쉐 잡아먹을 대음을 해서 몇 년 흘렀습니다. 형과 표선 근방을 지날 때 몇 번 어머니를 뵈러 갔지만, 이상하게 어머니는 계시지 않았습니다. 아흔을 훌쩍 넘긴 어머님, 지금은 건강하시지만 사람 일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 너덩쿨 생각만 하면 촉급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형이 너덩쿨을 봐뒀다고 하기에, 무조건 형을 태우고 달렸습니다.

빙빙 돌아들어 간 평범한 귤밭, 시둑 곁에 제초제 맞아 초췌한 몰골의 남오미자가 있었습니다. 남오미자도 넝쿨 식물이라 후보이긴 했지만, 막상 눈으로 확인하자 맥이 풀렸습니다. 이것이 과연 풀이되긴 될까?

남오미자를 들고 할아버지께 갔습니다. 이거 일름 너덩쿨이꽈? 아니여, 익숙한 식물인지 단박에 알아보셨습니다.

그거 푸승쿨인디, 여기선 앙토헐 때 써났쪄 서너 짐 해왕 독독 모상 항 같은데 이삼일 컹 나두민 폴폴해진다. 푸달푸달 헌댄허카. 이 물로 흙을 개민 끈기가 생경 잘 붙주. 긍해야 앙토헐 때 아주 좋으매. 또 서슬맨 벽에 흙 바를 때도 조쿡. 옛날에는 대부분 겨울에 집 지서신디 푸승쿨 해오는 게 만만치 않아서, 희어뜩 헌디 댕기멍 허당 봐도 잘 어섰쪄. 쉐 멕이러 다니당이라도 봥놔두곡 했주.


모자를 만들고 집 짓는 데 쓰였다는 남오미자, 오늘은 막 다르게 보입니다. 그새 내 안에 뿌리를 펴 자라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