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이 지났는데도 민호는 오지 않았다. 지아는 갑갑증이 확 밀려 왔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도 턱까지 차오르는 듯 했다.
 민호가 왜 이렇게 안 오지?
 바람의집 입구에서 서성대며 민호를 기다리는 지아의 등줄기로 땀줄기가 주르륵 흘러내린다.
 컹컹!
 저만치서 해리 짖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야 오는구나. 해리, 해리야~!
 반가운 마음에 지아는 철둑길 밑으로 달려 내려간다.
 지아야!
 민호가 저만치서 손을 흔들어 보였다.
 왜 이렇게 늦었어. 할 말이 있어서 얼마나 기다렸는데.
 지아는 민호를 나무라듯 입술을 실룩거리며 말을 했다.
 헤헤, 미안. 그럴 일이 있었어.
 무슨 일 있었어?
 그게 말이야…….
 민호가 머뭇거리며 말을 꺼내려는데 저만치서 어떤 아줌마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 엄마다.
 엄마?
 응, 우리 엄마. 어제 내려 오셨어.
 가까이 다가 선 민호 엄마 얼굴은 무척이 고운 얼굴이었다. 서울에서 살아서인지, 하얀 피부에 갸름한 얼굴, 짙고 긴 속눈썹이 무척이나 예뻤다.
 민호, 네 이녀석, 시간 없다고 짐 싸라고 했더니 이렇게 나와 버리면 어떻게 해.
 눈꼬리를 치켜 올리며 민호를 나무라는 민호엄마의 모습은 아름답기만 했다. 나무라는 목소리마저 어찌나 곱고 나긋나긋한지 지아는 저도 그 목소리에 꾸중을 받고 싶었다.
 제가 오늘은 안 된다고 했잖아요.
 민호는 지아 앞에서 엄마에게 욕을 먹으며 꾸중을 들으니 창피한 마음에 기분이 확 상해 버렸다.
 이녀석, 어디서 엄마한데 말대꾸야. 소리까지 질러가면서 말이야.
 조용하던 바람의 집이 갑자기 술렁대기 시작했다.
 민호야, 네 왜 그래? 어서 네 엄마 따라 가.
 …….
 말없이 민호가 제 엄마를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섰다.
 멍, 멍멍~!
 해리가 민호와 민호엄마 사이에서 제 목소리를 낸다.
 개들은 영이 맑아서 사람마음도 꿰뚫어 본다고 순이할머니가 그러던데, 저 녀석이 그런    가?
 지아는 해리의 얼굴을 빤히 보며 생각했다.
 그냥, 지아한테 인사만 하고 가려고 했어요. 오늘 여기서 만나기로 했는데 그냥 가면 어   떻게 해요.
 민호가 제 엄마를 빤히 올려다보며 또박또박 말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지아는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생각이 났다. 한 번도 민호처럼 똑바로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을 해 보지 못했다. 무섭기만 했던 아버지. 그 아버지가 갑자기 보고 싶다. 민호처럼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온통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어머, 얘? 얘야?
 민호엄마가 놀란 눈으로 지아를 바라보며 어깨를 세워준다.
 지아야, 왜 그래? 왜?
 민호도 놀란 목소리로 지아에게 달려왔다.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잘 가. 잘 가…….
 지아는 주먹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바람의 집으로 다급하게 달려갔다.
 지아야~!
 바람의 집으로 들어 온 지아는 바닥에 엎드려 어깨를 들썩이며 울기 시작했다. 왜 눈물이 나는지, 왜 이처럼 서러운 감정이 올라오는지 지아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그칠 줄 모르고 올라오고 있었다.
 아버지, 아아, 어, 엄마~, 엄마아~ 엄마, 엄마아…….
 모르겠다. 한 번도 불러보지 않았던 엄마라는 말이 입 밖으로 저절로 새어나오면서 지아를 깊은 슬픔에 빠트리고 있었다. 한 참을 바닥에 엎드려 꼼짝 않던 지아가 옆으로 돌아눕는다. 귀를 바닥에 붙인다. 기차소리가 들렸다. 점점 가까이 들렸다. 이내 바닥이 흔들렸다. 11시 기차가 지나가나보다.
 잘 가.
 지아는 하늘이 빠끔빠끔 보이는 바람의 집 천장을 올려다보며 바로 누웠다.
 지아야.
 깜짝이야!
 화들짝 놀란 지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는다.
 괜찮아?
 으응
 민호가 제 엄마랑 지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지아는 얼떨결에 고개를 숙이며 꾸벅 인사를 한다.
 …….
 이름이 지아라고 했니? 집은 어디니? 아버지는 뭐 하시고? 엄마는 뭐 하시니? 형제는 어   떻게 되고?
 민호엄마는 처음 본 지아에게 무엇이 그리 궁금한지 숨도 쉬지 않고 묻는 것 같았다.
 우리집은 저기 아래쪽 기와지붕 집이고, 아버지는 지금 서울 가셨고, 엄마는 안 계세요.    그리고 언니 셋 있고, 제가 막내에요.
 그런데 엄마가 왜 안 계시지?
 엄마, 지아 엄마 돌아가셨다고 말했잖아요.
 아, 미안.
 눈 꼬리가 약간 아래로 처진 듯한 민호 엄마는 더는 아무 말도하지 않았다. 부드러워 보이는 눈매. 꼭 다문 입술에 보이는 엷은 미소. 그런데 이상하다. 자꾸만자꾸만 지아를 바라보는 눈빛이 슬퍼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말간 눈물이 고이는 것 같기도 하고…….
 엄마, 정말 지아가 엄마와 닮은 것 같지!
 민호가 제 엄마를 올려다보면서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
 우리 엄마는 절 낳고 바로 돌아가셨대요. 제가 태어난 병원에 불이 나서요. 전 우리 엄마   얼굴 한 번도 못 봤어요.
 묻지도 않았는데 지아는 술술 모두 말해 버렸다.
 아참, 우리 언니가 자기 이야기 함부로 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지아가 제 입을 손으로 틀어막는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은 민호엄마는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지아를 바라보기만 한다. 민호엄마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볼을 타고 흘렀다. 그런 민호엄마 탓일까? 민호엄마와 눈이 딱 마주친 지아의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쿵대기 시작했다.
 
 엄마 냄새.
 지아, 지아라고 했니……?
 부드러웠다. 민호엄마 목소리엔 아니 몸 전체에서 달짝지근한 달달한 사탕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목구멍에서 설움이 북받쳐 올라왔다.
 이상했다. 민호엄마는 지아가 그동안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엄마라는 뭉클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지아는 울었다. 갑자기 아버지에게 매 맞던 생각, 엄마가 보고 싶었던 생각, 언니들에게 따돌림 당했던 서러운 생각, 이런저런 생각들이 봇물처럼 솟아나면서 지아를 울리고 있었다. 작은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지아를 민호엄마는 꼭 보듬어준다.
 따뜻하다.
 낯선 아줌마의 품이 얼마나 포근한지 지아는 자기도 모르게 엄마를 부른다. 그리고 그대로 영원히 있고 싶다는 생각까지도 했다.
 지아야, 나중에 서울 오면 우리 집에 놀러와. 꼭!
 민호엄마는 지아를 붙들고 있던 손을 놓으며, 지아의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걷어 올려준다.
 지아 이마 참 예쁘게 생겼구나. 여자는 이마가 예뻐야 잘 산다고 했어.
 민호엄마는 작고 하얀 진주가 달랑대는 머리핀을 빼서 지아 앞머리에 꽂아준다.
 지아, 밥 많이 먹어야겠다. 몸이 말라깽이네.
 …….
 지아는 대답대신 고개만 끄덕인다.
 오랜만에 걷어 올린 지아의 하얀 이마는 유난히 반짝였다.
 반듯한 이마.
 민호엄마는 돌아서서 걷는다.
 아, 맞구나, 맞구나. 그렇구나.
 민호엄마와 민호 그리고 해리가 바람의 집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
 잘 가 민호. 달달한 사탕 냄새가 나는 아줌마도.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