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한숙희의 [만남]

▲ 오한숙희씨.

짜장면, 짜장면, 아이는 5.16도로를 넘어가는 내내 짜장면 노래를 불렀다. 서귀포로 이사 온지 100일이 되기 전에 몸무게가 10킬로그램이상 불어난 탓에 '짜장면은 아이스크림 사이다와 더불어 금기식품이 되어 버렸다.

"이토록 먹고 싶어 하는데 사주면 안 될 건가요?"

활동보조선생님이 안쓰러운지 운전을 하면서 슬쩍 내게 물었다.

"글쎄요"

나는 갈등에 빠졌다. 먹고 싶은 것을 못 먹으면 그 스트레스로 살이 더 찔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것도 같고, 장애가 좀 있다고 먹고 싶을 것을 통제 당하는 것은 인권의 문제도 있고...육지에서 가져온 것들이 하나도 맞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더 이상의 몸무게 증가는 막아야하고...

그런데 나의 갈등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 싱겁게 끝나버리고 말았다. 우리가 일을 보려고 찾아간 곳 옆집이 바로 짜장면집이었다. 코 앞에 짜장면집을 둔 아이는 더욱 거세게 졸라댔다.

"이 집이 짜장면 맛있기로 유명하다는 그 집이로구나"

보조선생님 말에 나까지 은근히 회가 동해 짜장면 집 문을 열고 들어섰다.

"정기 휴일"

돌아서 나오는데 아이는 바짝 애가 타서 몸살이었다. 다음 짜장면 집을 찾기까지는 꽤 멀리까지 가야했다. 점심시간이 막 지난 시각이라서 다행히 사람이 많이 않았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데리고 대중음식점을 이용한다는 것은 대단한 스트레스이다.

"컵이 없어서 유리잔을 가져왔어요"

주문을 받으러 온 사람은 유리잔에 물을 따라 주었다. 점심 설거지가 미처 완료되지 못한 모양이었다. 밀가루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아이 것을 조금 덜어 먹을 심산으로 곱빼기를 시켰다. 그게 화근이 되었을까. 아이는 짜장면을 먹는 내내 별로 행복해하지 않았다. 금방 입이 벌어지고 싱글거릴 줄 알았는데 무표정하게 먹더니 짜장면을 다 먹고는 계속 짜증섞인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조용히 합니다. 먹고 싶은 짜장면 먹었잖아"

나는 아이를 달랬다.  함께 간 일행들이 식사를 마치지 못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기다리는 것은 사회성 훈련에서 필수요소인지라 아이만 데리고 휙 나오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음식점에 우리말고 다른 사람이 없는 상황이니 좋은 기회였다. 아이의 소리가 커지는 듯 싶으면 나는 주방과 카운터가 있는 뒤쪽을 흘끔 돌아보았다. 이런 식으로 눈치보는 데는 아주 익숙했다.

"조금만 조용히 기다리자"

아이를 달래다가 문득 유리컵에 내 시선이 닿았다. 사이다였구나. 유리컵을 보는 순간 사이다가 떠올라서 이미 잡은 고기 짜장면은 접어두고 사이다를 욕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눈치는 100단이라 어림없다는 것은 아는데 먹고는 싶고, 속이 끓는 소리을 낼 수밖에.

"여기요, 사이다 한 병 주세요"
"어머 어떻게 하죠? 사이다는 없고 콜라만 있는데"
"네, 됐어요"

사이다와 콜라의 칼로리 차이가 얼마가 되랴만은 내심 잘되었다 싶어 포기를 했다. 그래도  사이다는 시켜주려고 했어, 알리바이를 마련했으니 이제 아이만 포기시키면 될 일이었다.

"너 이러면 짜장면 집에 다시는 못 온다"

달래다 못해 협박을 섞고 있는데 마침내 주인여자가 우리 테이블로 다가왔다. 에그,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그런데 정작 그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게 아니었다.

"그냥 두세요. 좀 떠들면 어때요. 괜찮습니다"
"아, 예... 아이가 사이다 때문에...."
"어머, 사이다 때문에 그래요? 그럼 사다 줄께요"
"아뇨, 아뇨, 됐어요, 이제 곧 나갈 거니까 가다가 사주면 돼요"

그이는 돌아섰다. 나는 그 마음만으로도 고마웠다. 그런데 다음 순간에 또 다른 천사가 나타났다. 오토바이 헬멧에 철가방을 들고서. 그는 들어오자마자 주방쪽으로 직진했다. 그리고 잠시 후에 '그거 좀 있다가 담아라' 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빈손으로 문을 열고 나갔다. 그리고 또 잠시 후에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 손에는 사이다 병이 들려있었다.

"자, 이거 먹어라"

그리고 또또 잠시후에 철가방을 들고 사라졌다.
하늘에서 떨어진 사이다였다. 아이는 물론 급빵긋했고 식탁에 둘러앉았던 일행들 얼굴에까지 웃음꽃이 따라 피었다.
식탁 밑으로 강아지 한 마리가 다니고 있었다. 몇 살이냐고 물었더니 모른다고 했다.

"아침산책길에 만났어요. 털이 뭉칠대로 뭉친 것이 집 잃고 오래 헤매다녔나 보더라구요"

아, 원래 인정이 많은 사람들이었구나. 털 날린다고, 영업에 방해된다고 할 수도 있으련만 그냥 같이 사는 구나. "그냥 두세요. 좀 떠들면 어때요. 괜찮습니다"가 그냥 나온 말이 아니었다. 짜장면 배달을 미루고 쌩하니 사이다를 사다주는 마음이 단순한 영업적 써비스가 아니었다.

짜장면 집을 나오면서 아이에게 '인사해야지' 했더니 '벌써 했어요' 하고 아이편을 들었다. 그날 나는 완전 악덕엄마가 되었지만 기분은 완전 좋았다. 이런 사람들이 있다니, 세상 어딘가에는 이런 사람들이 또 있을 꺼야. 516도로를 넘어오는데 쌓여있는 눈이 포근했다.

저작권자 © 서귀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